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롯데 자일리톨껌의 동남아시아 수출품에 브랜드 국적이 일본으로 표기돼 있어 논란이다. 수년 전부터 각종 인터넷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재팬 브랜드'가 써진 롯데 자일리톨껌 용기 사진이 공유돼 왔다. 그간 한·일 양국에 걸친 롯데는 다국적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활발한 애국심 마케팅을 펼쳐 왔다. 지난 2015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김포공항으로 입국한 후 기자들 앞에서 "롯데는 한국 기업이다"고 국적을 확정짓기도 했다. 롯데가 해외에서 자사 브랜드 국적을 일본으로 한정한 데 대한 비판 여론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이유다.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Lotte, Japan Brand'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이모가 동남아쪽 여행을 갔다가 롯데 자일리톨껌을 사왔는데, 롯데기업 로고 옆에 'Japan Brand'라고 적혀있었다"면서 "일본에서 수입한건지 찾아보니 제조국은 인도네시아로 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여타 다국적기업들도 제품 로고 옆에 국적을 기입하진 않는데 롯데는 굳이 선진국 브랜드를 광고하려고 한 것 같아 웃겼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롯데타워와 롯데물산에서 차례로 애국심마케팅을 했던 게 생각난다"면서 "그때 내걸었던 '대한민국 화이팅'은 대한민국 국민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대한민국 소비자에게 하는 말이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커뮤니티 '클리앙'에 한 소비자가 올린 사진
한 소비자가 올린 사진. ⓒ커뮤니티 클리앙

실제로 구글 등 검색엔진에 관련어를 검색하면 롯데 로고 옆에 'Japan Brand'라고 적힌 사진이 다수 게시돼있다. 누리꾼들은 관련 게시글마다 "롯데는 한국에선 자국 브랜드인 척하더니 해외에선 일본 브랜드인 척한다", "롯데가 정말 일본기업이냐", "요즘 세상에 기업의 국적이 의미가 있냐", "매출과 순익 90% 이상이 한국계열사에서 나오지만 지배구조 정점엔 일본롯데홀딩스가 있지 않냐", "롯데가 직접 일본 브랜드로 표기하다니 실망스럽다" 등 다양한 의견을 남겼다. 

또 '타이애틱그룹'은 롯데 자일리톨껌 라임민트향 제품을 판매하면서 상세설명란에 '이 선도적 제품은 일본의 제과 대기업인 롯데가 만들었다(This pioneering product is manufactured by Lotte, Japan's leading confectionery company)'고 명시하기도 했다. 타이애틱그룹은 태국에서 각종 이베이, 아마존 상품들을 판매하는 온라인소매업체다. 

롯데 자일리톨 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롯데 인도네시아 현지법인 홈페이지에서도 기업의 기원을 1948년 6월로 명시했다. 1948년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일본에 주식회사 롯데를 처음으로 설립한 해다. 홈페이지에는 1993년 일본 롯데가 인도네시아에 외국자본 투자법인 합작회사를 세웠다고 표기돼 있다. 2008년엔 일본롯데가 롯데인도네시아의 지분 95%를 획득했다고도 돼 있다.

韓롯데 '중국과 베트남'-日롯데 '동남아'...양사 공략 해외시장 달리해

이처럼 논란의 중심에 선 판매제품들의 출처는 대부분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내 편의점과 도·소매할인점이었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 1848년 일본 도쿄 신주쿠에 '롯데 주식회사(이하 일본 롯데)'를 설립했다. 이후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에 즈음한 1967년 4월, 한국으로 넘어가 롯데제과(이하 한국 롯데) 주식회사를 세웠다. 현재 제과제조를 주력으로 하는 '일본 롯데'는 해외에 자회사 8개를 두고 있다. 미국과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대만, 필리핀, 폴란드, 브라질에 거점을 두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난 1994년 중국 내 롯데제과 현지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러시아, 베트남, 인도, 중동·중앙아시아 등에서 사업을 전개 중이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현지 법인은 애초에 한·일 합작으로 설립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2014년부터 롯데제과는 아시아국가 합작사의 보유 지분을 일본롯데홀딩스에 넘기는 등 사업 범위를 좁혔다. 이후 현재까지 한국은 주로 자금력을 동원해 인수합병을 끌어낸 후 신규 진출한 국가에서 사업을 펼치는 모양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 롯데는 별도 법인으로 분리돼 있다. 일본 롯데가 동남아시아를 주요 거점으로 삼기 때문에, 해당 국가에서 유통되는 제품에는 일본 브랜드가 표기돼 있는 것이다.

