[독일 프랑크푸르트=디지털투데이 민병권 기자] 자동차 업계 많은 이들은 모터쇼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도 예외일 수 없다. 출품업체와 전시규모가 줄어 쇠퇴 양상을 숨기지 못했다. 그나마 독일 고급차 브랜드 메르세데스-벤츠의 전시관만큼은 변함없이 크고 화려해 보였다. 높이 29m의 페스트할레(공연장) 건물을 전세 내고 안쪽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다층 전시 건물을 지었다. 내부는 ‘전시가 아닌 브랜드 접점’을 콘셉트로 방문객에게 초점을 맞추고 다가올 혁신적 모빌리티 시대의 네 가지 키워드(Intuitive, Energize, Excite, Responsible)를 테마로 디자인한 각각의 공간들을 따라 이동하게끔 했다.

사실 벤츠 전시면적도 지난 2017년의 11만m2보다 대폭 축소된 8만8000m2에 그쳤다. 하지만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벤츠의 프레스 컨퍼런스가 시작되자 모터쇼의 암울함이나 업계의 불투명한 상황은 금세 잊혀졌다. 무대는 11대나 되는 벤츠의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들로 채워졌고 브랜드의 기함이자 정수인 S클래스의 차세대 전기차 버전을 예고하는 콘셉트카 비전 EQS가 세계최초로 공개됐다.

벤츠가 새롭게 해석한 모던 럭셔리의 정의와 친환경차 출시 계획, 탄소중립 등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발표한 올라 칼레니우스(Ola Källenius) 회장은 “우리는 자동차의 앞날을 매우 낙관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컨퍼런스 직후 그를 따로 만나 더 자세한 얘기를 묻고 답할 수 있었다.

13년간 다임러그룹을 이끈 디터 제체(Dieter Zetsche) 회장 뒤를 이어 지난 5월 다임러그룹 이사회 의장 및 메르세데스-벤츠 승용부문 회장으로 임명된 올라 칼레니우스는 1993년부터 다임러그룹에서 일해왔다. 미국 터스칼루사 공장 사장, AMG 총괄디렉터, 승용 부문 마케팅•세일즈 총괄을 역임했고 2017년 1월부터 승용 부문 개발 및 그룹 연구 총괄을 맡아왔다. 1969년 스웨덴 출생으로 다임러의 첫 비독일인 수장이며, 이번이 회장 취임 이후 처음 참가한 모터쇼다.

디지털투데이, 이하 DT) 앞선 발표에서 2022년까지 유럽에서의 자동차 생산을 탄소중립화하고 앞으로 20년후인 2039년에는 승용 모델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했다. 두 계획 사이에 17년의 시간이 필요한 배경은 무엇인가?

올라 칼레니우스, 이하 OK) 전 세계 인프라를 살펴보면 시장마다 다르고 균일하지도 않다. 급격하게 순수 전기차 및 연료전지 자동차로 넘어갈 경우 어마어마한 산업적 구조 변경이 필요해진다. 때문에 생산 측면에서 각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따라 최소 20년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우리가 직접 생산하는 제품처럼 우리가 주된 영향력을 갖고 빠르게 실천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화석연료 에너지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대체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가능한 한 빠르게 전환해 나갈 것이다. 2022년까지 유럽 내 생산 시설을 전환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전 세계 생산 시설에 대한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DT) 20년 내에 벤츠는 내연기관 모델을 없애고 순수 전기차로 전환하게 되나?
OK) 기술이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20년 내에 어떤 기술이 등장할지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렵다. 향후 10년간의 전략은 조금 더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승용차는 전기 구동화 차로 전환한다. 상용차는 전기차와 연료전지차가 혼재할 것이다. 연료 분야가 향후 어떻게 변화할지에 달렸다. 하지만, 앞으로 20년 동안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장담하고 싶진 않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엔지니어들 덕분에 놀라운 일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DT) 고객들이 기존 내연기관 모델 대신 전기차를 구입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가?
OK) 일부 전동화 모델들은 규제를 따라가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소비자 행동은 규제의 인센티브를 통해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노르웨이이다. 또, 적절한 제품들을 갖추어 시장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금 완전히 새로운 전기차들을 출시하고 있다. 이제 막 내놓은 EQC는 사실상 매진 상태다. 오늘은 비전 EQS를 통해 프리미엄 전기 세단의 미래를 제시했는데 고객과 팬들이 어떤 피드백을 보내올지 매우 기대된다. 규제 당국도 변화할 것이지만, 제품이 가진 매력으로 인해 저변이 확대될 것이라고 믿는다.

