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지난 2018년 4월 미국 택배 회사 다이나멕스(Dynamex)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트럭 운전자들로부터 집단 소송을 당했다. 운전자들은 다이나멕스가 자신들을 독립 계약자가 아닌 정규 직원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이들을 정규 직원으로 인정하고 캘리포니아주 임금 명령(California’s Wage Orders)의 보호를 받게 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독립 계약자와 정규 직원을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부재했던 속에서 이 판결은 역사적인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ABC 테스트를 언급하며 독립 계약자와 정규 직원의 분류 기준을 제시했다.

ABC 테스트란 노동자가 다음 3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지 않는다면 독립 계약자가 아닌 정규 직원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A. 노동자가 회사에 의해 지휘 및 통제되고 있지 않다.
B. 노동자가 회사의 중점 사업에 해당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다.
C. 노동자가 해당 업계에서 독립적인 사업 운영을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ABC 테스트 및 판결 결과를 법제화하기 위해 AB5(Assembly Bill No.5)라는 주법을 만들기로 했다. 다이나멕스 소송에 대한 판결이 나오자마자 2018년 12월 바로 관련 법안이 발의됐고 2019년 한 해 동안 모든 법제화 절차가 빠르게 통과됐다. 이어 캘리포니아 주지사 가빈 뉴섬(Gavin Newsom)이 최종 승인해 2020년 1월부터 적용되는 주법으로 만들어졌다.

AB5는 우버(Uber)와 리프트(Lyft) 같은 운송 네트워크 회사(Transportation Network Company)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됐다. 지금까지 우버와 리프트는 운전자들을 독립 계약자로 분류해 왔다. 따라서 퇴직금, 보험 등 정규 직원이 받게 되는 각종 지원에 대한 의무가 없었다.

하지만 이 두 회사의 현재 주요 사업이 승차 공유인 것을 감안하고 ABC 테스트를 적용한다면 캘리포니아 주법 AB5에 의거해 운전자들을 정규 직원으로 분류해야 할 수도 있다. 우버와 리프트는 이런 목소리에 대해 자신들의 주력 사업은 운송 플랫폼 개발이며 승객의 물리적 운송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또 법안이 발의된 직후부터는 다양한 로비 활동을 통해 법안이 통과돼 효력을 갖게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운전자들을 독립 계약자로 유지하는 대신 최저 임금을 올리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캘리포니아 입법부는 이를 거절했다.

우버와 리프트가 AB5를 따르지 않자 결국 캘리포니아 주 검찰은 지난 5월 이들을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8월 10일 캘리포니아 주 대법관 담당 판사인 에단 슐만(Ethan Schulman)은 원고인 캘리포니아 주의 손을 들어줬다. 총 34쪽에 걸친 판결문을 통해 우버와 리프트가 운전자를 정규 직원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판결문은 약 10일간의 유예 기간을 가졌기에 우버와 리프트는 8월 20일까지 판결문 내용대로 운전자들을 정규 직원으로 전환하거나 혹은 항소 의사를 밝혀야 했다. 

AB5를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시선

그런데 내막을 들여다보면 AB5가 모든 독립 계약자들에게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2019년 캘리포니아 화물 운송 연합(California Trucking Association) 회원들이 다이나멕스 판결과 AB5 법안은 위헌이라며 남부 캘리포니아 법원을 상대로 고소를 했다. 특히 자신들이 차량을 직접 소유함으로써 자유로운 근무 스케쥴과 생활 패턴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정규 직원이 되면서 그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주장을 했다.

또 미국 저널리스트 및 작가 협회(American Society of Journalists and Authors)와 국립 언론 사진기자 협회(National Press Photographers Association)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누렸던 자유로운 선택권(근무 시간, 업무량 등)이 제한을 받게 됐다는 이유로 역시 법원을 상대로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우버와 리프트 역시 이미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그들의 주장은 AB5가 헌법에 명시된 '직업에 무관한 동등한 보호 의무'를 어겼다는 것이다. AB5 Sec3. 2750.3(b)항에는 법을 적용 받지 않는 직업군이 명시됐는데 여기에는 의사, 치과의사, 변호사, 보험 설계사 등 전문 직군이 포함돼 있다.

이 소송은 실제로 우버와 리프트에 근무하는 직원들 중 AB5를 원치 않는 입장에 의해 지지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자유로운 근무 스케쥴과 기존의 생활 패턴을 유지하길 원하며 긱 노동자(gig worker)들이 기업에 억지를 부리며 생계를 유지하는 집단으로 취급받는 것에 모욕감을 느낀다며 거꾸로 AB5의 폐지를 주장했다.

독립 계약자 신분 유지를 원하는 운전자들 [사진: KCRA]

캘리포니아의 주민 투표 제도...향방은?

