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영화 '아이캔스피크' '말모이' '항거'…배급사는 '국적 논란' 롯데
항일 영화 '아이캔스피크' '말모이' '항거'…배급사는 '국적 논란' 롯데
  • 신민경 기자
  • 승인 2019.02.1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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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시선…"잘못된 애국 마케팅" vs "일본 폐해 반성 의미"

[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롯데컬처웍스(옛 롯데시네마·롯데엔터테인먼트)가 잇달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배급을 맡으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롯데컬처웍스는 국내 멀티플렉스 운영과 국내외 영화를 투자·배급하는 회사다. 롯데그룹의 유통부문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롯데컬처웍스는 지난 2017년 개봉한 영화 '아이캔스피크'를 비롯해 올해 1월 상영관에 걸린 영화 '말모이', 오는 27일 개봉할 '항거:유관순 이야기' 등을 배급했다. 이에 따라 일본과 한국 양국에 뿌리를 둔 롯데가 우리나라의 항일 역사를 영화로 다루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롯데가 지난날 일본의 폐해를 반성하는 의미로 배급을 결정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반면 롯데가 결의를 갖고 상업영화의 배급을 결정할 정도로 윤리의식이 함양돼 있지는 않다는 주장도 팽팽하다.

지금 롯데그룹은 내홍을 겪고 있다. 일본 롯데를 책임졌던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상대로 경영권 소송을 제기해 왔다. 신 전 부회장은 한국 롯데를 책임지며 그룹 후계자로 자리매김한 신 회장에 맞서 SDJ코퍼레이션을 세우고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 2015년 8월과 2016년 3월, 6월 주총에서 열린 표 대결에서 신 회장에 패했다.

지난 2017년 6월 열린 4차 주주총회에서는 신 총괄회장도 등기임원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에 신 전 부회장은 연속적 참패의 굴욕을 딛고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에라도 복귀하고자 신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거듭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달 21일 신 회장 앞으로 '설맞이 초대장'을 보냈다. 화해를 요청하는 5번째 편지이기도 하다. 편지 내용은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을 멈추고 롯데그룹을 일본으로부터 독립시켜 분리경영을 하자는 게 주요 골자다. 한·일 양국 롯데의 대권을 잡으려던 신 회장은 연이은 편지에 대한 불쾌함을 드러내왔다.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은 지속되고 있다. 이는 지난 2017년 1월 신 총괄회장이 한 매체 인터뷰에서 "롯데는 한국과 일본이 반반 섞인 기업이다"고 답한 입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지난 2017년 12월 재벌닷컴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기업(외국법인이나 외국인이 투자한 기업으로 주식 10%이상 취득해야 등록 가능, 이하 외투기업)은 국내 10대 그룹 계열사 10곳 가운데 1곳에 달했다. 외투기업은 조세특례제한법상 법인세와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각종 조세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국가가 국유재산을 수의계약으로 임대나 매각할 수 있는 수혜도 받는다. 삼성그룹의 호텔신라, 제일기획, 에스원, 현대차그룹의 현대글로비스, 현대카드 등이 외투기업이다.

하지만 롯데에는 계열사 3곳 중 1곳 꼴로 외투기업이 분포하고 있다. 전체 92개 계열사 가운데 무려 28개(30.8%)가 외투기업이다. 이는 일본에서 사업을 벌이던 신격호 명예회장이 국내로 진출했기 때문으로 읽힌다.

신 명예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시절 외투기업으로서 국제관광공사 소유의 반도호텔을 헐값에 낙찰 받았고, 그곳에 롯데호텔을 지었다. 신 명예회장은 재일교포 자격으로 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동산 취득세와 소득세 등 뿐만 아니라 부동산투기 억제세, 영업세 등도 면제 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한양 소유의 잠실 금싸라기 땅을 롯데가 매입할 수 있게 해줬다. 그 자리에 개장한 것이 롯데월드인데, 이 사업 역시도 외투기업으로 진행됐다. 추후 정권을 잡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신 명예회장의 소원인 제2롯데월드(롯데월드타워) 신축 허가를 적극 추진토록 했다. 서울공항의 안전을 염려한 공군 수뇌부들을 해임키도 했다. 롯데월드타워를 주 업종으로 하는 롯데물산 역시 지난 1987년 외투기업으로 등록된 바 있다.

롯데는 한국과 일본 양쪽에 근거지를 둔 다국적기업이다. 꾸준한 국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우리나라에서 애국심을 드러내는 판촉활동을 벌여왔다.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 롯데는 롯데월드타워 70층에 큰 태극기를 걸었다. 이듬해엔 3·1절을 맞아 롯데월드타워 42~58층에 '대한민국 만세'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차갑다.

