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에서 결국 제외했다. 이로 인해 지난달 4일부터 일본이 수출 규제 품목으로 지정한 3개 소재 외에도 총 1194개의 품목을 국내로 수출할 때,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총 1194개의 품목 중 약 159개 품목을 집중관리 하기로 결정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로 약 40개의 소재·부품·장비 품목이 위험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수출 규제로 인한 피해는 디스플레이 산업보다 반도체 산업이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금융투자 김경민 연구원은 “디스플레이 산업의 주력인 OLED 산업은 LCD 산업과 달리 초기 생태계가 국내에서 조성돼 핵심 장비·소재 국산화 비중 높다”며, “따라서 화이트리스트 제외 품목에서 OLED 전용 장비·소재보다 반도체 공정과 유사한 TFT 공정용 장비·소재 및 LCD 관련 부품이 부각된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 구조는 중국의 시장 지배력이 높은 LCD에서 아직 국내와 중국의 기술력 차이가 있는 OLED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업계는 일본의 장비·소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LCD 산업에서 OLED로의 전환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반도체에서 삼성전자의 초미세 공정의 핵심인 EUV(극자외선) 노광공정에 사용되는 주요 소재들과 메모리 반도체에 사용되는 실리콘 웨이퍼를 포함한 다양한 소재·장비들의 일본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정부, 159개 품목 집중 관리…日을 국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

한국 정부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방침에 대응해, 전체 일본 수출통제 가능 품목 중 주요 159개 품목을 집중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159개의 품목은 특히 대일 의존도가 높아 일본의 조치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들 159개 품목을 중점 모니터링하면서 필요할 경우 신속한 지원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일본의 수출통제 가능 품목 1194개의 약 13% 정도다.

일본의 1194개 품목 중 캐치올(Catch all)이라고 불리는 74개 비전략물자를 제외한 전략물자는 1120개. 전략물자 1120개 중 화이트리스트와 무관한 건별 허가제를 적용받는 군사용 민감물자는 263개. 이를 제외한 품목은 총 857개다.

산업부는 품목 자체가 단순히 '개별 품목'으로 분류되거나 관련된 기술규격, 기술 등으로 돼 있어 비슷한 것끼리 묶는 그루핑을 통해 495개 품목을 추렸다. 이 중 국내에서 사용하지 않거나, 일본에서 생산하지 않고, 국내 사용량이 소량인 품목, 수입 대체가 가능한 품목 등을 제외한 159개 품목을 산업부는 집중 모니터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산업부는 일본의 추가 제재에 대한 대응책으로 일본을 한국의 화이트리스트에서 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의 백색국가는 '가'군(29개국)과 그렇지 않은 '나'군으로 이뤄져 있다. 정부는 새롭게 지역을 분류해 별도 '다'군을 만들어서 일본을 배정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일본의 '추가 규제' 이후 바뀌는 것들(자료=산업부)
일본의 '추가 규제' 이후 바뀌는 것들(자료=산업부 전략물자관리원)

이어 5일 정부는 대규모 투자 및 연구개발(R&D) 혁신 등을 담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159개 관리대상 품목 가운데 100개 품목을 따로 선정해, 추경예산 1773억 원과 내년 예산을 적극 활용해 집중적으로 기술개발을 지원할 방침이다.

한편 4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청협의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는 일본의 경제 공격에 대해 상세한 산업 대책을 착실히 이행해 전화위복이 되도록 할 것"이며, "일본의 경제 공격을 예상해 종합 대응책을 준비해왔다. 적어도 네 가지를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낙연 총리에 따르면, 네 가지 대응책은 ▲소재·부품 산업을 키워 과도한 대일본 의존을 탈피하고 산업의 저변을 넓히는 것 ▲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적 분업 체계를 다지는 것 ▲제조업을 새롭게 일으키는 것 ▲청장년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 등이다.

이 총리는 “정부는 이미 발표했거나 발표할 대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며 "모든 대책을 기업과 정치권에 그때그때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과 기업의 협조를 부탁한다"며 "정치권도 경제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 달라"고 덧붙였다.

일본의 수출허가제도 개요(사진=산업부 전략물자관리원)

 

삼성전자·SK하이닉스 "소재 재고 적극적 확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만큼 수출 규제 품목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투자계획을 조정하는 중이다.

최근 양사는 컨퍼런스 콜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어떤 경우에든 생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영진과 관련 부서가 다양한 대책을 수립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일본의 조치는 소재에 대한 수출금지는 아니지만 새로운 허가 절차에 따른 부담과 여러 진행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어 가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가능한 범위에서 관련 소재 재고를 적극적으로 확보하면서도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공정 투입량을 최소화하도록 조정하며 생산 차질이 없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SK하이닉스는 생산과 투자를 조정할 계획을 밝혔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D램은 생산 규모(CAPA)를 4분기부터 줄인다”며, “최근 성장세에 있는 CIS(CMOS 이미지 센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하반기부터 이천 M10 공장의 D램 캐파 일부를 CIS 양산용으로 전환한다. 여기에 D램 미세공정 전환에 따른 캐파 감소 영향이 더해져 내년까지 D램 캐파는 지속 줄어들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지=양대규 기자)
(이미지=양대규 기자)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SK하이닉스 김동섭 대외총괄사장, 이석희 대표이사 등이 차례로 일본으로 넘어가 현지 업체들과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양사의 적극적인 움직임에도 일본의 수출 규제가 진행된 지난 한 달간, 국내 업체들은 일본에서 수출 규제 품목의 소재를 전혀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재 수급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 역시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재고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국산화를 포함해 재고 확보를 위해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공정에서 사용량도 최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일본의 규제와 상관없이 국산화에 대한 노력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앞으로 반도체 산업 주요 품목의 수출 허가에 대한 ‘재량권’을 이용해 수출을 제한하는 등 제품 생산에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민 연구원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이 제외되는 경우 일본으로부터 수입할 때 품목별로 일일이 허가가 필요하다”며, “정치적 이슈와 별개로 수출 규제 이슈가 해결되더라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소재, 부품, 장비 국산화의 명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전략물자관리원의 '일본규제 바로알기' 사이트(사진=홈페이지 갈무리)
산업부 전략물자관리원의 '일본규제 바로알기' 사이트(사진=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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