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양대규 기자] 삼성 최고 경영진들의 비리를 비롯해 내부거래, 뇌물수수, 노조 탄압, 경영권 승계 등을 감시하는 외부 기관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위원회)가 본격적으로 출범한다. 위원회는 위원장인 김지형 전 대법관을 비롯한 법조계, 시민사회, 학회 등의 외부인사 6인과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 고문이 포함된 7명의 꾸려진다.

위원회는 1월 말 열릴 삼성의 7개 주요 계열사들의 이사회를 거쳐, 빠르면 2월 공식적 출범할  예정이다. 7개 주요 계열사에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가 포함된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지형 전 대법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위원회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양대규 기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지형 전 대법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위원회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양대규 기자)

 

김지형 전 대법관  "구성부터 운영까지 자율성·독립성 보장받아"

9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로 한 김지형 전 대법관은 위원장 내정 경위와 위원회 구성, 지위, 기본 원칙, 향후 일정 등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를 자신이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 열었다.

기자간담회에서 김 전 대법관은 “(준법감시위 설립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직접 만났다”며 이 부회장에게 “위원회의 구성부터 시작해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율성과 독립성을 전적으로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완전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진 위원회 보장을 위해 그룹 총수의 확약이 필요했다”며 이 부회장을 만난 이유를 설명했다.

김 전 대법관은 ”위원회가 마련할 준법감시 프로그램이 실효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이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고 덧붙였다.

김지형 전 대법관은 실제로 위원회를 구성할 때 삼성의 의견이 없이 외부인사를 중심으로 배정했다고 밝혔다. 위원장을 포함한 전체 내정자 중 6명이 외부 인사이며, 회사 측 내정자는 1명이다.

그는 “외부위원도 영역별 전문성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의 대표성을 확보하려고 했다”며 “저를 포함한 2명은 법률 전문가, 2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분야 또는 기업의 지배구조 분야의 학계 전문가, 마지막 2명은 시민사회와 소비자를 대표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인용 내정자 한 명을 제외하고 내정자 5명 모두 저와는 초면인 사이”라고 덧붙였다.

김지형 위원장은 대법관 시절 김영란 대법관 등과 함께 여러 판결에서 진보 성향 의견을 주로 내는 인사로 주목받았다. 그는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구의역 지하철 사고 진상규명위원장, 삼성전자 반도체질환 조정위원회 위원장,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장 등 사회적 갈등 해결과 관련해 역할을 했다. 현재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직과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심사위원회 민간 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전 대법관을 제외한 법조계 인사는 봉욱 변호사로, 검찰에서 대검차장을 역임했다. 유수한 대기업의 부패범죄를 수사한 경험이 많다. 김 전 대법관은 “이를 계기로 기업의 준법 경영에 많은 관심과 풍부한 식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명의 학예 전문가는 심인숙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경영전문대학원 교수를 선정했다. 심인숙 교수는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설치한 여러 위원회 위원, 특히 금융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한 금융·증권·자본시장 전문가다. 김우진 교수는 재벌의 과도한 ‘사적 편익’추구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온 기업 지배 구조 이슈에 대한 전문가다.

김 전 대법관은 “학계의 두 분 내정자는 공통적으로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의 준법경영이나 거버넌스에 관해 비판적 개선의견을 표명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두 명의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인물은 권태선 시민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와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이다. 권태선 대표는 언론인 출신의 시민활동가로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재벌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운동을 진행했다. 고계현 사무총장은 경실련 최장수 사무총장 출신으로 삼성을 비롯한 재벌의 지배구조, 경영권 승계, 노사관계 이슈에 비판적인 의견을 꾸준히 내세웠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위원 中 노동 전문가 없어…사측 위원은 이재용 부회장 '최측근'

김 전 대법관은 5명의 위원을 삼성에 비판적인 인물들을 내세웠지만, 사측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이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 고문을 선정했다. 이인용 고문은 MBC 보도국 출신으로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 사장,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 사장을 역임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서울대 동양사학과 선배이기도 하다.

김 전 대법관은 “삼성전자 백혈병 등 질환 관련 조정위원회에서 처음 만나 이런저런 실랑이를 많이 한 인연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7명의 내정자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노동계 인물이나 노동 전문가가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그룹의 고질적인 노조 문제도 위원회가 해결하겠다면서 노동계 인물을 제외하고 법조인, 언론인, 교수 등의 소위 ‘화이트칼라’ 위주의 선정은 납득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김 전 대법관은 “위원회가 공식 출범하면 부족한 인력은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서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사측의 인물을 삼성 미전실 출신의 이인용 고문이 맡은 것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삼성 그룹과 최고경영자의 불범행위를 감시해야 하는 위원회의 7명의 위원 중에 감시 대상인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이 선정된 것 역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 고문은 삼성 홍보팀에서 ‘삼성의 입’으로 불렸으며,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 뇌물공여 사건’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후 복역 중이었을 때 가까이서 보좌한 인물로 잘 알려졌다. 또한 이 고문이 속했던 미전실은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와 국정 농단 사건, 경영 승계 등의 문제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조직으로 결국 지난 2017년 해체됐다.

김 전 대법관은 이번 위원 내정자들에 대해 “기업의 준법⋅윤리경영을 향한 유의미한 변화와 진전을 바라는 관점에서 합리적인 비판과 균형 잡힌 견해를 견지해 오신 분들로 채우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법관이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사진=양대규 기자)
김 전 대법관이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사진=양대규 기자)

 

"위원회는 회사 외부 독립 기구… 파수꾼 역할할 것"

위원회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계열사와 협약을 체결하고 이사회 결의를 거친 후 위원회 활동을 할 계획이다. 우선 삼성의 주요 계열사 7개의 계열사 간 협약을 맺고 참여해서 위원회의 준법감시를 받는 것을 예정하고 있다. 이 협약은 이들 1월 말 이들 계열사의 이사회에서 의결되면 진행될 예정이다.

김 전 대법관은 “위원회는 이들 회사의 이사회 산하 등 내부에 속한 기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원회는 회사 외부에 독립하여 설치되는 기구로서 관계사들에 대한 준법감시 업무를 위탁받아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대법관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생명으로 삼으며 ▲준법⋅윤리경영에 대한 파수꾼 역할을 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 ▲준법감시 프로그램 및 시스템이 전반적이고 실효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구체적 실행방안을 구현 ▲준법감시 분야에 성역을 두지 않겠다는 위원회 운영의 네 가지 기본 원칙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원칙에도 전문가들 사이에는 준법감시위원회가 과연 정상적으로 운영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위원회의 운영자금을 비롯한 위원들과 실무자들의 급여가 삼성그룹에서 나오는 데 독립성 유지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문제와 법적 강제성이 없는 위원회가 회사 내부의 불법적인 행동을 조사하기 위해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 등이 나오고 있다.

이에 김 전 대법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뭔가를 하는 편이 낫다”고 강조했다. 그는 “삼성이 변화를 택한 타이밍이 썩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차선이지만 이제라도 변화를 향해 열린 벽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김 전 대법관은 “결과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매우 힘든 일이고,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는 저를 비롯해 위원회에 참여한 여러분들에게 커다란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두려운 일이다”며 “하지만 실패는 있어도 불가능은 없다는 것이 제 철학이다. ‘실패도 성공에 이르는 과정의 일부’라는 말이 있다. 설령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결국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며 위원회 운영의 당위성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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