영화 '아이캔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영어를 배워 세계를 무대로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내용을 담았다. '말모이'는 조선 전역에 우리말이 뿔뿔이 흩어진 일제강점기 때 이를 한 데 모으려고 노력했던 조선어학회 인물들의 이야기다. '항거'는 지난 1919년 3·1 만세운동 후 서대문 감옥 8호실에 수감된 유관순과 여성들의 아픔을 그렸다. 일본에 반쪽 뿌리를 둔 기업이 일본의 과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들의 배급을 맡은 건 잘못된 애국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지난날 우리나라에 민족적 아픔을 남긴 일본의 제국주의적 행동이 현재까지도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내용을 다룬 블로그, 유튜브 영화 채널 등의 게시글엔 "롯데는 일본기업이지만 돈 되면 다 하는구나, 봐야 해, 말아야 해", "영화는 좋은데 롯데는 싫다", "재일교포 일가가 애국영화를 만들다니", "감명 깊게 영화 보고 엔딩 크레딧 보는데 배급사가 롯데라서 기분이 묘했다", "태생지가 일본인 기업이 국내 위안부와 조선어학회, 항거운동 문제를 다룬다는 게 말이 되냐" 등의 댓글이 달렸다. 반면 "롯데는 친일기업이 아니고 사업의 시작점이 일본일 뿐이다", "이윤창출이 목적이겠지만 이런 귀한 영화에 꾸준히 투자하는 롯데를 욕할 이유는 없다", "삼성, 현대도 다국적기업인데 왜 롯데만 갖고 그러냐" 등 롯데가 일제강점기 시대 영화의 유통을 맡은 것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의 댓글도 적지 않았다.

이연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한국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는 "우리나라 국민은 롯데그룹에 애증이 있는 듯하다"면서 "개개인의 감정을 어찌할 수는 없지만 롯데를 다국적기업이자 글로벌기업으로 보는 시각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삼성과 현대그룹 또한 주식의 상당수 지분이 외국인에게 있는 글로벌기업이다. 신 총괄회장 시절부터 롯데의 뿌리가 일본에서 연유됐다고 해서 매번 일본에 총구를 겨눌 순 없다"고 했다. 이어 "글로벌기업이 된 롯데가 우리나라 국민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영화들의 스폰서 역할을 한 것은 유의한 일이다. 또 이런 활동이 일본에선 비난 받을 수 있는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배급을 맡은 것이다. 지난날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도 가능하다. 자국민은 앞으로 롯데가 한·일 사이에서 완충재와 가교 역할로써 국제관계에 기여하고, 자국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에 주목해야 한다"며 반일감정으로 인한 반롯데감정을 거둘 것을 조언했다.

하지만 염동호 한국매니페스토정책연구소 이사장은 롯데가 지난 일본의 폐해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관련 영화 배급을 맡았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봤다. 염 이사장은 "신동빈 회장은 매년 조부 제사에 불참하고 있다. 형 신 전 부회장와도 갈등을 겪는 등 부모와 가정 등에 대한 롯데일가 경영자들의 윤리의식이 한국 여타 기업인들의 유교적 정서와는 차이를 띤다. 주요 임원진들의 사고와 조직문화 등은 일본의존적인 면이 강하다. 책임의식을 갖고 배급을 결정할 만큼 경영윤리가 투철하다고 보지 않는다. 애국기업에 대한 자격지심을 모면코자, 혹은 단순히 영화의 작품성을 좋게 봐 투자와 배급을 결정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3편의 일제강점기 영화 배급으로는 롯데 측의 의도를 귀납적으로 추론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봉순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롯데가 이같이 일제시대 민족적 아픔을 다룬 영화들의 배급을 전혀 하지 않을 경우에도 민족의 아픔을 외면했다고 비판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근 신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후 롯데는 뉴롯데를 구상하기 위해 변모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잇단 역사 영화 선정이 반성에서 비롯된 결정인지 물타기 전략의 일환인지 성급히 결정하는 건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 교수는 이어 "그룹 의사결정과는 별개로 배급사가 수익성에 기반해 내린 결정일 수도 있다"며 "앞선 현상에 대해 국민이 첨예하게 대립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롯데컬처웍스 관계자는 "반성 등 특정한 의도를 염두에 두고 영화 배급을 결정하지는 않았다"며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유의한 해라서 관련 작품들이 우리 측 뿐만 아니라 다른 배급사에서도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는 기업의 역사나 특성보단 관객의 관람 성향과 유행 등에 의존하는 산업이다. 관객들은 꾸준히 역사 영화를 선호해 왔기 때문에 이같은 선호도 분석을 통해 배급과 투자를 결정했다. 현재까지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른 댓글들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지는 않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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