DT) 벤츠의 전기차 브랜드 EQ 라인업은 어느 정도 규모를 갖게 되나? 기존 벤츠 라인업에는 없던 차종도 계획하고 있나?
OK) EQS의 형제, 자매 모델들에 대해 몽땅 다 얘기하면 다음 모터쇼 때 만나 할 이야기가 없어진다(웃음). 그러니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다. 하지만 EQ 브랜드에서 신차들이 등장할 테니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기 바란다.

DT) 지난 10~15년 간 벤츠의 모델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앞으로는 어쩔 셈인가?
OK) EQ 브랜드 신차 출시로 포트폴리오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명료한 규칙이 있다. 단지 구색을 갖추기 위해 모델을 추가하지는 않는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향후 10년간 일부는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얼마나 다양한 모델과 다양한 형태의 차를 제공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제공하는가, 해당 분야에 기회가 있는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재 벤츠는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적절히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있어선 현명해야 한다. 전환을 하려면 투자가 필요하고, 동시에 그러한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수익을 찾아내야 한다.

DT) 자율주행은 자동차회사의 이윤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떠한지?
OK) 자율주행은 고도로 섬세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당히 큰 규모의 투자를 필요로 하고, 동시에 판세를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져이다. 이윤 추구라는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분야이지만,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기술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하나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환에 필요한 비용에 관해서는 그 말이 맞다. 겨우 한 게임 해봤을 뿐인데 당장 해결할 문제 두세 가지가 동시에 주어진 셈이다. 우리는 비용 구조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효율성을 추구한다.

DT) 법적 규제가 없다면 언제쯤 자율주행차의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나?
OK) 법적 규제의 존재 유무에 관계없이 중요한 것은 안전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율주행은 굉장히 민감한 기술적 사안이다. 지난 몇 년간, 나와 메르세데스-벤츠 엔지니어링 팀은 이 문제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 함께 논의해왔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새로운 문제 세 가지가 등장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법적 규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매우 신중한 방식으로 개발하고자 자체적인 규제를 마련할 상황이다.
하지만, 규제당국과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율주행은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다. 현재 새로운 S-클래스로 자율주행 레벨3 인증을 받으려고 준비 중인데,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레벨3 인증을 받은 차는 없다. 규제당국과 계속해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다 보니, 우리가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동안 규제당국은 그에 따른 새 규정을 마련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고객 이익을 염두에 두는 한편, 안전을 최우선시하며 업계와 규제당국이 협력하고 있다.

DT) 요즘은 관심의 대상이 자동차보다는 모빌리티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 같다. 앞선 발표에서 ‘벤츠는 엔지니어들이 만든 회사’임을 강조했는데 미래에는 모빌리티 서비스가 이익 창출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OK) 우리도 모빌리티 서비스에 투자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는 모빌리티 서비스 브랜드 ‘나우(NOW)’가 그것이다. 프리나우(FREE NOW), 셰어나우(SHARE NOW)등 몇 가지 서비스가 있다. 우리가 직접 진출한 것도 있고 다른 회사들이 운영하는 여러 모빌리티 서비스에 우리 제품이 통합되어 있기도 하다. 이 분야는 이제 막 열리고 있는 새로운 시장이다. 아마도 소유라는 개념은 어느 정도 바뀌겠지만, 몇몇 경우에선 새로운 수요를 촉발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일정 교차점을 지나고 나면 흔하게 이용할 수 있는 모빌리티 서비스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주의 깊게 살펴 시장 내에서 입지를 확대하고자 한다.

