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신격호 전 롯데 총괄회장에게 큰 감명을 줬다. 기업의 이름을 소설 속 여주인공인 샤롯데에서 가져다 쓸 만큼. 신격호는 공식적으로 드러난 세 명의 부인 가운데 가장 마지막 순서인 서미경에 대한 애정이 컸다. 베르테르는 샤롯데를 위해 목숨을 포기했다. 신격호는 목숨은 커녕 자기 돈을 들이기도 아까웠는지,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줘야 할 '회삿돈'을 빼 서미경과 그의 딸 신유미에 바쳤다. 서씨 모녀는 롯데 측으로부터 7년간 공짜급여 117억원을 받아 냈고, 신격호는 이들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권도 헐값에 넘겨 재무손실 774억원을 냈다. 배임과 횡령으로 풀어쓴 신격호와 서씨 모녀 관계의 끝은 구속이 아닌 집행유예였다. 서미경과 신유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서미경은 신격호보다 37살 어리다. 제1회 미스롯데 선발대회에서 미스롯데로 선발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13살. 이때부터 롯데와의 접점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81년, 서미경은 3월 9일자 동아일보 12면의 한 꼭지를 끝으로 모습을 감췄다. 당시 신문에 적힌 그의 행적은 이랬다.

서미경, '미스롯데'서 '롯데회장 셋째 부인'으로

'탤런트 서승희(본명 서미경)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는 소식. 4월초, 1년 동안 어학공부를 한 뒤 대학에 입학할 계획이라고. (...) 상승주인 서양이 실질적 은퇴를 선언, 강력한 스폰서가 이번 유학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 화제의 초점.'

(자료=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스폰서설은 진짜로 판명났다. 서미경은 일본으로 넘어간지 2년만인 1983년에 딸인 신유미(전 롯데호텔 고문)를 낳았다. 신유미는 5살이 돼서야 신격호의 호적에 오를 수 있었다. 이름도 서유미에서 신유미로 바뀌었다.

이로써 신격호의 배 다른 자식 넷은 하나의 가족으로 묶이게 됐다. 장녀인 신영자(롯데재단 이사장)는 신격호가 본처 노순화와의 사이에서 낳은 유일한 혈육이다. 신동주(광윤사 대표이사)와 신동빈(롯데그룹 회장)의 어머니는 둘째 부인인 시게미쓰 하쓰코다. 셋째 부인인 서미경이 낳은 딸 신유미는 '법적 언니'인 신영자와 41살의 나이차가 난다. 신영자는 계모 뻘인 서미경보다 24살 많았다.

서씨 모녀 재산 형성의 9할은 증여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롯데를 전방위로 활용해 차근차근 부를 축적했다.

먼저 배임 혐의다. 신격호는 서씨 모녀 소유의 유원실업에 롯데시네마 30여 매점의 독점 운영권을 헐값에 팔았다. 비상장회사 유원실업은 이를 계기로 (아무도 모르게) 탄탄한 모양새를 갖춰나갔다. 유원실업에 대한 서미경과 신유미의 지분은 각각 57.82%, 42.18%로 둘이 합쳐 100%였다. 반면 롯데 측은 이들에게 운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낮은 임대수수료를 매기는 바람에 774억원의 손실을 봤다.

횡령 혐의도 있다. 서씨 모녀는 공짜 급여를 지급 받았다. 신동빈은 신격호의 뜻에 따라, 한국 롯데그룹과 계열사에 근무한 바가 전혀 없는 신동주와 서씨 모녀에게 급여 508억원을 '회사 자금으로' 지급했다. 이 가운데 신동주는 391억원을 받았고 서씨 모녀의 몫은 117억원이었다. 이때 신동빈은 롯데건설 세무조사 이후에서야 이들의 급여 지급 사실을 알았다고 호소했다.

또 신격호는 2010년 이전까지 페이퍼 컴퍼니인 경유물산을 통해 서씨 모녀에게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을 증여해 왔다. 경유물산은 서미경의 '경'과 신유미의 '유'를 따 급조했다. 게다가 이렇게 서씨 모녀와 맏딸 신영자가 증여 받은 홀딩스 지분의 세금 포탈 규모는 6000억원에 이른다.

이같은 경영비리 혐의와 관련해 롯데 총수 일가는 지난 2016년 10월 기소됐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22일 열린 1심 재판에서 신격호는 징역 4년에 벌금 35억원이 선고됐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이 되지 않았다. 또 횡령과 배임 혐의를 받았던 신동빈은 일부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검찰이 신격호와 신동빈에 당초 각각 10년씩 구형한 것에 비하면 형량이 말도 안 되게 줄었다. 서미경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증여세 포탈 혐의의 경우, 재판부는 서씨가 대부분 일본에 머물렀다는 점으로 빗대어 볼 때 생활근거지를 국내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은 국외 주식이므로, 이를 증여 받은 국외거주자에게는 납세의무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신동빈은 경영비리 혐의 관련 1심 선고에서는 집행유예를 받아 실질적 구속을 면했다. 하지만 지난 2월 13일 뇌물공여 관련 1심 선고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받아 법정 구속됐었다. 검찰은 롯데 총수 일가와 경영진 9명 전원에 대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그리고 집행유예를 받은 신동빈과 서미경을 비롯해 신격호도 경영비리 선고에 불복해 항소했다. 특히 신동빈은 2심에서는 경영비리와 뇌물공여 혐의를 병합해 진행해달라고 요구했고 재판부가 이를 들어줬다.

