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국세청장이 상공인들과의 대담에서 국세행정 운영방안 개편을 약속했다. 이로써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은 내년 말까지 세무검증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또, 보다 많은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들이 정기 세무조사 대상에서 제외 혹은 유예될 예정이다. 업계와 학계는 대체로 국세청장의 제도 추진 방향성과 상공인들의 요구가 맞닿은 항목들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 같은 친기업적 세정 환경이 투명경영을 와해하고 세금 탈루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어, 양편이 이견을 좁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승희 국세청장 "기업은 경영에 집중해야...세금 걱정 덜도록 세정 지원할 것"

한승희 국세청장은 지난 1일 남대문 상의회관에서 열린 초청간담회에서 "일자리 창출기업의 세무조사 제외 혹은 유예, 비정기 조사 축소를 통한 세무부담 최소화를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승희 국세청장이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상의)
한승희 국세청장이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상의)

한 국세청장은 이어 "자영업자·중소상공인에게 내년 말까지 세무검증을 배제하고, 경영애로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세금유예를 실시하는 등 세금문제에 대한 걱정 없이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는 세정지원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대한상의 회장단 "사전통지비율 확대하고 연구원 퇴직금도 세액공제 해달라"

이날 간담회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등 21인으로 구성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단(이하 상의 회장단)이 국세청장에게 건의한 항목은 ▲연구 인력·개발비(R&D) 세액공제 확대 ▲경영애로 수출기업에 대한 세정지원 확대 ▲수출 중소기업 부가가치세 조기지급 확대 ▲해외진출 중소기업에 대한 세정지원 요청 ▲일자리 창출 기업에 대한 세정상 우대 ▲명의신탁주식 정상화 배려 ▲연결법인 통합 정기 세무조사 실시 ▲정기세무조사 사전통지제도 개선 ▲세정지원단 통합, 상시 운영으로 총 9가지다.

대한상의 회장단 건의안 갈무리
대한상의 회장단 건의안 갈무리

특히 상의 회장단은 연구·인력개발 세액공제와 관련해 "현재 연구원들에게 지급하는 급여와 상여금은 공제대상이지만 퇴직금은 공제대상이 아니다"면서 "연구원 퇴직금에 대해 R&D세액공제를 허용한다면 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이 활성화돼 혁신성장에 유익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상의 회장단이 국세청장에 개편 요구한 9개 항목... 전문가들 대체로 '긍정적'

상의 회장단이 건의한 항목들에 학계와 업계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먼저 상공인들이 가장 강조했던 부문은 연구·인력개발 세액공제 적용 확대다. 기존에는 기업 연구원들의 급여와 상여금만 세액공제 대상이었으나, 퇴직금도 적용 대상에 포함해 달라는 것이다.

정지선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해당 건의안을 반겼다. 정 교수는 "애초에 퇴직금이라는 개념이 급여의 후불의 성격을 갖고 있다. 본질이 같으므로 이 둘을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면서 "연구·인력개발 실적이 활발해지면 기업의 이윤도 커지고, 세금도 덩달아 늘어나서 경제적 호황이 야기될 것이다"고 말했다.

상의 회장단의 또 다른 건의안인 '명의신탁주식 정상화 지원'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대체로 낙관하고 있다. 명의신탁주식은 지분조정을 위해 타인 명의를 빌려 발행한 주식을 말한다. 이같은 명의신탁주식은 주로 법인설립 당시 발기인규정을 맞추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최근에는 과점주주(발행주식의 과반수를 소유하고 기업경영을 지배하는 주주)를 피하거나 배당 소득 발생 시 종합소득세를 줄이기 위한 의도로도 만들어진다. 이때 조세 회피 목적 외 사유로 명의신탁한 주식은 정상화하도록 지원해 달라는 게 회장단의 입장이다.

장진기 한성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비상장 기업들의 부득이한 차명주식은 양해를 해줘야 한다"며 "가업승계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간편 실명전환을 지원하는 등 정상화를 도모하는 것은 필요한 개편이다"고 말했다.

(사진=국세청)
(사진=국세청)

상의 회장단 9가지 건의에 일각선 "일부 문제 소지 있다"

상의 회장단이 한승희 국세청장에 건의한 9개 항목들 가운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지점은 두 군데다.

먼저 '일차리 창출 기업의 세정상 우대' 항목이다. 현재 국세청은 수입금액 1000억원 이하인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에 한해 정기세무조사 유예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회장단은 세무조사 제외와 유예 대상을 수입금액 1000억원 이상 기업으로 확대해 달라고 요구했다.

해당 제도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장진기 한성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회의적이다. 장 교수는 "국내 거의 모든 중소기업 수입금액이 1000억 원 이하다. 그런데 이 제한 기준의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은 대기업 자회사들까지도 포함하라는 의미다"면서 "일자리 창출을 최대 목표로 두고 있는 정부와, 세무조사 면제 혜택을 원하는 대기업 자회사 등의 입장이 맞물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도 제도의 전제 자체를 부정하는 반론을 내놨다. 김 회장은 "일자리 창출 기업이라고 전제를 부여하는 것부터 잘못 됐다"면서 "세무조사는 모든 기업에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 일자리 창출력이 우수한 기업에 한해 세무조사를 유예한다는 건 특혜이므로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반면 긍정적 시각을 보이는 전문가도 있다. 정지선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세청에서 자체적으로 대기업 자회사는 배제할 것"이라며 1000억원 이상 수입금액의 기업을 세정 수혜 대상에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정 교수는 "형식상으로는 중소기업이나 실질적으로 대기업에 귀속돼 있는 회사들은, 국세청에서 실질적 독립성 여부를 따져 수혜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다"고 밝혔다.

한 국세청 법인세과 담당자는 "관계 기업과의 매출액 합계가 기준을 초과하는 법인의 경우 중소기업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며 "이처럼 중소기업 구조에 대기업 계열사의 조건들이 부합할 여지가 없으므로, 제한 범위를 확대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대한상의 회장단 (사진=대한상의)
간담회에 참석한 대한상의 회장단 (사진=대한상의)

두 번째로 논란이 되는 항목은 '정기 세무조사의 사전통지제도 개선'이다. 현재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 사전통지 비율은 약 60%다. 이에 상의 회장단은 사전통지비율을 확대해 달라고 건의했다.

장진기 한성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해당 항목 개편에 동의했다. 장 교수는 "미리 통지해도 크게 문제 없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기업들이 세무조사를 미연에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현재 사전 통지비율을 80%까지 올려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지선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도 사전통지비율 확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 교수는 "소득세도 납세자가 직접 소득을 신고한다. 세무조사 또한 납세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탈루의 위험성보다는 기업의 철저한 준비가 가능해졌다는 점에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기업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은 세무조사가 잦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리 대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임박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고용창출에 유리한 대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반면 박헌문 정일세무법인 세종지사장은 "사전통지율 확대 문제는 양날의 칼"이라고 지적했다. 박 지사장은 "사전 통지 시 증거 인멸과 현금 보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자리 증가와 경기 활황을 우선시한다면 좋은 정책이지만 이를 악용하는 기업들이 꽤 있을 것이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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