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양대규 기자] 지난 1일 발표된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수출 규제가 4일부터 본격적으로 발효된다. 이에 따라 국내의 주요 반도체 생산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디스플레이 주요 생산 업체인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일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업체들은 개별 대책도 준비하겠지만, 현재는 한국 정부의 대응을 보고 움직이겠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직접 발표한 제재인 만큼, 한국 정부의 대응이 중요하다. 기업이 나서서 해결하기는 어렵다”며, 정부의 적절한 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지난 30일 산케이신문에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한 내용이 보도되고, 1일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발표했지만, 한국 정부의 대응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규제의 시행이 눈앞으로 다가 온 지금, 한국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시급한 시점이다.

정부는 30일 산케이 신문의 보도 직후, 관련 업체들과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회의를 했으며, 지난 2일에는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이 김기남 부회장 등 삼성전자 임원들과 일본 반도체 제재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청와대는 주무 부처인 산업자원부를 통해 일본의 이같은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대상으로 삼고 엄격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런 정부의 방침에 업계는 제재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은 없고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라는 반응이다. 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는 21일로 예정된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내 정치적인 성격이 다분한 아베 내각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또한 3일 열린 고위당정청협의회당에서 당정청은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에 맞서 소재부품산업 육성을 위해 매년 1조원 수준의 투자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선은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말이다.

(디자인=양대규 기자)
(디자인=양대규 기자)

정부의 WTO의 제소와 소재산업 육성정책 등은 당연히 필요한 대응이지만, 지금 당장의 일본의 공격적인 행동을 막을 수 있는 대응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장기적으로 일본에 대한 소재 산업 의존에서 벗어나 국내 소재 산업의 육성은 꼭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 그 불을 끌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다. 오히려 소재 산업 육성은 진작 이뤄졌어야 하는 일이다.

4일 본격적으로 일본의 규제가 시작되면, 국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의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반도체의 경우, 공급과잉으로 인한 제품 재고 처리의 문제와 디스플레이의 경우에는 규제 항목이 폴더블폰에만 적용되는 소재라는 점이다.

하지만 제품의 재고가 쌓여 있어도, 감산을 결정하지 않는 이상 공장은 지속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규제 항목인 포토리지스트(PR)와 고순도불화수소(HF) 등 핵심 소재의 보유량은 기업 비밀이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얼마나 보유했는 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일본 외에 단기적으로 해당 소재를 공급할 만한 곳을 찾기도 어렵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역시 중국이 최근 OLED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새로운 먹거리 중 하나로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행이라면 플루오드 폴리이미드의 경우 국내의 코오롱 인더스트리 등 업체의 수준이 높은 편이라는 것이다.

무디스 로고(사진=무디스)
무디스 로고(사진=무디스)

일본의 규제에 대해 국제사회도 신중히 지켜보고 있다. 3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무디스는 "한국 제조업체들은 투입 소재를 일본 생산자에 많이 의존한다”며, 다만 “수출규제가 한국 제조업체 운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 규제 대상 품목인 플루오드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에칭가스의 올해 1∼5월 대 일본 의존도는 각각 94%, 92%, 44%로 나타났다.

무디스는 "한국 기업들은 수출규제 대상 소재의 주 소비자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메모리칩과 디스플레이 패널의 핵심 공급자"라며, "이들이 생산에 지장을 받으면 글로벌 공급 체인과 일본 업체를 포함한 기술·전자 기업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도 큰 타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일부 해소되면서 하반기부터 회복이 기대된 반도체 업계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부의 자국내 정치적인 효과를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 전 세계 반도체 업계에 나쁜 영향의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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