DT) 다임러그룹은 BMW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어떠한 시너지 효과가 나오고 있는지 궁금하다.
OK) 모빌리티 서비스에서 규모를 창출하고 빠르게 모멘텀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래서 BMW와 손잡고 유럽 등 여러 시장에서 함께 모빌리티 서비스 거점을 구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최근엔 주행 보조 시스템, 개인용 자율주행 시스템 등에서 비슷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러한 투자를 통해 해당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려는 것이다. 실력 있는 두 회사의 엔지니어링 팀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같은 목소리를 내고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셈인데, 힘을 합하면 두 회사 모두 이로 인해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비용도 나눠 부담한다. 우리가 당면한 과제에 더 많은 엔지니어들을 투입함으로써 모멘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사례는 자동차 업계에서 새로운 차원의 열린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는 신호다. 경쟁 관계이면서도 협력하는 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DT) 자동차 산업과 테크 기업 간 연합 및 제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러한 제휴가 앞으로도 계속될까?
OK) 영리한 협력과 파트너십은 전반적인 변환(transformation)을 위한 한 방법이고 모두들 그걸 원한다. 예전에는 그러한 제휴 대부분이 두 제조사(OEM)가 함께 일하는 형태, 또는 현재 우리가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OEM과 전통적인 공급사간 제휴였다. 윈-윈 효과를 내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 세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5~7년 사이 테크 분야와 자동차 산업이 함께 변화하고 있다. 벤츠가 처음 CES(소비자전자제품박람회)에 참가한 것이 2008년이었는데, 당시엔 모두들 ‘자동차 업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표정이었다. 올해 초 CES에 가보니, 자동차들이 대거 등장했고, 테크 기업들도 시연을 위해 자동차를 이용하고 있었다. 기술 측면에서 새로운 기회들이 열렸기 때문이다. 과거 자동차는 외따로 떨어진 기계공학적 분야였지만, 오늘날에는 궁극적인 모바일 디바이스로 간주된다. 또한, 일상생활과 깊숙하게 연결된 제3의 공간이 되면서, 각종 기술이 자동차로도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5G 커넥티비티 등 미래 기술 분야에선 자동차라는 제3의 공간이 더욱 매력적인 분야다. 정말 흥미로운 기회라고 할 수 있다.

DT) 앞서 발표에서 2025년이면 고객의 4분의 1이 온라인으로 신차를 구입할 것으로 보고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내용이 궁금하다.
OK) 마케팅 및 영업 측면에서 우리 전략은 모든 경험을 디지털화하는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도 운영할 것이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험을 보다 매끄럽게 연계해 나가려고 한다. 마침 고향인 스웨덴에서 직접판매(다이렉트 세일즈) 모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하고 가격을 고정하며 사실상 고객이 제조사로부터 직접 차를 구입하고 딜러는 대리인 역할을 한다. 전체 마케팅과 영업 모델도 향후 10년 간 이렇게 변화할 것이다.

DT) 환경문제 외에도 무역전쟁 등 여러 원인으로 자동차 산업이 굉장히 어려운 시기에 있다. 어떻게 돌파할 생각인가?
OK) 자동차 산업의 근본적인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현재가 자동차 역사상 가장 커다란 변화의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자동차를 다시 새롭게 발명해야 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상당히 흥미로운 시기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시기이다. 사실 지정학적인 무역 분쟁은 어떤 산업이라도 반갑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운영 측면에서도 당연히 반갑지 않다. 아픈 상처에 소금 좀 뿌리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받아들이고 상황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26년간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면서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높았던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이처럼 기회가 많았던 시절도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자동차 산업에 몸담고 있는 것이 즐겁다. 다만 심장이 약한 이들에겐 권하고 싶지 않은 업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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