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지난해 3월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일명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국회 문지방을 넘어 같은해 10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꾸준히 소비자를 응대해야 하는 직종에 놓인 감정노동자들의 정신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업 임직원들의 애로사항으로 감정노동뿐만 아니라 신체노동 또한 주요하게 꼽힌다. 이에 최근 유통업계에선 직원들의 감정노동과 신체노동을 함께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 듯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내 복지로 '시각장애인 안마사 제도'를 운영하는 롯데백화점과 아모레퍼시픽, 한국야쿠르트, 코웨이 등이다. 이들 기업은 육체적인 피로를 풀어주는 양질의 복지를 제공함과 동시에 장애인고용을 추진함으로써 사회적 가치 구현에도 힘쓰는 모양새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마사지샵인 엘 케어(L Care)룸를 열었다. 이곳에 안마사가 고용돼 피로를 겪는 파트너사 직원들에게 전문적인 수기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잠실점은 장애인고용단과 연계해 시각장애인 마사지사를 고용했다. 일 평균 직원 5~10명이 이 안마제도를 이용할 수 있으며 한 번에 30분 동안 받을 수 있다. 예약은 한 달 단위로 가능하다. 이에 따라 안마사들의 주휴일(2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월 약 200명이 안마서비스를 받게 됐다.
엘 케어룸엔 무료 커피와 다과도 준비됐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관계자는 "신체적 업무 부담이 많은 판매사원이나 근골격계 질병이 있는 직원들을 우선적으로 신청하도록 할 예정"이라며 "직원 신체 관리를 통해 궁극에는 소비자들에 더 좋은 서비스가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이 시각장애인을 마사지사로 고용한 최초의 기업은 아니다. 유통업계엔 선례가 많다. 코웨이와 한국야쿠르트, 아모레퍼시픽 등은 각각 지난 2010년, 2011년, 2014년에 해당 제도를 도입해 사내 복지서비스로 제공 중이다.
먼저 코웨이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채용을 통해 '헬스케어방'을 9년째 운영 중이다. 본사와 연구소, 공장 등에 위치한 각 헬스케어방에 안마사가 2명씩 배치돼 직원들의 어깨와 목, 뭉친 근육을 풀어준다. 직원당 일주일에 1회씩 신청 가능하며 한 번에 30분씩 안마를 받을 수 있다. 이같은 헬스케어방은 감정노동과 신체노동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인트라넷을 통해 사전예약을 하지 않으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후문이다. 권희용 코웨이 재무팀 대리는 "헬스케어를 받는 동안 몸과 마음의 피로가 싹 풀리고 업무 집중도도 향상된다"면서 "특히 컴퓨터 앞에서는 잘 생각나지 않던 아이디어가 편하게 힐링 하는 동안에는 많이 떠올라서 좋은 성과를 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야쿠르트도 이와 유사하게 '헬스키퍼' 제도를 운영 중이다. 본사뿐만 아니라 평택공장과 천안공장에도 안마사를 도입했다. 현재 시각장애인 안마사 7명이 회사에 소속돼 있고 서울 서초구 소재의 본사엔 2명이 상주 중이다. 회사는 지난 2011년 6월 헬스키퍼 제도를 처음 도입해 일 평균 직원 15명의 피로해소를 도왔다. 이들 본사 소속 안마사는 주기적으로 영업현장도 찾아 프레시 매니저(야쿠르트 아줌마)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활동한다. 한국야쿠르트의 한 관계자는 "직원 근무만족도와 업무 몰입도 향상, 장애인 고용 증대를 위해 8년째 헬스키퍼제를 운영 중이다"고 답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서울시 용산구에 신사옥 건물을 갖고 있다. 지난 2014년 8월부터 건축공사에 착수해 지난 2017년 10월 완공, 이듬해 정식 개관했다. 이때 5층엔 루프가든과 직원전용복지공간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마사지센터인 '라온'이 있다. 라온은 지난해 6월에 문을 열었다. 이곳엔 국가공인안마사 자격증을 소지한 시각장애인 안마사 8명이 상주해 있다. 1회당 40분씩 최대로 월 4회 안마를 받을 수 있다. 관계자는 "업무시간에 자유롭게 근육을 풀 수 있단 점에서 마사지서비스가 직원 다수에게 인기가 많다"며 "하루 최대 수용직원이 48명인 때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유통업계가 시각장애인 고용을 통해 사내 복지를 다각화하는 경향에 대해 김영춘 남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용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장애인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면서 기업 내 직원들을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고용과 복지를 모두 잡았다고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같은 경향이 일부 대기업의 한시적인 문화로만 자리잡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시각장애인을 안마사로서 고용하는 유통계 몇곳의 선례가 좋은 모델로 대두돼 여타 대·중견·중소기업으로도 번져야 한다"면서 "이런 고용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활성화되도록 많은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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