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최근 CJ그룹의 경영권 승계과정이 재계의 주목을 받으며 '시스템통합(SI)업체를 통한 일감몰아주기와 편법 승계 관행' 문제도 덩달아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설립과 운영이 용이한 SI업체를 통하면 상속세를 과도(?)하게 내지 않고도 회사 지분과 자산을 넘길 수 있다. 업계 일각에선 이를 비정상적인 승계 작업으로 봐야 한단 비판이 있어 왔다. 보안성을 빌미로 실제 전문성은 결여된 SI계열사를 세운 뒤 오너 일가 지분율을 집중시키고 일감을 몰아줘 재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재계에서 편법 승계가 자행되는 까닭으로 '정부의 상증세(상속세 및 증여세) 강화'를 꼽고 있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CJ는 SI계열사인 CJ올리브네트웍스의 IT부문을 분할해 지주사로 100% 편입키로 했다. 현재 이재현 CJ회장의 자녀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17.97%)과 이경후 CJ ENM 상무(6.91%) 등을 비롯한 회장 일가는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45%가량을 보유 중이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또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 CJ CGV 등 그룹의 핵심 계열사에서 수익 상당부분 챙기는데 내부거래 비중이 17.8%에 달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으로 '회장 일가 지분이 20%(비상장사) 이상이거나 내부거래비율이 매출의 12%(또는 200억원 이상)인 법인'을 규정하고 있다. 이 점에 의거할 때 CJ올리브네트웍스의 총수 일가 지분율과 내부거래율은 제재 수준을 크게 웃돈다. 때문에 CJ는 이번 IT부문 분할·편입조치로써 CJ올리브네트웍스의 내부거래 비중을 대폭 낮추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재계의 일감몰아주기 양상은 정보기술 서비스를 담당하는 SI사에 집중돼 있어서다. 

(사진=신민경 기자)
CJ제일제당센터. (사진=신민경 기자)

CJ가 공정위의 감시망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4세 경영 승계의 윤곽도 그리고 있단 게 업계 중론이다. 분할과 합병 과정에서 이 부장이 주식교환(교환 비율 1대 0.5444487)을 통해 지주 지분을 처음 보유하게 돼서다. 이 부장과 이 상무는 각각 CJ 주식 2.8%와 1.2%를 갖게 됐다. 이후 이 부장은 인적분할로써 지분 17.97%을 취득한 올리브영을 성장시켜 상장을 추진하는 등 자신의 지분가치를 최대한 늘릴 것이란 전망이다. 

반대로 '쪼개고 합치는' CJ의 이같은 행보를 두고 비정상적인 승계 작업의 일환이라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이 회장이 자녀가 다수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기업을 성장시킨 뒤 지주사에 편입시키는 방식을 차용한 것은 곧 경영 승계 과정에 편법적인 재계 관행이 그대로 반영됐음을 의미한다는 시각에서다.

총수 일가 지분이 다수 집중된 SI업체 등의 비주력·비상장 회사와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촉진함으로써 덩치를 불려 승계 자금을 마련한 사례는 비단 CJ만이 아니다. 

현재 LG그룹이 SI업체인 LG CNS 지분 85%를 보유 중인 가운데 구광모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지주사 지분 44%를 가지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에 따르면 회장 일가의 지분율이 20%가 넘는 지주사가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자회사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게 된다. 현재로선 이 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나 김 위원장이 꾸준한 법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단 점에서 지주사가 LG CNS 보유 지분을 50% 아래로 낮추는 등 지분 정리에 속도를 붙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SDS도 높은 내부거래 비중으로 공정위의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이건희 회장(0.01%)와 이재용(9.2%) 등 총수 일가의 삼성SDS 직접 보유 지분율이 17% 정도로 규제를 벗어나진 않지만 그룹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이 77%를 웃돌아서다.

재계를 중심으로 변칙적인 형태의 지분 승계와 재원 마련 관행이 확산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정부가 기업에 물리는 상속세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다. 상증세법을 개편하지 않으면 설립과 운영이 비교적 용이한 SI업체를 활용해 상속세를 피하고 부를 자식에게 전하는 일이 꾸준히 자행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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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자들과 백브리핑을 진행했다. (사진=신민경 기자)

현행 상증세법(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고 세율은 50%로, 30억원이 넘는 금액을 상속 받을 시 이같은 세율이 적용된다. 이는 OECD 최고세율 평균인 26.6%의 갑절 수준에 해당한다. 또 실상 우리나라 상속 제도는 최대주주 보유 주식에 대해 10~30%를 할증하므로 최대 65%까지 세율 부과가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세금을 내려면 사실상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 기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길 정도"라고 언급했다.

이와 대해 강희주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한국증권법학회장)는 디지털투데이에 "기업승계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상속세 등 조세부담인데 국내 상속세율이 높으니 기업경제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SI업체를 통한 경영권 승계를 성공시키면서 여타 대·중견기업들도 상속세를 피해 자사에 유리한 선택으로써 해당 관행을 따르는 것뿐"이라고 밝혔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득세와 상속세의 이중 과세 문제가 있으며 최대주주의 상속지분을 할증평가해 과세하는 제도도 전례 없는 듯하다"면서 "국내 대부분의 기업들이 SI업체를 통한 일감몰아주기와 편법 승계를 자행하는 실정인데 이는 제도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어 "미국에선 트러스트 등 자선신탁이 있어 총수일가가 특정 재단에 부를 기부하고 축적할 수 있게 보장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금융실명제 확립 이후 이렇다할 승계 보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상속세율을 대폭 인하하면 이같은 편법 승계도 줄고 국내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상속세율을 인하할 뿐만 아니라 할증평가 제도를 개편하고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넓히는 등 전반적인 상증세 개편안을 마련해야 한단 목소리도 나왔다. 김상국 경희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거시적으로 볼 때 장기투자가 가능하단 점에서 국내에서 오너 경영은 장점이 많은데 상속세를 위해 현금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회사 굴절을 감행하는 오너들을 보면 안타깝다"면서 "상속세율을 20~30% 수준으로 크게 낮추고 가업상속공제 대상 범위도 확장한다면 국부 유출 위험도 낮아져 궁극엔 고용 활성화를 이끌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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