당시 경영비리 관련해, 1심이 신동빈의 유죄를 인정했던 혐의는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 관련 업무상 배임'과 '서씨 모녀 공짜 급여 지급'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5일 열린 2심(항소심) 공판에서는 두 가지 혐의 가운데 한 가지만 유죄 판정을 받았다. 롯데시네마 매점에 영업익을 몰아준 배임 행위는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였다. 반면 공짜 급여에 관해서 재판부는 '신격호의 지시를 용인했을지언정 공모는 아니다'며 무죄로 판단을 바꿨다. 마침내 신동빈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고, 경영 현장 복귀가 가능해졌다. 신격호 역시 1심보다 1년 감형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고 역시나 건강을 이유로 구속도 안 됐다. 재판부는 한술 더 떠 신격호만 먼저 선고한 뒤 퇴정할 수 있게 배려까지 해줬다. 끝내 롯데 일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적힌 면벌부를 손아귀에 넣었다.

서미경과 신유미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서미경과 신유미에게는 회사 경영 경험이 전무했다. 검색업체 네이버에 적시된 경력사항에 따르면 서미경은 지난 2000년 6월 유기개발 이사가 됐고, 이후 유원실업의 감사로 근무했다. 딸 신유미는 더하다. 그는 29살의 나이에 롯데호텔 고문이 됐다. 능력이 탁월하면 젊은 나이에도 굵직한 대기업의 고문이 될 수 있겠지만, 그에겐 고문 이외에 다른 입증된 경영 경험이 전무하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도 구매실장을 거쳤고, 구광모 LG 회장도 재경부문 대리로 경영에 발을 담갔는데 말이다. 결국 서미경과 신유미는 특수 관계인으로서 계열사의 임원으로 '무늬만' 등재돼, 뚜렷한 명분 없이 매월 수천만원의 급여를 받았다는 게 된다.

서미경과 신유미의 프로필
서미경과 신유미의 프로필

신유미는 2010년 2월부터 호텔롯데 고문직에 앉아 7년 동안 월급을 받다가 지난해 3월 퇴사했다. 2012년에는 롯데푸드 주주로 이름을 올렸고 이후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며 롯데지주 주식도 일부 소유하게 됐다. 현재 신유미는 롯데푸드와 롯데지주에 대해 각각 지분 0.3%, 0.1%를 갖고 있다.

서미경과 신유미는 일본 롯데홀딩스에 관해서도 지분 6.87%를 갖고 있었다. 서씨 모녀가 100% 소유한 경유물산이 3.2%, 서미경과 신유미가 갖고 있는 지분의 합이 3.67%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당초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였다. 하지만 올해 2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신동빈이 보유한 일본 롯데홀딩스지분이 기존 1.38%에서 4%로 늘었다. 서씨 모녀와 신동빈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올해 1월까지 이른바 서미경 식당으로 불리던 매장 4곳이 롯데백화점에서 완전히 철수됐다. 서미경 식당은 서미경이 실소유주로 있는 유기개발이 롯데백화점에 입점해 운영해온 식당이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은 '재벌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됐던 유원정, 마가레트 등 매장 총 4곳을 처분키로 유기개발 측과 합의한 바 있다.

또 지난 8월 22일에는 유기개발과 유원실업, 유기인터내셔널이 롯데 계열사가 아니라는 판결이 났다. 서씨 모녀 소유의 해당기업 3곳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속회사 편입 의제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지난 2013년 이후 신격호가 서씨 모녀의 회사에 관계한 흔적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2016년에 유니플렉스, 유기개발, 유원실업, 유기인터네셔널이 롯데그룹의 상호출자 고리에 있다고 보고, 롯데그룹 계열사로 편입했다.

서미경 식당 폐점, 롯데 계열사 편입 처분 취소 승소 등 이같은 서씨 모녀의 행보는 공격의 여지를 없애기 위한 조처로 읽힌다. 지난해와 올해는 재벌에 적대적인 문재인 정부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과 전성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경영비리 전적이 화려한 롯데그룹은 당국이 겨누는 총구를 비껴가기 위해 서씨 모녀의 흔적을 없애려 했던 것이다.

등기부등본
등기부등본

한편 서씨 모녀는 수천억원대의 롯데 계열사 주식과 부동산을 갖고 있다. 지난 5월 서미경은 반포동의 지상 5층 규모 미성빌딩을 105억원에 팔았다. 그가 서울시내 보유한 건물을 매각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외에도 서씨 모녀는 삼성동 유기타워, 종로구 동숭동 공연장 유니플렉스 등, 방배동 유기인터내셔널 등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동 유기타워와 동숭동 유니플렉스의 경우 소유자가 각각 유한회사 유기개발과 유원실업이다. 유원실업과 유기개발은 서미경과 신유미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 부동산투자회사다.

신격호의 총애 덕에 롯데를 자금줄로 삼아온 서씨 모녀. 이들은 주주들에게 환원돼야 할 회삿돈을 중간에서 꿀꺽했지만 일본 국적이란 이유로 '무죄' 처리됐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