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민병권 기자] 지난 9월초, 벤츠의 SUV 신차 ‘더 뉴 GLE’ 국내 출시 행사가 있었다. 제품의 공기역학적 우수성을 설명하던 벤츠코리아 담당자가 “GLE는 소음 면에서 불리한 대형 파노라마 선루프를 장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슬라이딩 선루프 수준의 바람 소리를 실현했다”고 말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행사장에 전시된 GLE들은 선루프가 없었기 때문.

실제로, 사전예약 당시 공개된 사양 표에도 국내시장 선호 사양인 파노라마 선루프가 빠져있어 구설에 올랐다. 신형 GLE의 표어인 ‘All kinds of strength’와 어울리지 않는 약점을 보인 셈. 현장에서 이뤄진 질의응답에도 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그리고 답변은 한국에 부임한지 이제 막 세달 된 마크 레인(Mark Raine) 벤츠코리아 제품&마케팅 부문 총괄 부사장이 맡았다.

벤츠 GLE 옆에 자리한 벤츠코리아 마크 레인 부사장
벤츠 GLE와 함께 한 벤츠코리아 마크 레인 부사장

“사실 각 시장에 가장 적합한 사양으로 제품을 구성하는 일은 늘 힘들고 까다롭다. 모든 고객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없더라도 항상 시장과 세그먼트에 가장 균형 잡힌 구성을 선보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GLE에서 파노라마 선루프가 빠진 것도 그러한 결정의 결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고객이 원한다면 자신이 바라는 사양을 추가해 개인 취향에 맞는 GLE를 주문할 수 있다.”

그의 이런 답변에도 불구하고 국내 수입 고급차 시장에 보편적인 사양으로 자리잡은 파노라마 선루프를 제외한 데 대한 지적은 잦아들지 않았고, 이와 관련된 부정적인 기사들이 나왔다. 마크 레인 부사장은 하고 싶던 말을 다 했던 것일까? 사양 구성에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궁금하던 차에 그를 다시 만났다. 지난 14일, 메르세데스-AMG GT 4도어 쿠페의 시승 행사장에서다.

AMG GT 4도어 쿠페를 소개 중인 마크 레인 부사장
AMG GT 4도어 쿠페를 소개 중인 마크 레인 부사장

마침 그는 자신의 새 회사차로 AMG GT 4도어 쿠페(GT 53)를 타게 됐다고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불과 한달 여 전, GLE 신차발표회에선 GLE야 말로 자신처럼 액티브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에게 딱 맞는 차라고 말했던 그다. GLE대신 AMG GT 4도어 쿠페를 타게 된 이유부터 물었다. 그새 마음이 바뀌었을까?

“그렇다. 마음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내 자신을 위해 고른 차는 GLE였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이태원의 도로와 주차 사정상 GLE는 맞지 않았다.”

마크 레인 부사장은 아내, 그리고 1남1녀와 함께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시간이 나면 달리기, 자전거, 트라이애슬론 등을 즐기며 액티브한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한다고 했다. AMG GT 4도어 쿠페가 ‘SUV 버금가는 실용성과 쿠페의 멋진 스타일, 다이내믹한 운동성능을 겸비한 차’라는 뻔한 얘기를 하려는 걸까?

“오늘 AMG GT 4도어 쿠페를 소개하면서 ‘Life is a Race’라는 광고 영상을 상영했는데, 요즘 내 생활이 딱 그 광고 내용 같다. 항상 늦어서 서두르고, 계속 바쁘게 살아간다. GT 4도어 쿠페는 나에게 완벽한 차다. 항상 쿠페 스타일 자동차를 좋아해온 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17년째 벤츠에서 일하고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본사는 물론 두바이 중동 사무소 등 다양한 시장에서 근무했다. 한국에 오기 직전에는 4년간 말레이시아에서 동남아시아 세일즈 마케팅 총괄을 맡았다. 그가 GT 4도어 같은 빠르고 날렵한 차를 원할 정도로 바쁜 것은 한국에 부임하자마자 너무 많은 신차 출시가 집중된 탓 아닐까? 한국에 부임한 소감도 궁금했다.

