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제재가 장기화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로드맵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경쟁력을 지닌, 7나노(nm) 이하의 EUV(극자외선) 파운드리 공정에 일본산 포토레지스트(감광액)가 필수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포토레지스트는 에칭가스(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미드와 함께 지난 4일부터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 3가지 중 하나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EUV 공정 라인에는 193㎚ 미만의 포토레지스트가 필수적인데, 해당 소재는 일본의 JSR과 신예츠가 거의 독점 공급하는 소재다. 또한 다음달부터 추가 제재 품목 중 하나로 예상되는 EUV용 블랭크 마스크는 일본의 호야가 독점 생산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삼성전자의 EUV 파운드리 라인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의 핵심은 ‘EUV 라인’이라며, EUV 라인이 흔들리면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전략 전체가 어긋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해 말부터 삼성전자는 EUV를 통한 7나노 반도체 생산을 시작하며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전 세계에서 7나노 이하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대만의 TSMC와 삼성전자가 유일하며, 두 업체 모두 내년까지 5나노 이하의 초미세공정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삼성전자, EUV 기술 경쟁력으로 시장 우위 노려

7나노 공정에서 각축을 펼치고 있는 두 업체는 5나노, 3나노로 이어지는 초미세공정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삼성전자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파운드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생산시설 확충에는 투자되는 비용은 약 60조 원이다. 삼성전자는 화성캠퍼스 신규 EUV라인을 활용해 생산량을 증대하고, 국내 신규 라인 투자도 지속 추진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5나노 이하의 반도체 미세공정 성공을 위해서는 ASML에서 제작한 EUV 노광장비가 거의 필수다. EUV 장비는 대당 1500억~2000억 원에 해당하는 고가의 장비다. TSMC는 기존의 ArF(불화아르곤) 광원을 이용해 7나노 공정을 성공시켰지만, 5나노 이하의 초미세공정에서는 EUV를 쓸 수밖에 없어 시설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7나노 양산은 TSMC보다 한발 늦었지만, 7나노 EUV 공정은 TSMC보다 빨리 성공한 만큼, EUV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5월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7나노 공정부터 EUV 양산에 도입해 TSMC보다 빠르다"며, "다양한 환경에서 빠르게 EUV 양산에 대한 경험을 쌓은 점이 5nm부터 효과를 발휘해 TSMC와 공정 경쟁력 차는 근접한 수준까지 좁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도현우 연구원은 "기술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향후 삼성전자 파운드리 투자가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EUV 라인(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EUV 라인(사진=삼성전자)

지난해 2월 삼성전자는 경기도 화성캠퍼스에서 '삼성전자 화성 EUV 라인 기공식'을 열고 본격적으로 라인 건설에 착수했다. 화성 EUV라인은 올 하반기에 완공, 시험생산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또한 삼성전자는 지난 4월 5나노 공정을 개발했으며, 7나노 제품을 출하했다. 올해 내에 양산을 목표로 6나노 제품 설계를 완료하며, 초미세공정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9년 하반기에 6나노 적용 제품 양산을 시작으로 5나노 기반 제품 회로 설계 완성 그리고 4나노 핀펫 공정을 개발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2020년 상반기에는 5나노 공정 기반 제품을 본격 양산하고, FD-SOI 공정과 eMRAM 그리고 최첨단 패키지 솔루션 확대 등도 계획하고 있다.

이어 삼성전자는 차세대 파운드리 기술인 초미세 3나노 GAA 공정을 구체화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2019년 하반기 4나노 핀펫 공정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후 3나노 공정부터는 GAA 공정을 통해 반도체 칩을 생산한다.

日 규제로 EUV용 '포토리지스트'와 '블랭크 마스크' 수급 어려워 

전문가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삼성전자의 7나노 이하 미세공정 로드맵이 일부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EUV 공정에 필수적인 일부 소재들이 모두 일본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 규제를 가한 EUV용 포토리지스트는 일본의 JSR, 신에츠 등이 거의 독점 공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동진쎄미켐 등이 EUV용을 아직 개발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삼성전자가 보유한 재고가 현재 많지 않다며 당장의 생산에 투입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현재 생산에는 차질이 없지만, 삼성전자가 수주한 7나노 물량을 전면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해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규제가 시작된 4일 이후 3개 품목에 대한 일본 경제산업성의 수출 승인은 단 한 건도 없다. 현재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일본의 소재 업체에 물량을 주문하고, 일본 업체가 경제산업성에 수출 계약서와 승인 신청서를 제출하고, 경제산업성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지=양대규 기자)
(이미지=양대규 기자)

8월부터 일본의 추가 제재가 진행되면, EUV의 또 다른 핵심 소재인 블랭크 마스크가 문제가 될 전망이다. 현재 EUV용 블랭크 마스크는 일본의 호야에서 생산한 제품이 필수적이다. 국내에서 에스앤에스텍 등이 포토마스크를 제조하고 있으나, 아직은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호야가 생산하는 블랭크 마스크가 삼성전자 내 비중 60%를 상회하고 EUV용 블랭크 마스크는 호야가 독점 생산하고 있다"며, "웨이퍼와 블랭크 마스크는 국내 반도체 업체가 일본 제품을 가장 선호하기 때문에 규제가 가해질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EUV를 기반으로 하는 파운드리 산업을 확대하고 있는 시점에 일본의 수출 규제는 심각한 타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삼성전자는 퀄컴, IBM, 엔비디아에 7나노 반도체 수주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전량 수주는 못했다. TSMC 역시 애플과 하이실리콘을 비롯해 퀄컴, 엔비디아, AMD, 자일링스 등에 올해 생산할 7나노 칩 주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의 반도체 수출 제재가 장기화되면, 삼성전자에 발주한 7나노 물량이 모두 TSMC로 넘어갈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소재의 국산화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 다양한 루트로 핵심 소재들을 수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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