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여권의 상징, ‘오토패드’ 

플로렌스 노먼(Florence Norman, 1883~1964)과 전동킥보드 [이미지 출처:마셔블]
플로렌스 노먼(Florence Norman, 1883~1964)과 전동킥보드
[이미지:마셔블]

위의 사진은 1916년 촬영한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가 플로렌스 노먼(Florence Norman, 1883~1964)과 그녀의 오토패드 사진이다. 그는 영국 자유주의여성참정권연합과 여성자유주의연맹에서 활약했다. 남편인 헨리 노먼이 생일 선물로 준 전동킥보드를 사무실이 있던 런던에서 업무용으로 타고 다녔는데, 사진속 오토패드는 아메리카오토패드가 세계 최초로 판매한 '에버레디 오토패드' 모델(1915~1921년)이다.

발판위의 배터리 박스 때문에 배터리 구동방식이라고 오해 받기도 하지만 가솔린이 연료이며 배터리 박스는 조명용이다. 연료탱크는 앞쪽 휀더 위의 박스다. 전륜 공냉식 4행정, 155cc 엔진을 사용했으며, 무게 43kg, 10인치 바퀴, 최대속도 25mph (40 km/h), 연비는 125 mpg(mile per gallon)으로 알려져 있다. 스쿠터 핸들바 컬럼을 앞으로 밀면 엔진이 작동하고, 당기면 브레이크가 걸리는 방식으로 스티어링 컬럼을 접을 수 있는 폴더블이기 때문에 이동과 보관이 편리하다.

놀라운 점은 현재 전동킥보드 디자인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 동력원이 달라 ‘전동킥보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이 제품을 현대 전동킥보드의 원형으로 인정했다. 실제로 비슷한 제품이 2016년 1월 라스베이거스 경매에서 1만3750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 제품은 여성의 이동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미국에서는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지고 여성 운전자도 늘었다. 1920년에는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면서 많은 여성 참정권운동가가 직접 운전을 했다. 여성이 직접 운전을 하고 호소하는 것이 언론 홍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오토패드는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오토패드를 출시, 여성들을 마케팅 대상으로 공략했다. 여성 최초로 대서양 횡단비행에 성공한 비행사이자 작가인 에밀리아 에어하트는 1936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더 이상 아무도 걷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처음 등장한 오토패드는 이상한 자동차(Freak Vehicle)로 불렸고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결국 상업적 성공에는 실패했다. 100달러의 가격은 대량생산시스템을 갖추고 자동차 대중화를 이끌었던 포드의 모델-T가 345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당시 자동차 제조업체의 노동자 평균 일당은 2.34달러로 가장 높았던 포드도 5달러에 불과했다. 이를 감안하면 일반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두 달 월급을 모아야 구매할 수 있는 고가의 제품이었던 것.

 

“여성 충족시키면 남성의 기대는 뛰어넘는다”

볼보YCC 개발팀과 스타일링 [이미지:볼보 웹사이트]
볼보YCC 개발팀과 스타일링 [이미지:볼보 웹사이트]

이 말은 미국의 여성 소비패턴 전문가 마티 발레타(Marti Barletta)가 2001년 볼보 방문시 언급한 내용으로 볼보YCC(Your Concept Car) 개발의 모티브가 됐다. YCC는 볼보가 개발한 컨셉차로 120여 명의 볼보 직원이 설계, 개발, 생산에 참여했지만 최종 결정은 9명의 여성 프로젝트 리더(PM 2명, 디자이너 4명, 기술PM 2명, 커뮤니케이션 매니저)가 했다. 덕분에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By Women and For Women)’ 컨셉카 YCC가 탄생했다.

2002년 개발을 시작해 2004년 제네바 모터쇼에 처음 선보인 YCC는 볼보 S60 크기의 스포티 한 중간 사이즈 쿠페로 외관은 볼보 P1800과 유사하다. 열쇠, 휴대폰, 동전 등을 넣을 수 있도록 한 중앙 콘솔공간, 핸드백 걸이, 노트북과 티슈 등의 수납을 위한 스마트 스토리지 솔루션, 윙 도어, 몸에 맞게 시트 등이 조정되는 개인화 기능 등 여성의 생활과 행동패턴을 만족시키기 위한 옵션을 설치했고 긴 뒷 창은 운전자 시야 확보에 최적화되도록 설계했다.

당시 볼보 구매자중 여성이 54%로 중요한 고객군이었으며, 유럽을 중심으로 꾸준히 여성 고객이 증가하는 시점이었다. 볼보는 전통적으로 여성 소비자 의견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었다. 1980년대 초부터 여성 레퍼런스 그룹을 구성, 모델 개발 초기 단계부터 테스트와 평가에 참여했다. 특히 XC90 개발에는 미국에서 여성 포커스 그룹을 구성해 볼보 SUV 만의 기능을 구성하는데 참여하기도 했다.