“벤츠코리아에 합류해 활력 넘치는 한국 시장에서 일하며 새로운 도약을 함께 하게 되어 기쁘다. 요즘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아주 흥미진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배우는 한편, 딜러사 및 고객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한국 시장을 이해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이어질 수많은 신차출시는 그 자체가 벤츠의 전략이다. 프리미엄 럭셔리 브랜드로서 광범위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고객들에게 넓은 선택 범위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나 역시 한국에 있는 동안 가능한 최신 제품을 빠르게, 자주 한국시장에 선보이고자 한다. 한가지 모델을 몇 대나 판매하느냐가 아니라, 더 많은 고객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모델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벤츠 GLB

GLE의 동생 중 하나인 새로운 소형 SUV, GLB가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한국시장에선 어떤 반응을 예상하는지 물었다.

“9월 프랑크푸르트모터쇼(IAA)에서 공개된 GLB는 기존 GLA와 GLC 사이에 위치하는 소형 SUV다. 개인적으로 GLB가 가진 명백한 장점 중 하나는 7인승 옵션이라고 생각한다. 동남아시아에선 대가족이 많고 차에 갖가지 짐도 많이 실어서 7인승의 인기가 높았다. 한국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특징들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차체 구조상 실용성이 뛰어나고, 시트 포지션이 높아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점이 매력적이다. 특히 자녀의 등하굣길 같은 패밀리카 용도, 가정의 세컨드카로 사용하기에 아주 좋은 패키지다. 나도 집사람 차로 들이고 싶다.”

파노라마 선루프가 없는 벤츠 GLE

GLE의 사양 관련 지적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사실은 지난 행사 때 미처 하지 못한 뒷이야기가 있다면 듣고 싶었지만 그의 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우리 제품에 대한 고객과 언론의 비판적인 리뷰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피드백을 받고 문제를 다시 들여다 볼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물론 GLE의 파노라마 선루프 관련 기사들도 (번역을 통해) 읽었다. 당시 행사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로선 충분한 제원과 사양을 갖추면서 가격도 너무 비싸지지 않도록 적정한 균형을 찾는 것이 항상 어려운 문제다. GLE도 마찬가지지만, 신차를 내놓기 전에 딜러 및 목표 고객층과의 광범위한 대화를 통해 신차가 갖춰야 할 요건들을 충분히 파악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90% 이상은 적정한 균형을 잡아낸다. 하지만 가끔은 놓치는 부분이 나타나기도 한다. GLE의 경우 파노라마 선루프를 기본 사양에서 제외하고 필요로 하는 고객만 옵션으로 추가할 수 있도록 했지만, 반대로 우리가 기본으로 넣은 사양을 원치 않는 고객이 있는 경우도 있다. 어찌됐든 우린 최적의 해결책을 찾으려 애쓸 것이다. 피드백에 따라 GLE도 상품을 최적화할 것이다.”

차세대 S-클래스 전기차의 모습을 보여주는 벤츠 비전 EQS
벤츠 비전 EQS

한편 마크 레인 부사장은 ‘전기차 버전 S-클래스’로 불리는 EQS 출시 등 벤츠의 전동화 전략을 한국에 적용하는 과정을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한국시장이 혁신을 잘 받아들이고 신기술에 능통하다는 점이 한 가지 이유.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전기차의 단점이 해소되고 장점들이 부각되면서 점점 더 많은 고객들이 전기차를 선택하게 되는 시장 변화가 한국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EQS의 경우 한국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E-클래스와 S-클래스 사이에 해당하기 때문에 성공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국시장에서 벤츠의 전동화 범위를 중형 이상의 큰 차로 한정 짓지도 않았다. A클래스·A클래스 세단·B클래스 등 IAA에서 발표된 소형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들의 국내 도입 가능성을 묻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전동화된 소형 모델 역시 한국시장에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전동화는 우리뿐 아니라 시장 전체의 흐름이고, 벤츠 라인업에서도 EQS 등 특정 모델이 아니라 전체 라인업에 걸쳐있다. 상위 모델만 전동화해서는 시장의 전환에 맞출 수 없다. 정확히 어느 시점이 될지는 점치기 어렵지만 약 5년 정도면 한국 시장도 임계점을 넘으리라 생각한다. 노르웨이의 예에서 보듯 전통적이었던 자동차 시장도 생각보다 빠르게 바뀔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EQ 퓨처’ 개막 행사에서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마크 레인 벤츠 코리아 제품 마케팅 총괄 부사장
마크 레인 벤츠 코리아 제품 마케팅 총괄 부사장

벤츠코리아는 오는 22일 서울에서 EQ 퓨처 전시관 개막행사를 갖고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다임러그룹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할 예정이다. EQ 브랜드의 첫 순수 전기차 EQC 출시 등 한국시장에서의 전동화 전략에 대해서도 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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