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율주행 트럭 개발과 전망

볼보 화물운송 차량 [출처: PEXELS]

미국 화물운송 산업은 연간 800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내는, 미국 경제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산업군이다. 

전자상거래의 폭발적 증가로 관련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가운데, 미국 트럭운송협회는 2026년까지 약 18만명의 트럭 운전자가 부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존 운전자들이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젊은 층에게는 기피직종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물론 안전 운행에 대한 이슈도 있다. 하루 10시간 이상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운전자의 육체적 피로도가 굉장히 높아 주의분산 및 집중력 저하로 대형 사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실제로 2016년 이후 미국 전체 트럭사고의 1/3은 운전자 실수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율주행 트럭이 성공적으로 개발된다면 운전자 부족 문제 해결은 물론 도로 위의 안전이나 교통 흐름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운전자가 피로감을 느꼈던 장거리 고속도로 주행은 자율주행 시스템에 맡기고 거점 지역에서의 퍼스트와 라스트 마일 주행만 사람이 맡는다면 운전자 실수로 인한 사고 발생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

또 코디악로보틱스(Kodiak Robotics)의 CEO 돈 버넷(Don Burnette)은 자율주행 트럭이 제한 속도를 준수하는 데 따른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럭이 시속 70마일로 달릴 때 보다 시속 55마일로 달릴 때 연료 효율이 약 20% 높아지고 타이어 및 도로 마모 역시 줄어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스타스키로보틱스(Starsky Robotics)가 투자유치 실패로 폐업한 것은 충격적인 소식이었지만 자율주행 트럭이 화물운송 산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크다.

 

 

투씸플의 센서 집합체의 인지 범위(위)와 테슬라의 카메라 및 레이더 인지 범위(아래).
[출처:각 사 홈페이지]

자율주행 트럭과 로보택시

일부 전문가는 트럭이 고속도로라는 비교적 단순한 환경을 달린다는 점에서 로보택시와 같은 승용 자율주행 기술에 비해 자율주행 트럭이 더 빨리 상용화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화물운송 산업만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도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선 트럭은 승용차 보다 제동 거리와 시간이 길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더 멀리 있는 장애물까지 감지해야 한다.

현재 테슬라 모델3에 장착된 전방 카메라는 최대 250m까지 대상을 인지할 수 있다. 자율주행 트럭 개발사 투씸플(TuSimple)은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제출한 안전평가서를 통해 클래스8 트럭이 시속 65마일로 주행시 전방 500m까지 장애물을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고속 주행할 경우에는 1km까지도 장애물 인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럭은 차체의 크기도 승용차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더 많은 센서들을 장착해야 할 수도 있다.

또 다른 고려 사항은 운행가능 영역(ODD)의 차이다. 운행가능 영역이란 자율주행 모드가 작동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 조건을 뜻하는 말이다. 트럭 자율주행 기술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주장의 근거는 주행 장소가 고속도로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는 일반 시내보다 차선이 명확하게 그려져 있고 대부분 직진 노선으로 차량 제어가 단순하며, 무단횡단자 같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자율주행에 유리하다는 것.

[출처: PEXELS]

하지만 이론적으로 자율주행 트럭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장거리를 쉬지 않고 운행해야 한다. 고속도로의 주행 환경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오랜 시간 운행하려면 자율주행 시스템은 다양한 환경(낮과 밤, 기온, 날씨, 지형 및 고도 변화 등)에 모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운행가능 영역이 빛이나 날씨 조건에 민감하게 되면 장거리 주행에 적합하다고 보기 어렵다. 즉, 자율주행 트럭은 운행가능 영역이 제한적이라는 가정이 반드시 맞다고 볼 수 없으며 운행 환경 또한 로보택시의 그것 보다 단순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자율주행 트럭의 장거리 운행에 대한 실효성 논의도 있다. 과연 트럭을 24시간 내내 달리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까?

여기에 대한 의견 역시 전문가들마다 차이가 있다. 스타스키 로보틱스의 오퍼레이션 팀장을 역임한 폴 슈레겔(Paul Schlegel)은 장거리 주행에 따른 유지 및 보수 비용도 생각해야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매일 트럭을 점검해야 하는데 이는 단거리나 지역화물 운반 플랫폼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스타스키로보틱스는 이같은 사업 모델을 연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초장거리 운송은 철도와의 경쟁으로 수익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철도운송 산업과 무리하게 가격 경쟁을 하다 보면 운송비용이 높아지는데 자율주행 배송에 프리미엄을 붙여줄 고객은 없다는 것이다.

화물운송 산업은 이처럼 다양한 변수가 적용되는 역동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자율주행 트럭 개발사가 기존 화물운송사와 협력해 생태계를 이해하고 현장에서 예상되는 문제를 찾아 개발에 참고해 나가는 전략이 중요하다.

