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찰떡궁합'으로 알려진 양띠와 돼지띠가 운명을 뒤집고 한판 승부를 벌일 태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추혜선 정의당 의원 얘기다. 지난 23일부터 추 의원과 신 회장 간 심리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추 의원은 신 회장에게 롯데사장단회의에서 갑질 근절대책을 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신 회장은 무응답으로 응수했다. 

옛부터 12지 동물들 가운데 양과 돼지의 조합은 돋보였다. 먹이사슬에서 두 동물 간 우열관계는 비등하다. 돼지는 지방질이 많고 한 번에 많은 새끼를 낳는다. 그래서 풍요와 힘을 상징했다. 양은 의젓하고 정직하지만 때때로 정도가 지나쳐 궁상맞다. 돼지는 양의 변덕을 수용하고 양은 돼지를 이해해준다. 무슨 일이든 잘 풀릴 정도로 좋은 궁합이라는 것. 이처럼 띠를 이용한 궁합풀이대로라면 신 회장과 추 의원의 결말은 '상극'이 아닌 '상생'이 돼야 할 것이다.

롯데그룹 사장단 회의가 지난 23일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렸다. 이날 신 회장과 계열사 사장단 등이 참석했다. 석방 이후 신 회장이 직접 주재한 사장단 회의는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는 지난해부터 줄곧 상·하반기 사장단회의를 열어 전 계열사가 그룹의 중장기 성장전략을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어 왔다. 신 회장은 단상에 올라 사업환경의 디지털화에 맞서 철저한 전략을 세울 것을 강조했다.

신동빈 "뉴롯데 위해 혁신적 디지털 전환과 적극적 투자 필요"

신 회장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단어는 대상무형이었다. 노자(老子) 도덕경의 41장에 나오는 구절인 '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희성 대상무형'(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지고, 큰 음악은 소리가 없고,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의 일부였다. 급변하는 시대 속 형태와 경계를 알 수 없는 미래를 표현하기 위해 언급한 것으로 읽힌다. 신 회장은 "생존을 위해선 미래의 예측과 상황별 준비를 철처히 해야 한다"며 "롯데도 기존의 틀을 무너뜨릴 정도의 혁신을 일궈야 한다"고 했다. 각사의 대표이사들엔 "5년과 10년 뒤 사회적 가치를 띤 기업이 되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소비자와 시장, 경쟁사의 변화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명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만일 그렇지 못하면 심각한 기업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민정 피해자연합회 회원(AK내셔날 대표)이 피켓을 들고 롯데타워 건물 앞에 서 있다. 경찰청 공보관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 (사진=신민경 기자)
박민정 피해자연합회 회원(AK내셔날 대표)이 피켓을 들고 롯데타워 건물 앞에 서 있다. 경찰청 공보관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 (사진=신민경 기자)

같은 맥락에서 미래성장을 위한 투자도 강조했다. 신 회장은  "우리 기업 명예회장은 매출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지속적 투자를 감행했다"며 아버지인 신격호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그룹 내 소극적 투자의 경향을 포착했다. 잘하고 있는 사업에도 선제적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 투자시기를 놓쳐선 안 된다"며 적극적 투자 행보를 주문했다.

뉴롯데의 방향성으로 꾸준히 제시해 왔던 '디지털 전환'도 언급했다. 신 회장에 따르면, 해외 기업들에 비해 롯데는 정보통신기술 투자율도 낮고 투자 분야도 한정적이다. 따라서 롯데의 자산인 빅데이터와 오프라인 매장, 물류망을 확장해 소비자에게 친숙함을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디지털 전환에 기반한 사업 전반의 전환을 이룩할 것이다"면서 인재에 대한 투자 확대와 문화 혁신도 약속했다. 이어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과감히 도전하고 변화하라"고도 했다.

하지만 구설에 꾸준히 오르내리던 롯데 계열사의 '갑질'에 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엔 롯데롯데갑질피해자연합회(이하 피해자연합회)도 사장단 행사 시작 시간인 2시보다 앞선 오후 1시께 롯데월드타워 앞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현장엔 김영미 롯데갑질피해자연합회장과 윤형철 신화 대표, 김정균 전 성선청과 대표 등 회원 15여명이 참석했다. 한 피해자연합회 회원은 "그동안 공정거래위원장 면담, 정의당과 국회 기자회견 등을 통해 롯데 계열사들의 갑질로 인한 억울한 도산 사례를 꾸준히 호소해왔다"면서 "하지만 롯데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사회적 책임을 적극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연합회는 신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일본롯데홀딩스 사장)에게 롯데의 갑질 피해실태를 조사할 '한국롯데갑질피해특별조사팀'을 발족할 것을 촉구했다. 

