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캘리포니아는 주민 투표를 통해 애플리케이션(앱) 기반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운전자를 독립 계약자로 분류하는 등의 정책을 담은 법안인 법제안 22(Proposition 22)가 통과시켰다. 

지난 8일(한국시간) 개표율 85% 기준으로 찬성 59%, 반대 41%로 통과된 법안에서는 운전자를 독립 계약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인정됐다. 뉴욕타임즈가 공개한 개표 지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총 58개 카운티(행정구역) 중 대부분에서 찬성표가 많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 양대 도시인 LA와 샌프란시스코를 보면 LA는 찬성표가 55%로 높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반대표가 59.7%나 나왔다. 두 지역의 결과가 상반된 것도 흥미롭다. 이 차이는 두 도시의 교통 환경이 반영된 결과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58개 카운티(행정구역)별 개표 결과 [사진: 뉴욕타임즈]

 

미국 주요 지역 내 운송 네트워크 회사 주행 비율 [사진: 스트리트블로그]

우버, 리프트 등 운송 네트워크 회사(Transportation Network Company) 소속 차량은 샌프란시스코의 극심한 교통 체증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우버와 리프트 차량의 도심 주행 거리(VMT)는 샌프란시스코 전체의 12.8%인 것으로 조사된 반면 LA는 2.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대도시지만 샌프란시스코 교통 체증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투표에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다. 

샌프란시스코 교통 당국과 미국 켄터키대학도 공동 연구를 통해 우버와 리프트가 시내 교통 체증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두 기관은 패널 회귀 분석 방식을 사용해 2016년 샌프란시스코 교통 통계에서 운송 네트워크 회사 차량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교통 환경 변화를 확인해본 결과 교통 지연 시간은 40%, 총 주행거리(VMT)는 6% 감소하고 평균 주행 속도는 9%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제안 22를 지원하는 거대한 힘

우버, 리프트, 도어대시, 인스타카트 그리고 포스트메이츠는 주민 투표를 성사와 유권자 포섭을 위해 2500억원에 이르는 후원금(Yes on Prop.22)을 모금했다.

이 금액은 캘리포니아 주민투표 후원금 역사상 가장 크다는 기록을 세웠는데 기업들이 이번 투표 결과에 사활을 걸었음을 보여준다.

PR 회사들은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수많은 이메일을 발송했고 캘리포니아가 많은 유색인종이 거주하는 사회란 점을 이용했다. 해당 이메일 하단에는 다양한 조직(Council of Concerned Women Voters Guide', 'Our Voice, Latino Voter Guide', 'Feel the Bern, Progressive Voter Guide 등)이 지지를 표명한다고 쓰여있었지만 알고 보니 이 단체들은 모두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실이 알려진 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우버와 리프트는 대중을 기만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법제안 22 반대를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사진: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 트위터]

 

찬성 측 후원금 캠페인이 광고한 내용에는 유색 인종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예를 들어 우버는 이번 여름 동안 미국 주요 대도시에 옥외 광고판을 통해 "당신이 인종차별주의자라면 우버 앱을 지워 주세요"라는 광고를 하기도 했다. 리프트는 TV 광고를 통해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인 마야 안젤루(Maya Angelou)의 시 '아침의 맥박(On the pulse of Morning)'을 그녀의 육성으로 틀어 주기도 했다. 

