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시장의 원조격인 일본이 한국과 중국 기업의 공세 속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의 마지막 희망인 재팬디스플레이(JDI)가 최근 약 1조 원의 적자를 기록해 일본의 디스플레이 산업이 이제는 그야말로 ‘막바지’에 도달했다는 평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애플이 협력사인 JDI에 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애플이 투자하기로 한 중국 펀드의 기자회견이 무산되며, 한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JDI의 회생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공세에 디스플레이 산업을 수성하기 위해 JDI를 출범했다. 일본의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가 2000억 엔(약 2조 3000억 원)을 출자하며, 당시 일본의 주요 디스플레이 기업인 히타치, 도시바, 소니 등 3개사의 디스플레이 관련 사업부문을 통합했다.

하지만 JDI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최신 기술력과 중국 LCD 기업들의 공세에 경쟁력을 잃고 경영난에 빠지게 됐다.

지난 9일 JDI는 2분기 실적 발표에서 6월말 현재 자기자본비율이 마이너스 19.3%로 772억 엔(약 8800억 원)의 채무 초과에 빠졌다고 밝혔다. JDI는 2분기 적자만 832억 엔(약 9500억 원)을 기록했다.

(사진=닛케이)
(사진=닛케이)

JDI, 중국 펀드·애플 9000억 원 지원 무산

교토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JDI는 경영 재건을 위해 중국 펀드 등 금융지원을 받기로 했지만 금융지원이 늦어지며 경영 재건의 장래에 불안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JDI는 대만과 중국 전자부품 업체들로 구성된 펀드에 800억 엔(약 9000억 원)의 자금지원을 받고 전체 지분 약 50%를 넘기기로 했지만, 결국 무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된 중국 측과 JDI의 기자회견이 돌연 취소되면서, 이에 대한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애플이 투자하기로한 1억 달러(약 1200억 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JDI는 “우리는 하베스트테크로부터 그러한 투자 이행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은 약속 서한을 받았다. 또 하베스트테크 해외펀드가 제공할 예상 투자금액 중 1억 달러(약 1200억 원)를 JDI 고객(애플)으로부터 관련 지원을 받아 확보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어제 우리는 미스터 리로부터 하베스트테크 해외펀드와 고객은 하베스트테크 해외편드에의해 제공될 예상투자액이 3억 달러(약 36000억 원)에서 4억 달러(약 4700억 원)로 변경된다는 데 대해 고객이 합의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투자는 결국 이행되지 않은 상황이다. 애플의 투자 역시 불투명하다.

앞서 애플은 중국에서 공급받는 LCD의 일부를 JDI로 넘긴다고 밝힌 바 있다. JDI는 애플의 협력사로 아이폰XR과 구형 아이폰용 LCD 패널을 판매하며, 차기 애플 워치에 들어가는 OLED를 납품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JDI는 지난해 말 아이폰XR 판매 부진으로 아이폰용 LCD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JDI는 23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도 2억 6000만 달러(약 3000억 원)의 100배에 가까운 수치다.

애플 와치(이미지=양대규 기자 / 소스=Pexels)

애플은 차기 애플워치를 JDI에서 제조한 OLED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지만, LCD로 이미 큰 손해를 보고 있는 JDI에는 새로운 OLED 라인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업계는 JDI의 OLED 사업 진출이 너무 늦었다고 지적한다. 이미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기술과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중저가 시장에는 중국의 물량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JDI는 5년째 적자를 보이며 지난 6월말 자기자본비율이 마이너스 19.3%로 떨어지는 등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이에 JDI는 일본내 직원 25%인 1200명을 감원하며, 스마트폰 액정패널 사업부를 분사하는 등 구조개혁을 단행할 방침이다.

한국 정부, WTO에 JDI 제소할 가능성도

최근에는 한국 정부가 올해 초 일본 정부의 JDI에 대한 불공정 지원 의혹으로 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초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된 100여개 품목의 ‘롱 리스트(후보목록)’가 있고, 1~3번째에 해당하는 품목이 이번에 일본이 규제한 것"이라 밝혔다. 업계는 롱 리스트 중 하나가 JDI일 것으로 예상한다.

JDI를 출범한 산업혁신기구는 1999년 산업혁신법 제정 당시부터 WTO 보조금 협정 위반 논란이 있었다. 특정 기업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서 정부가 예산을 투입했으며, 지원 기업이 정부 재정으로 싼 값에 제품을 판매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는 한국 정부가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 공세에 대한 카드 중 하나로 WTO에 JDI를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극심한 경영난에 투자 계획도 무산되고 있는 JDI의 여건에 한국 정부의 WTO 제소는 심각한 타격을 안겨 줄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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