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롯데가(家) 형제는 온 가족이 모이는 민족대명절인 설에도 제각기 따로 보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5번째 편지도 고사해서다. 신 전 부회장의 편지 내용은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을 멈추고 롯데그룹을 일본으로부터 독립시켜 분리경영을 하자는 게 주요 골자다. 한·일 양국 롯데의 대권을 잡으려던 신 회장으로선 불쾌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달 21일 신 회장 앞으로 '설맞이 초대장'을 보냈다. 신 전 부회장은 편지에서 "서울 성북동 우리 집에서 설 음식을 준비하고 친척들도 초대할 예정이다"면서 "동빈이도 이 자리에 와서 얼굴 보고 즐거운 이야기 나눴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또 "우리 형제는 다툼을 지속하며 아버지께 큰 심려를 끼치고 있다"면서 "형제가 손 잡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가장 큰 효도"라고 적었다. "사업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달 25일까지 신 회장의 회신이 있길 바랐지만, 신 회장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신 전 부회장의 국내법인인 SDJ코퍼레이션 홍보대행사는 "지난달 30일 현재까지 신 회장으로부터 설날 회동에 관해 회신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앞서 신 전 부회장은 SDJ코퍼레이션의 홍보대행사를 통해 지난해 4월 이후로 4차례에 걸쳐 신 회장에게 화해와 그룹 구조조정을 청하는 편지를 보낸 바 있다. SDJ코퍼레이션은 신 전 부회장이 한국 활동을 위해 기반으로 삼는 조직이다. SDJ는 신동주의 이름에서 따왔다. 국내에서 신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을 치를 시 여론전을 주도하기 위해 설립한 것으로 보인다. 

ⓒ신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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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전 부회장의 공개적인 사과와 요구 공세가 계속되는 데 대해 롯데그룹 측은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롯데 측은 신 회장의 의중을 바탕으로 입장문을 구성, 지난달 8일 발표했다. 

먼저 개인과 법인의 차이에 관한 이해 부재를 거론했다. 롯데는 "개인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회사와 상법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 회사는 차이가 있다"면서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은 특정 주주 개인의 의지가 좌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의 경우, 경영복귀를 꾀한 5번의 앞선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모두 패했다. 이 가운데 지난해 6월 주총은 신 회장이 구속 중인 상태라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건이 통과되지 못했다. 롯데는 "일본에서 신 전 부회장은 '경영자로서 부적격하고 윤리의식이 결여돼 있다'는 판결까지 받았다"며 "신 전 부회장은 일본 임직원 전자메일 사찰 등으로 회사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롯데는 보도자료를 통한 잇단 화해 시도에서 진정성이 의심된다고도 했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4월 23일과 24일 양일간 수감 중이던 신 회장에 면회를 시도했다가 거절 당한 바 있다. 당시 롯데 측은 "신 전 부회장은 수감 후 2개월이 지난 시점에 갑작스럽게 방문했다. 홍보대행사와 변호사 등 수행원 7명이 동행했다. 면회 시도 전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신 회장과 롯데 경영진을 비판키도 했다"며 거절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신 전 부회장은 면회가 불발된 날로부터 3일 뒤인 27일, 자신이 운영하는 '롯데 경영권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 홈페이지에 신 회장 해임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이 법정구속되던 지난 2월에도 "신동빈 회장은 즉시 해임돼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신 회장이 수감돼 있는 동안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을 통해 경영권 복귀를 꾀하고자 했던 것으로 읽힌다. 롯데 측은 "그동안 신 전 부회장의 행보에서 신뢰를 찾을 수 없고 화해 시도를 보도자료로 한다는 것 자체가 홍보용으로 활용코자 하는 것 같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신 전 부회장의 효심 언급에 대한 의구심도 드러냈다. 롯데 측은 "신 전 부회장 현재 신격호 총괄회장과 주주권 대리 행사 위임장 효력을 두고 소송까지 진행 중이다"며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한국롯데 지분도 대부분 매각했는데, 과연 신 총괄회장의 뜻과 상통하는지 의문이다"고 했다. 

신 전 부회장이 돌연 화해 모드로 전향한 데에는 일본 롯데를 완전히 도맡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본래 일본 롯데는 신 전 부회장이 이끌었고 신 회장은 한국 롯데를 책임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12월 신 전 부회장이 실적 부진의 여파로 부회장직에서 해임됐다. 이듬해 7월 27일 신 전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 롯데홀딩스에 찾아가 신 회장을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했다. 신 회장은 이틑날 긴급하게 정식 이사회를 열어 "전날 신 총괄회장의 해임 결정은 정식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불법적 결정"이라며 오히려 신 총괄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에서 해임했다. 신 전 부회장은 SDJ코퍼레이션을 세우고 반격에 나섰지만 지난 2015년 8월과 2016년 3월, 6월 주총에서 열린 표 대결에서도 신 회장에 패했다. 지난 2017년 6월 열린 4차 주주총회에서는 신 총괄회장도 등기임원에서 물러나게 됐다. 연속적 참패의 굴욕을 딛고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에라도 복귀하고자 신 회장에게 거듭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의 사과를 계속해 거절하는 신 회장의 속내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2017년 10월 롯데그룹은 롯데지주사를 설립했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한국롯데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를 해소키 위해서다. 신 회장의 궁극적 목표는 호텔롯데의 상장을 추진해 일본 롯데의 영향력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롯데지주와 호텔롯데 투자부문의 합병을 통해 한일 롯데를 총괄권을 획득하겠다는 것. 이처럼 한국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상단에는 호텔롯데가 있다. 그리고 한·일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꼭대기에는 호텔롯데의 최대주주인 일본 롯데홀딩스가 있다.

문제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가 광윤사(28.1%)라는 점이다. 광윤사의 최대주주가 바로 신 전 부회장이다. 게다가 최근 롯데지주의 자사주 소각으로 인해 호텔롯데의 롯데지주 지분율은 11.1%로 증가했다. 호텔롯데가 여전히 지배구조의 상단에 위치하는 한 롯데지주는 '미완의 지주사'인 것이다.

신 전 부회장에 대한 롯데 측의 입장이 단호한 점으로 보아 올해 설에도 두 형제의 회동을 목격할 순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국 롯데는 매출 90% 이상을 견인하나 일본 롯데홀딩스의 힘에 언제든 좌지우지될 수 있다. 일본 롯데까지 손에 쥐어야 실질 지배권을 얻는 것"이라며 "신 회장이 그룹의 지주회사가 있는 일본 롯데를 신 전 부회장에게 맡길 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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