캘리포니아 주에는 주민 투표(California Ballot Propostion)를 발제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주민 투표를 통해 현재 캘리포니아 주법의 내용을 수정 또는 삭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우버와 리프트는 계속해서 법정에서 패소를 하자 이 방식을 선택했다.

주민 투표를 실시하는데는 당연히 비용이 따르지만 우버와 리프트를 비롯한 5개 기업이 약 1억1000만 달러를 모금해 결국 투표를 성사시켰다. 우리 돈으로 약 1300억원에 해당하는 거금을 쏟아 부었다. 주민 투표를 발제하는데 이렇게 큰 금액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편에선 결국 자금력이 있는 기업 혹은 단체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고 한다. 

주민 투표 날짜는 오는 11월 3일로 정해졌고(주제 : California Proposition 22, App-Based Drivers as Contractors and Labor Policies Initiative (2020)) 이미 홈페이지까지 준비돼 안내가 시작되고 있다. 투표에서 찬성을 하게 되면 운전자들이 독립 계약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반대를 하게 되면 AB5 주법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전문 서베이 기관인 레드필드&윌튼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찬성 의사를 밝힌 주민이 41%, 반대 의사가 26%, 중립이 33% 정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우버와 리프트는 어떻게든 이 주민 투표에 사활을 걸고 최대한 찬성표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들 기업은 승차 공유 앱의 메시지를 통해 이용자에게 호소를 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실제로 그 전략이 여론 형성에 효과를 보기도 했다. 과거 뉴욕시에서 우버와 리프트의 차량 증가로 교통 혼잡이 심해지자 운영 대수를 제한하려는 법안을 만들었는데 이 때도 앱을 통한 호소를 통해 이용자에게 공감을 얻어 결국 법안 철회를 이끌어냈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 소송에서 패소하자 리프트는 아예 캘리포니아에서 일시 영업 중지까지 고려하기 시작했다. 에단 슐만 판사의 판결문이 내려진 이후 10일 안에 우버와 리프트는 운전자들을 정규 직원으로 전환하거나 항소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그러나 리프트는 항소를 하기로 결정하고 영업 중지라는 강수를 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법원도 기존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고수하기는 어려워졌다.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판결문 내용의 시효 기간을 10월 1일로 연장했고 리프트 역시 영업 중지 발표를 철회하고 다시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왜 법원이 판결 내용의 시효기간을 연장했는지에 대해서는 2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 AB5의 내용이 주요 대상 중 하나인 긱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명하게 갈리고 있는 점. 정규 직원으로서 안정적인 생활 및 복지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유로운 스케쥴 및 근무 형태를 선호하고 있다.

둘째, 리프트의 영업 중지가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6년 텍사스 오스틴에서는 운송 네트워크 회사 소속 운전자들의 범죄 이력 확인을 위해 지문 확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됐다. 당시 우버와 리프트는 각사 나름대로 운전자 신원 확인 방법이 있었는데다 지문 체크를 위한 기기 구입, 기타 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했다.

텍사스 주에서도 주민투표까지 실시했으나 법안 철회를 요청하는 운송 네트워크 회사들의 주장은 반대표 56%를 얻어 결국 우버와 리프트는 오스틴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이후 텍사스 A&M 대학교가 기존 이용자 18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버와 리프트의 철수 후 응답자의 45%는 자가용을 이용했고 오직 3%만 대중 교통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도로 위의 차량이 증가하고 주차 문제 등 부작용이 심해졌다.

뉴욕시에서 택시, 우버 그리고 리프트의 이용률이 매년 변하는 추이를 보면 택시는 서서히 감소하고 우버는 급증해 2018년도에 이미 우버의 이용률이 택시를 넘어섰다. 게다가 리프트 이용률은 증가세가 완만했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곧 택시의 이용률과 동등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시 택시와 우버, 리프트 이용률 추이 [사진: 토드슈나이더]

이런 사례를 미뤄 볼 때 법원이 캘리포니아에서 운송 네트워크 회사의 운행 중단이 가져올 부작용을 간과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는 연방보다 더 엄격한 환경 규제를 만들어 적용하고 있을 정도로 환경 오염에 민감한 지역이다.

게다가 운송 네트워크 회사에 적용되는 별도 온실가스 규제(Clean Miles Standards)를 만들고 있을 정도로 운송 네트워크 회사가 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크다. 인구 밀집 지역인 캘리포니아 대도시에서 리프트가 운행 정지를 하려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주민 투표를 성사시키는데 1억달러가 사용됐지만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Barclays)는 우버가 AB5를 따르게 됐을 때 오히려 매년 5억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내대봤다. 현재 우버와 리프트 같은 운송 네트워크 회사들은 주민 투표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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