한·일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엔 호텔롯데의 최대주주인 일본 롯데홀딩스가 있다. 현재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가 광윤사(28.1%)다. 그리고 광윤사의 최대주주는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다. 최근 롯데지주의 자사주 소각으로 인해 호텔롯데의 롯데지주 지분율은 11.1%로 증가했다. 호텔롯데가 여전히 지배구조의 상단에 위치하는 한 한국의 롯데지주는 미완의 지주사에 불과하다. 신 회장은 최근 롯데지주와 호텔롯데 투자부문의 합병을 통해 한·일 롯데 총괄권을 획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신 회장의 원리더 체제가 가시화됨에 따라 롯데그룹의 통합경영을 기대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 양사의 단일화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는 않고 있다.

롯데제과 측은 "일본 롯데는 우리 롯데제과와 전혀 다른 회사다. 자일리톨의 경우 양사에서 판매·유통하고는 있지만 현재 양사 간 상호 교류는 전무하다. 한국 원산지 제품이 해외 수출된 경우엔 '재팬 브랜드'라고 적혀 있을 수 없다. 논란이 되는 사진 속 제품들은 일본 롯데의 제품들 같다"고 말했다.

롯데제과의 러시아 현지법인 ⓒ롯데제과
모스크바 롯데플라자 외관 ⓒ롯데제과

"롯데家 애국심마케팅 거두고 양사 단일화 작업 힘써야"

한·일 롯데 분리 경영의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롯데에 대한 소비자들의 원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롯데 스스로 소비자들에게 다국적기업보단 애국기업의 면모에 중점을 두고 관심을 호소해 왔기 때문이다. 롯데가 외국인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으로서 갖은 혜택을 받아왔다는 점도 이유로 거론된다.

롯데는 한국과 일본 양쪽에 근거지를 둔 다국적기업이다. 꾸준한 국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우리나라에서 애국심을 드러내는 판촉활동을 벌여왔다.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 롯데는 롯데월드타워 70층에 큰 태극기를 걸었다. 이듬해엔 3·1절을 맞아 롯데월드타워 42~58층에 '대한민국 만세'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또 롯데는 유독 많은 외투기업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지난 2017년 12월 재벌닷컴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기업(외국법인이나 외국인이 투자한 기업으로 주식 10%이상 취득해야 등록 가능, 이하 외투기업)은 국내 10대 그룹 계열사 10곳 가운데 1곳에 달했다. 외투기업은 조세특례제한법상 법인세와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각종 조세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국가가 국유재산을 수의계약으로 임대나 매각할 수 있는 수혜도 받는다. 삼성그룹의 호텔신라, 제일기획, 에스원, 현대차그룹의 현대글로비스, 현대카드 등이 외투기업이다. 이 가운데 롯데에는 계열사 3곳 중 1곳 꼴로 외투기업이 분포하고 있었다. 전체 92개 계열사 가운데 무려 28개(30.8%)가 외투기업이다. 이는 일본에서 사업을 벌이던 신 명예회장이 국내로 진출했기 때문으로 읽힌다.

신 명예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시절 외투기업으로서 국제관광공사 소유의 반도호텔을 헐값에 낙찰 받았고, 그곳에 롯데호텔을 지었다. 신 명예회장은 재일교포 자격으로 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동산 취득세와 소득세 등 뿐만 아니라 부동산투기 억제세, 영업세 등도 면제 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한양 소유의 잠실 금싸라기 땅을 롯데가 매입할 수 있게 해줬다. 그 자리에 개장한 것이 롯데월드인데, 이 사업 역시도 외투기업으로 진행됐다. 추후 정권을 잡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신 명예회장의 소원인 제2롯데월드(롯데월드타워) 신축 허가를 적극 추진토록 했다. 서울공항의 안전을 염려한 공군 수뇌부들을 해임키도 했다. 롯데월드타워를 주 업종으로 하는 롯데물산 역시 지난 1987년 외투기업으로 등록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이연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는 "다국적기업인 롯데가 국내에서 애국 관련 마케팅을 다수 펼친 것은 사실이나 여타 국내 다국적기업에 비해 높은 강도의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면서도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갈등은 원롯데의 진로를 방해하고 소비자들의 브랜드 인식도 혼란케 할 수 있으니, 이같은 갈등을 끝내고 한·일 롯데 단일화 구현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애국심 마케팅을 전개하기보다 한·일 롯데의 단일화에 힘쓰는 행보를 보이는 게 기업이미지 제고에 보다 효과적일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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