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양대규 기자] 일본 정부가 7월부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주요 소재들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할 계획이다. 이에 국내 주요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은 하반기 생산에 차질이 생길까 긴장한 분위기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이례적으로 기습적인 일본 정부의 발표에 관련 업체들은 현재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들은 갑작스러운 제재에 마땅한 대책도 세우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6월 30일 산케이신문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사실상의 경제 제재를 7월부터 발동한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4일부터 TV나 스마트폰용 OLED 생산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과정에 꼭 필요한 리지스트와 에칭가스(고순도불화 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금일 공식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LG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 타격 클 듯

국내의 대표적인 OLED 생산 기업인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주요 반도체 생산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전 세계 OLED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70% 이상이다. 낸드 시장 점유율도 60%가 넘는다. 

산케이신문은 갑자스러운 규제로 일본 외에 다른 대체 수입처를 바로 확보하기가 어려워 "반도체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박막형 고정밀 TV에서 앞서가는 LG전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리지스트는 세계 전체 생산량의 90%, 에칭가스는 약 70%를 일본이 점유하고 있다.

이번 제재가 실행되면, 일본 정부는 첨단재료 등의 수출에 관해 수출 허가신청이 면제되는 ‘백색 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한다. 일본 업체들이 관련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때마다 건별로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본은 한국을 안전보장상 우호국으로 인정해 2004년 ‘백색 국가’로 지정했다. 현재 미국과 영국 등 27개국이 지정됐다. 

금일 일본 정부에서 3가지 품목에 대한 규제가 발표되면, 사흘 후인 4일부터 계약당 수출 허가를 받아야 된다. 관련 허가신청과 심사에는 90일 정도 걸릴 전망이다.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사진=삼성전자)

갑작스러운 일본의 규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국내 경제에 반도체 산업과 디스플레이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충격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의견이 많은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는 주요 소재에 대한 대일 의존도를 줄이고 다양한 시장을 개척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피해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관련 산업 특성상 국내 업체들이 해당 소재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바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허가 절차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 소재 기업들의 타격도 '불가피'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인해 화웨이와 관련된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피해를 본 것처럼, 일본의 이번 제재는 한국 업체들도 타격이지만 자국의 소재 생산 업체들에게는 대형 거래처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일본의 입장에서도 잘못된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최근 G20에 참석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제품을 이제부터 살 수 있도록 인정하겠다"며, "대량의 미국 제품이 화웨이의 다양한 제품에 쓰이고 거래를 계속해도 괜찮게 본다. 안전보장상 문제가 없는 것은 장비와 설비 등을 팔아도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정치적인 문제를 경제·산업의 영역까지 확대하는 것은 양국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의 정치적인 의도가 너무 뚜렷하게 드러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부는 24일 열리는 참의원 선거를 의식한 제재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이번 조치는 징용 문제에 대해 한국 측이 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데 대한 사실상의 대항 조치”라며 “이 조치가 시행되면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둘러싸고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협정에 기초해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해왔지만 한국 정부가 문제 해결을 향한 대책을 내놓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의 대항 조치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은 산케이가 보도한 일본의 제재에 관한 진위 여부를 파악하며,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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