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얽힘’에서 파는 유일한 문학 관련 책은 SF 소설이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필립 딕, 어슐러 르귄의 소설과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테드 창의 소설은 우리 책방에서도 찾는 분들이 있고 나 역시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SF소설과 포스트 휴먼 분야 저자이자 번역가인 송은주 연구원의 ‘당신은 왜 인간입니까’와 영국 출신인 미국 마이애미대학 철학과 마크 롤랜즈 교수의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두 권이다.

‘당신은 왜 인간입니까’는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이라는 면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포스트 휴먼, 인공지능, 로봇과 같은 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변화, 특히 우리 인간의 삶, 존재의 의미, 협업과 공존의 모습을 여러 SF 소설을 통해 어떻게 표현하고 있고 또 우리가 얘기할 것이 무엇인지 1, 2부에서 다룬다.

이제는 많이 알고 있는 튜링의 생각하는 기계와 튜링의 삶에서 시작해, 아시모프의 ‘이백 살을 맞은 사나이’의 앤드루, 아서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나오는 인공지능 컴퓨터 ‘할 9000’,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 등장하는 디지언트를 통해 이런 존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고, 반대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인지, 그들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 책에는 최신 디지털 기술 동향이나 주요 인공지능 연구자들의 역사, 견해, 기술 발전의 현황을 매우 정확하게 보여준다. 여러 인문학자들이나 역사가들이 쓴 미래 기술에 대한 기술이 지나치게 과장되었거나 제대로 이해 못한 흔적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반갑다.

작가가 기술에 대한 정보를 매우 광범위하게 흡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부, 4부, 5부에서는 젠더 문제, 복제인간, 특이점과 종말, 환경 문제 등을 다룬 작품을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문명이 역사와 순환을 언급하는 ‘클라우드 아틀라스’로 맺는다.

‘허랜드’와 ‘어둠의 왼손’에서는 SF에 묘사된 젠더의 문제, 양성적 세계를 짚으면서 페미니즘과 인종 차별이 어떻게 다루어 졌는지 살펴본다. 드라마로도 유명해진 ‘시녀 이야기’에서는 기술과 여성의 문제를 논의한다. 특히 작가들의 이중적 모습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는 개인적으로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했던 소설인데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삶의 목적이 장기 제공이라는 복제인간 이야기는 SF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지만 이들 간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인간과 이들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물론 이 영역은 우리의 제어를 통해 소설 같은 모습은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것이지만, 그 존재가 사람이 아닌 또 다른 생명체라면 어떻게 봐야 할 지 하는 질문은 피할 수 없다.

4부에서 소개하는 ‘유년기의 끝’, ‘화이트 노이즈’, ‘인간 종말 리포트’는 포스트 휴머니즘과 환경 문제를 다루지만 작가의 관심은 포스트 휴머니즘이다. ‘포스트 휴먼’니즘과 포스트 ‘휴머니즘’을 구분한다면 작가는 후자에 좀 더 의미를 두고 그냥 인간의 진화 다음 단계를 얘기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이 좀 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SF 소설이 그냥 미래 기술과 사회를 주제로 마음껏 상상하는 판타지가 아니라 토의가 필요한 인문학적 주제를 담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그래서 머리말에서 ‘인간에게 던지는 가장 미래적인 질문’이라면서도 ‘오래된 미래’임을 얘기하고 있다.

송은주 저 | 웨일북 | 2019년 04월 10일 펴냄 | 정가 15,000원

“철학자가 SF영화를 통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을까?”하는 호기심에서 읽게 되는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는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토탈 리콜’, ‘블레이드 러너’, ‘스타워즈’,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누구나 봤음 직한 영화를 통해 삶의 의미, 회의와 확신, 심신의 문제, 인격동일설, 자유의지, 도덕, 선과 악, 죽음과 삶의 의미 등 철학이 다루는 모든 주제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다루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SF철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주장하면서, 우리에게 낯선 타자를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또, 소설이 아닌 영화를 선택한 것에 대해 구체화된 추상적 문제를 통해 철학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공대 학생들에게 윤리를 가르치는 데는 SF 소설이나 영화가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있다.

영국 출신 특유의 영국식 유머가 곳곳에 등장해 읽으면서 킬킬거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가 소재로 삼은 영화가 특히 평론가들에게는 좋은 평을 받지 못한 영화이거나 B급 영화라는 점 역시 그의 역설이다. 이런 영화들을 혹평한 영화 평론가는 철학적으로 꽝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아마 그래서 위대한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포함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이 소개하는 영화 중 ‘매트릭스’나 ‘블레이드 러너’만 갖고도 철학 책 한 권이 나올 수 있지만, 롤랜즈는 매트릭스에서는 데카르트를 등장시켜 회의주의와 인식론을 소개하고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에피쿠로스의 죽음에 대한 논증을 통해 우리가 죽음을 향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무더워지는 여름에 휴식을 취하면서 SF가 우리에게 주는 인문학적, 철학적 주제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SF 소설과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그런 작품들에 얼마나 깊이 있는 주제가 담겨 있는지 뽐내는 데에도 좋은 재료가 될 것이다.

마크 롤랜즈가 얘기하듯 ‘불꽃이 팍팍 튀어 오르고, 도처에 사상자가 즐비하며, 외계인에게 고난을 겪고, 로봇이 왕창 다 때려 부수는, 철학에 한번 빠져보면서’ 더운 여름을 이겨 나가기를 바란다.

마크 롤랜즈 저 | 신상규, 석기용 공역 | 책세상 | 2014년 10월 05일 펴냄 | 정가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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