반면 반대 측의 후원금은 300억원에 불과했다. 이에 이들은 찬성 측을 향해 거대 기업의 자금력으로 주민들의 잘못된 판단을 유도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각에선 대규모 자본으로 인간의 사고를 조종했다는데 우려를 표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안건의 본질과는 무관하게 유색 인종을 타겟으로 동정심에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설문 조사에서도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나타났다. 보스턴 대학에서 긱 경제(gig economy)를 연구하고 있는 줄리엣 쇼어(Juliet Schor) 교수는 설문 조사가 전체 생태계 관점에서 그림을 잡아내지 못했으며 편향된 표본과 질문, 잘못된 배경 정보를 통해 답변에 영향을 줬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에델만이 실시한 질문지에는 주민의 72% 정도가 찬성한다는 인터넷 매체 테크크런치의 기사를 인용, 많은 주민들이 찬성을 하고 있다는 선입견을 심어 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표본의 경우에는 대상이 모두 현직 운전자라는 점이 지적됐다.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해 일을 그만 둔 전직 운전자들의 의견도 포괄적으로 수집됐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UC버클리대학에서 지난 9월과 10월에 실시한 사전 설문조사에서는 각각 5000명 이상이 응답,고 찬성이 반대에 3~4% 근소하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실제 투표에서도 양쪽이 팽팽하게 맞설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 투표 결과는 18% 차이라는 게 다소 의아하다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표본이 2000명, 588명 밖에 되지 않았던 다른 기관의 설문 조사 결과가 실제 투표 결과와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법제안 22에 대한 주요 사전 설문조사 결과와 실제 투표 결과

설문 조사나 특정 연구 결과는 진행 주체가 지닌 성향을 어느 정도는 반영하게 되기 마련인데 UC버클리대학의 설문 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또 법제안 22 통과 후 운전자들이 실질적으로 받게 될 혜택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것도 UC 버클리 대학이라는 점에서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버, 리프트를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고 만약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이들 기업이 사업을 철수하게 됐을 때 경험해야 할 불편함에 대한 걱정으로 찬성 표를 던진 주민들도 많았을 것이라고 본다.

[사진: 셔터스톡]

 

법제안 22에 담긴 내용은?

법제안 22가 통과하면서 운전자들은 독립 계약자 신분이 돼 개인 일정에 맞춰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반면 캘리포니아 주 노동법의 보호는 받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운전자와 회사를 대상으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 노동·임금 정책을 적용하게 된다.

① 서비스 시간(Engaged time) 동안 최저 임금의 120%를 보장한다.
② 앱 로그인 상태에서 24시간 안에 12시간 이상 일하는 것을 제한한다.
③ 서비스 시간 기준으로 주 평균 최소 25시간 근무한 사람에게는 캘리포니아 보장(Covered California) 건강 보험 평균 금액의 82%에 해당하는 건강관리 지원금을, 15~25시간 근무한 사람에게는 41%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사가 지급한다.
④ 서비스 시간 동안 발생한 사고로 치료가 필요하거나 수입원을 잃었을 경우 최소 100만 달러를 보장하는 산재 보험을 제공한다.
⑤ 서비스 시간 동안 운전자가 사망했을 경우엔 자녀 및 기타 부양 가족을 위해 기업이 사망 보험금을 제공한다.
⑥ 기업은 차별 및 성희롱 방지와 범죄 경력 검사를 실시한다.

이에 대해 다라 코스로우사히 우버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한 인터뷰를 통해 "법제안 22는 긱 노동자(Gig worker)에게 노동 시간의 유연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 또한 분명히 마련하게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서비스 시간'의 정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쟁점으로 남아 있다. 법제안 22는 서비스 시간을 "서비스 요청을 받은 순간부터 그 서비스가 끝나는 시간까지"고 정의했다. 즉 서비스 사이의 대기 시간에 발생하는 우발적인 사고는 보상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전자 대부분이 서비스 시간보다는 서비스 요청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법제안 22가 운전자에게 노동의 유연성을 보장해준다는 것은 사실 이론적인 이야기다. 노동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 없이 노동의 유연성만 보장해줘서는 생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입을 얻지 못한다는 비난의 여론이 거셌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 대학의 연구 결과가 상반돼 눈길을 끈다.

UC버클리의 노동연구센터에 의하면 서비스 사이 대기 시간을 고려하면 현재 시간당 13달러인 최저 임금은 5.64 달러 수준으로 떨어진다. 반면 UC리버사이드 경영대학은 법제안 22가 통과되면 대기 시간을 고려하더라도 일주일에 5시간 운전하는 운전자는 시간당 26달러, 15시간 이상 운전하는 운전자는 28달러를 받게 된다고 분석했다.