거의 모든 롯데 계열사 대표들이 건물 안에 들어선 이후에도 피해자연합회는 시위를 지속했지만, 끝내 경찰에게 제지를 받았다.

추혜선, 反롯데 발언 지속..."갑질사회 타파 위해선 롯데 먼저 잡아야"

추 의원과 신 회장의 갈등이 가시화돼 정경 간 긴장이 더해질 전망이다. 정의당과 피해자연합회가 신 회장에게 협력업체 상생방안 논의를 당부했지만, 지난 23일 사장단 회의에서 회사차원의 갑질 해결책은 일절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 

추 의원은 지난해부터 중소상공인과 대기업 갑질 피해자 등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엔 당 내에서 롯데갑질피해신고센터를 개소했다. 당시 추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는 수년간 납품단가 후려치기, 물류비와 인건비 떠넘기기 등의 다양한 불공정 거래를 일삼아 왔다"면서 "롯데를 비롯한 재벌기업들의 갑질이 가장 큰 적폐다"고 말한 바 있다.

22일 열린 정의당-중소상공인연합회 신년회에서 추 의원이 발언 중이다. ⓒ신민경 기자
22일 열린 정의당-중소상공인연합회 신년회에서 추 의원이 발언 중이다. ⓒ신민경 기자

지난 22일 오전엔 피해자연합회와 손 잡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 회장에 조속한 피해구제와 상생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추 의원은 "연초에 신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과 사회적 가치 창출, 공동체와의 공생을 강조했다"면서 "이를 위해선 수많은 롯데 협력업체들이 함께 숨쉴 수 있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롯데의 갑질 때문에 회사가 망했다고 외치는 중소기업은 없어야 한다"고도 했다. 

추 의원은 또 "롯데 측도 지난해 국정감사 이후 문제해결 의지를 표현해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각 계열사마다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지난해엔 가나안당진RPC의 도산으로 피해를 입었던 일본 가네코농기 방문을 추진했다. 그러나 면담 예정일 하루 전에 돌연 면담불가 의사를 통보 받았다. 만일 가네코농기의 급작스런 태도 변화에 롯데 측이 영향을 미쳤다면 이는 결코 용납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사장단회의에서 신회장이 갑질 피해자 구제 방안을 논의하지 않을 시, 일본 롯데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 것이라고 예고키도 했다. 추 의원은 "만일 우리의 요구가 또 외면 받는다면 내달 20일 피해자연합회와 함께 일본 롯데본사에서 집회를 열고 쓰쿠다 롯데홀딩스 사장에도 이 문제해결을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엔 정의당 공정경제민생본부·중소상공인자영업자위원회 합동 신년회가 열렸다. 이날 추 의원은 "갑질대기업인 롯데를 먼저 잡아야 한다"면서 "그러면 이후 대기업 갑질 문제는 조금씩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피해자聯, 사장단회의서 갑질 언급 피한 신동빈 맞서 '일본롯데 시위' 예고

추 의원과 피해자연합회가 사전 예고대로 일본 시위를 추진하고 나서 이들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피해자연합회의 회원인 김정균 전 성선청과 대표는 "현재 매주 월요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면서 "내달 20일엔 직접 일본롯데홀딩스를 찾아가 시위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미 피해자연합회장(가나안RPC 대표)도 "롯데의 갑질로 인해 우리 피해업체들은 대략 490억원의 손실을 입었고 실직된 종업원도 500명을 넘는다"며 "쓰쿠다 일본롯데 사장에게 한국에서 수많은 갑질피해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림과 동시에 피해보상을 촉구하고자 일본 방문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롯데가 무대응을 고수하니 또 다른 뿌리인 일본롯데를 찾아가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추 의원실 측 또한 연합회와 입장을 같이 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예고한 날짜 이전까지 롯데 측에서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을 경우 예정대로 일본롯데홀딩스 앞 시위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에 대해 롯데지주 측은 "피해 문제와 관련해선 각 해당 계열사 별로 대책이 마련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롯데지주 측에서 내놓을 공식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