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현대차그룹이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부지를 10조 5500억 원에 구입한다고 했을 때, 온갖 조롱 섞인 비판이 여론을 지배했다. 

10조 원이라면 ‘피아트크라이슬러(Fiat Chrysler)’를 구입할 수 있었다. 전통적인 자동차 브랜드인 피아트, 크라이슬러, 지프(JEEP), 마세라티까지 모든 현대차 아래 속하게 돼, 벤틀리, 포르쉐, 부가티 등을 인수해 몸통을 키운 폭스바겐 그룹에 이은 거대 완성차 그룹이 될 수 있었다. 

R&D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부지 매입 당시인 2015년 기준 현대차그룹의 R&D 투자액은 약 3조 7천억 원으로, 폭스바겐의 18조 9천억 원, 토요타의 11조 4천억 원, GM의 9조 1천억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였다.

생산라인을 증설할 수도 있었다.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건설 비용은 약 1조 7천억 원. 10조 원이면, 7~8개 공장을 증설 가능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강남 한복판에 땅을 샀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구입 목적이었던 글로벌비즈니스센터(이하 GBC)는 첫 삽도 뜨지 못했다.

그렇다면 현대차그룹의 전략은 실패한 것일까?  

GBC를 위한 변명…미래는 자율주행차가 달린다

우선 10조 원에 달하는 GBC가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왜 유명 차량 브랜드 기업을 인수하지 않았냐”는 것. 인수를 통해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시장에서 약점으로 평가받던 인지도를 높여야 했다는 주장이다. 또 이를 기반으로 고급 차를 선호하는 중국 시장에서도 선전하지 않겠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생각은 달랐다. 현대차 관계자는 “브랜드 값으로 10조원은 비싸고 비싸다”며, “게다가 유럽 등 미래 차 시장은 완전히 자율주행으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중국과 3대 시장인 EU의 자동차 시장은 2019년 현재 아직 디젤 · 가솔린 등 내연기관 차량에 대다수지만,  동력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전기로 사용하는 전기차로의 전환이 점차 빨라질 전망으로, 중장기적으로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 분석했다.

이제 자동차 산업의 변화는 제조업을 넘어 디지털리티 시대로 이동함을 암시하고 있다. 어쩌면 산업 구분이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는 것. 

GM 역시 자율주행, 전기차 등 자동차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체질을 변화하고 있다. GM은 2019년 내 오하이오 등 북미 완성차 공장 5개를 폐쇄하고 인력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신사옥 조감도 (사진=현대차)
현대차그룹의 신사옥 조감도 (사진=현대차)

생산능력은 충분, 관건은 기술 확보

현대차그룹도 GBC를 자율주행 거점으로 낙점했다. 

지난 10일 장웅준 현대차 자율주행기술센터장(상무)은 “남양과 의왕 등에 분산된 자율주행 선행 연구팀을 삼성동으로 이동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삼성동이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연구개발의 중요한 거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은 여러 다양한 국내외 기업들과 협업해 2024~2025년에 완전 자율주행차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여전히 완전한 자율주행차가 등장하기까지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앞서 연구개발(R&D)본부 조직개편을 단행하기도 했다. 목적은 미래 자동차 모빌리티 시장 대응. 기존 5개의 병렬 구조를 ▲제품통합개발담당 ▲시스템부문(4개담당) ▲PM담당의 삼각형 구조로 단순화했다. 

당시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그룹 연구개발본부 사장은 “이번 R&D 조직 구조 개편으로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와 고객 요구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연구개발 환경과 협업 방식의 변화를 통해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는 미래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현대차)
(사진=현대차)

현대차는 기술 인재도 모으고 있다.

대표적으로 뇌과학자인 장동선 박사를 미래기술전략팀장으로 영입해 자율주행 연구 일선에 세웠다. 그 위로 미래 전략기술본부장에는 삼성전 자 부사장 출신인 지영조 사장을 앉혔다. 그는 브라운대 기계공학 학사·석사에 응용수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으며, 엑센추어·AT&T 벨 연구소 등에 근무하며 기술업계에 몸담았다. 

또 본부 산하 연구 조직인 미래혁신기술센터의 센터장에는 설원희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객원교수를 영입했다. 설원희 센터장은 SK텔레콤 플랫폼 R&D 센터장,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연구개발(R&D)전략기획단 산업융합 투자담당자(MD)로 근무하며, AI·빅데이터 등 산업융합분야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게다가 모빌리티 연구를 위한 별도의 AI 전담 조직 AIR랩(에어랩)을 신설하고, 그 수장에는 네이버 출신의 김정희 상무를 영입하기도 했다. 순혈주의가 강한 현대차그룹인 점을 고려하면, 고위직에 잇단 외부 인사 영입은 이례적인 행보다.

현대차 관계자는 “생산능력 측면에서 보면 테슬라 등 현재 앞선다는 기업들 보다 현대차가 앞선다”며, “자율주행차 시장은 여전히 각축전으로, 기술력 확보를 위한 현대차의 시도는 계속되며 GBC는 그 기술을 집약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