두 주장의 큰 차이는 시간당 총 수입(Gross benefit) 가정 금액이 다르기 때문이다. UC 버클리 노동연구센터는 시간당 수입을 15.6 달러로 측정했고 UC리버사이드는 2019년 코넬대학이 시애틀에서 조사한 결과인 36.3 달러를 기준으로 했다.

 

법제안 22를 두고 나뉜 찬성 vs 반대

운전자를 독립 계약자로 분류해야 한다는데는 여전히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데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양측은 각각 다음과 같은 명분을 제시하고 있다.

◆ 찬성
- 운전자의 유연한 근무 시간과 노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정규 직원으로 분류될 경우, 전체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며 자유로운 일정에 따른 근무가 제한되면 '수요응답형(온디맨드) 서비스'라는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을 훼손시키게 된다. 또 승차 대기 시간 증가, 요금 인상이라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 수많은 설문 결과, 현직 운전자 대부분은 자신이 독립 계약자로 남길 희망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다른 직업이 있으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추가 수입이 필요하다. 

◆ 반대
- 운전자의 최소 임금 및 각종 복지 혜택이 정당하게 보장돼야 한다. 법제안 22는 AB5 법안의 취지에 완전히 위배되는 것이다. 
- 독립 계약자로 분류 될 경우, 치안 유지나 운전자 음주, 마약 복용 등 승객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장치에 대한 투자와 점검이 열악해질 것이다. 또 승차 요청을 거부하는 문제도 증가할 것이다.
- 캘리포니아 환경부(CARB)는 운송 네트워크 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별도 온실가스 규제(Clean Miles Standard)를 법제화 중인데 이에 따른 비용이 운전자에게 전가될 우려가 있다.
 
별도 온실가스 규제란 운송 네트워크 회사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시행할 것을 요구하는 규제다. 이 규제에 대응하려면 우버 등의 차량을 점진적으로 전기차 등으로 바꿔야 하는데 운전자가 비싼 차량 가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승차 공유가 생계 수단인 운전자들에게 고가의 무공해 차량 구입은 현실적 장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규 직원이 아닌 독립 계약자 신분이 유지됐을 때 회사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 또한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법제안 22는 단순히 노동자 신분에 대한 가치관 대결이 아니다. 그 결과가 친환경 규제와 같이 전혀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 전반에 걸쳐 친환경 규제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도시 교통 혼잡 문제와 환경 오염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운송 네트워크 회사 소속 차량에 대한 규제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규제 당국-운송 네트워크 회사-독립 계약자인 운전자들, 이 세 이해 관계자의 역할이 어떻게 정의될 것인지도 관심사다.
 

 

법제안 22가 미칠 파장

이번 투표 결과를 합법적으로 뒤엎을 수 있는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많다. 법제안 22의 제9조 '법안의 개정'에 의하면 법안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캘리포니아주 상하원 모두의 7/8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고 돼있다.

뿐만 아니라 개정안이 기존 법안 내용과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도 있다. 과거에 다른 법안 수정 동의 비율이 3/5에서 2/3 이상을 기록한 적이 있다고 하지만 이번 법안을 뒤집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우버, 리프트, 인스타카트, 포스트메이트의 운전자들은 앞으로 독립 계약자로 활동하게 되고 주법에서 요구하는 것과 별개의 노동 정책을 따르게 될 것이다.

이번 법제안 22에서 우버와 리프트가 거액의 후원금으로 유권자의 생각을 조종했다는 비난도 거센 편이어서 이에 대한 소송이 진행될 가능성도 아직은 남아있다.

인간의 생각을 조종한다는 건 거대 기업이 온라인 상의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비난과 결을 같이 한다.

때문에 이 문제와 관련한 지속적인 소송과 여론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캘리포니아 주에서 다른 공유 업체들의 행보, 나아가 다른 주에서 캘리포니아 법제안 22 투표 결과가 미칠 영향력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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