 

현대자동차 엑시언트 자율주행 트럭[출처:현대자동차 홈페이지]
현대자동차 엑시언트 자율주행 트럭 
[출처:현대자동차 홈페이지]

화물운송 산업에 미치는 ‘징벌적 배상판결’의 영향

미국 내 자율주행 트럭의 상용화 전에 이해해야 할 또 다른 이슈는 ‘징벌적 배상판결’이다.

징벌적 배상판결이란 원고의 승소로 피고에게 1,000만 달러 이상의 배상 판결이 내려지는 것을 말한다. 미국 화물운송 업계에서는 최근 화물차 사고로 이 같은 징벌적 배상판결 사례가 늘어나 파산에 이르는 등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주로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 해당되는데 오랜 역사를 지닌 운송 회사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보험사들도 보험료를 기하 급수적으로 늘리거나 아예 화물운송 업계의 가입을 거부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5년 1월 9일, RCX 솔루션의 트럭이 고장으로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픽업 트럭과 충돌했다. 트럭 운전자는 사망했고 픽업 트럭 운전자는 온 몸에 화상을 입었다. 이 때문에 20년 넘게 사업을 해 온 이 회사는 원심에서 2,300만 달러(한화 약 300억원)를 배상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항소 끝에 배상액을 750만 달러로 낮췄다. 하지만 이로 인해 보험료가 3배로 급증, 결국 폐업을 했다.

2019년 10월에는 업계 2위 RV/자동차 운송사인 CWRV가 폐업, 540명의 운전자가 직장을 잃었다. 트럭 운전자가 졸음 운전으로 사고를 내 부부를 숨지게 한 것. 재판에서 배심원들은 피해자의 자녀들에게 2,66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운전자가 독립 계약자였음에도 불구, 회사가 대리인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출처: PEXELS]

이 때문에 화물운송 업계의 보험료는 몇 년에 한 번씩 두배로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화물차 사고 중 실제 재판에 회부되는 것은 약 5%이지만 높은 피해보상액이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화물운송사 파산은 전년 대비 4배나 늘었다. 징벌적 배상판결 사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폐업하는 회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사법제도에서는 배상액 상한치가 없다. 원고 측 변호사는 배심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기 때문에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영구 불구가 됐다면 어마어마한 금액의 배상금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미국의 로펌 프랭클린 앤 프로코픽은 “상징적인 메시지를 보내거나 피고를 처벌하려고 하는 배심원들의 열망이 있다”며 대규모 민사 소송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이 나올 경우 대형 배상 판결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만약 원고 측 변호사가 피고에게 피로, 차량 오작동, 마약 및 음주 운전, 차량 유지 및 정비 불량 그리고 경험 또는 교육 부족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사고에 연관돼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징벌적 배상판결의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구글 웨이모 자율주행챠량(웨이모 원)과 자율주행트럭(웨이모 바이아) /사진=웨이모 블로그
구글 웨이모 자율주행챠량(웨이모 원)과 자율주행트럭(웨이모 바이아)
[출처:웨이모 블로그]

율주행 트럭도 대규모 배상 가능성

지난해 1월 미국운송연구소는 '자율주행 트럭 산업에서 정부 역할의 재정립'이란 보고서를 통해 “범죄조사 또는 법적 절차에 사용되는 차량 정보는 소유주가 아니더라도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유타주의 법 제정이 자율주행 트럭의 도입 지연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로보택시 등 자율주행 자동차에 대한 제조물책임법(PL)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징벌적 배상판결에 대한 두려움까지 더해진다면 신기술의 도입은 더욱 늦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징벌적 배상판결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미국 화물운송 업계는 소송 개혁(tort reform)까지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로서 가장 효과적인 징벌적 배상판결 회피 방법은 회피 전략 밖에는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법정까지 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스타스키로보틱스의 전 CEO인 슈페판 악츠마허(Stefan Seltz-Axmacher)는 지난 3월 폐업 소감에 대한 기고를 통해 직접적인 폐업원인은 투자유치 실패지만 트럭이란 차량의 특성과 화물운송 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도 큰 원인이었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자율주행 트럭 개발 사인 아이크(Ike)의 수석엔지니어 낸시 썬(Nancy Sun)은 "안전에서 소프트웨어의 완성도는 많은 퍼즐 중 하나일 뿐"이라며 역시 화물 업계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새로운 기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개발에만 집중한 나머지 전체 생태계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거나 예측에 실패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사례는 많다.

우버나 리프트 등의 차량호출 서비스가 자가용 이용률을 줄여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해줄 것을 기대했으나 일부 대도시에서는 도로 위 차량 총량이 늘어나 오히려 교통 체증과 대기 오염이 심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한 신기술이 빠른 속도로 우리 일상에 파고들고 있다. 혁신적인 기술이 안전하게 도입되고 지속 가능한 혜택을 줄 수 있도록 기업과 규제 당국은 함께 신중한 고민을 해야 한다.

기술 자체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용될 전체 생태계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이야 말로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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