교체 가능한 시트 
[이미지:볼보 웹사이트]
여유있는 수납 공간 [이미지:볼보 웹사이트]
여유있는 수납 공간 [이미지:볼보 웹사이트]

YCC는 뉴욕, 워싱턴D.C., 호주 유럽, 아시아, 2005년 5월 서울 등 전 세계 투어를 했다. 이중 2,500명을 대상으로 어떤 기능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조사한 결과, 여성은 앞좌석 시트 사이 수납공간을 꼽았고 런플랫 타이어, 세차가 쉬운 페인트, 워셔액 충전 위치, 자동 오픈 도어 순으로 답했다. 남성 역시 세차가 쉬운 페인트, 프론트 시트 사이 수납공간, 런플랫 타이어, 워셔액 충전 위치, 도어잼 수납공간 순 답해 선호도에 차이가 없음을 보여줬다.

YCC는 단순히 여성을 위해 설계한 자동차는 아니지만 지금도 젠더 혁신 디자인의 사례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젠더 혁신 전문가인 미국 스탠포드대학 린다 쉬빙거(Linda Schiebinger) 교수는 YCC를 비판하기도 했다. YCC의 특정기능이 성고정관념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YCC는 본넷이 없는 데 이는 여성은 엔진 검사를 원하지 않거나 해당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라는 것.

“여성의 기대를 충족시키면 남성의 기대는 뛰어 넘는다”는 모토 또한 여성이 남성보다 요구사항이 많고 높은 기준을 가진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YCC는 볼보의 구색갖추기(tokenism)의 한 형태라는 지적도 있다. 쉬빙거 교수는 외부의 대대적인 관심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YCC 프로젝트가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했다.

 

자율주행자동차를 두려워하는 여성들

그룹별 자율주행자동차 탑승 의사 [이미지:퓨리서치센터]

미국자동차협회가 지난해 1월 성인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 55%는 2029 년까지 자율주행차가 일반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71%는 완전자율주행차를 두려워한다고 밝혔다. 퓨리서치의 조사에서는 여성들이 자율주행자동차 탑승에 관심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여성 81%가 자율주행자동차를 허용하는 것을 두렵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67%였다. 남성이 여성보다 자동주차(42% vs. 31%), 자동긴급제동시스템(49% vs. 40%), 적응형 순항 제어장치(50% vs. 43%) 사용을 선호하고 다음 구매에서 해당 시스템을 장착하겠다고 밝혔다.

여성들이 높은 선호를 보이는 분야도 있다. 바로 운전 스트레스 해소다. 남성 42% 보다 높은 50%의 관심을 보였다.

보조운전자 탑승여부의 선호도도 다르다. 2017년 MIT에이지랩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53%, 남성은 32%가 자율주행자동차에 보조운전자 탑승을 원했다. 특히 아이들과 탑승하는 엄마들의 자율주행자동차 안전성과 도구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 엄마들은 운전사가 없을 때 책임 문제를 걱정했다.

인텔은 디자인 컨설팅기업 티그와의 연구에서 공유 완전자율주행자동차의 젠더 차이를 도출했다.

핵심은 안전이다. 제안된 대책으로는 (1) 원격 모니터링, 내외부 카메라 등 센서 조합을 통해 안전을 위협하는 탑승자 승차 방지, (2)위험 상황에서 스마트폰 ‘비상연결’ 기능 등을 통해 경찰서로 경로 변경, (3)야간에 최단경로 보다 사람들이 많은 안전한 지역을 주행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인공 비지능: 컴퓨터는 세상을 어떻게 오해하나’ 저자인 메러디스 부르사드(Meredith Broussard) 뉴욕대 교수는 맹목적 기술추종주의자(Technochauvinists)들은 젠더 평등과 다양성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눈이 멀었으며 자율주행자동차 설계자들이 대부분 남성들이어서 여성들의 요구사항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젠더 혁신이란 사회, 문화, 과학, 공학,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젠더 편견과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당연히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부상하고 있는 모빌리티 산업에도 젠더 혁신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100여년 전 모빌리티는 여권의 상징이었고 볼보 YCC처럼 여성 엔지니어의 설계가 결국 남녀 모두가 원하는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자율주행자동차 역시 여성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능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남성들에게도 필요한 것들이다.

결국 제품과 서비스 설계에서 양산까지 여성의 참여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젠더에 대한 고려가 결과물의 효용성과 사용자경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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