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에 관한 책 중에 이 책만큼 포괄적이고 다양한 이슈를 다루면서도 깊이 있게 주제를 탐구하는 책은 드물 것 같다. ‘가상현실’이라는 용어는 1978년 재런 러니어가 처음 쓴 것으로 기대와 환상을 제공하고 다시 벽에 부딪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하지만, 이제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적정 가격의 장비가 등장, 이제 가상현실 시대의 여명기라고 볼 수 있다.

저자인 베일렌슨 교수는 스탠포드 ‘가상 인간 상호작용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인지 심리학을 전공했으나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심리학부는 가상현실을 기본적인 뇌 과학을 이해하는 도구로 여기지만 커뮤니케이션학부는 미디어로 활용하는 것을 궁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인간 사회에 새롭게 주어지는 미디어로 가상현실을 본다.

이 책에는 가상현실 장비나 새로운 트렌드, 섹시한 스타트업 소개는 없다. 자극적이거나 도피적인 콘텐트 분야에 대한 언급도 없다. 그는 가상현실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하는 친 사회적 역할에 더 초점을 맞춘다.

책은 그가 수행한 다양한 연구 분야와 만난 사람들, 동료 연구자들의 노력, 그리고 수행했던 연구의 결과와 의미를 소개한다. 특히 결과를 과장하지 않고 아직도 초보적 수준임을 인정하거나 학술적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한 점 등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연구가 얼마나 더 흥미로워질 수 있을지 제시한다.

이 책은 가상현실 훈련이 우리에게 체화된 인지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미식축구 선수와 월마트 직원의 성과를 어떻게 높일 수 있었는지를 예로 들며 이 같은 연구가 새로운 사업 기회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알려준다.

가상현실이 우리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챕터에서는 심도 깊은 몰입성과 행동 모델링 등 여러 심리학의 이론과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가상현실에서의 폭력성 문제를 제기한다.

실제로 그는 게임의 폭력성이 사용자에게 주는 영향, 특히 흥분과 공격적인 행동, 반사회적 행동의 수준을 높인다는 점에 주목한다. 물론 이에 대해 반대의 의견도 많지만 저자는 폭력적 가상현실에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상현실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크리스 밀크’의 작품을 소개하며 가상현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공감을 만들어 내는지 알려준다(나도 그가 뉴욕타임스에 낸 ‘난민들’이란 작품을 본 경험이 있다). 특히 조망 수용이나 가상 거울, 아바타를 통해 다른 사람, 다른 인종, 다른 생명체의 입장을 경험하는 것이 어떻게 공감을 확장할 수 있는 지를 설명한다.

또한 전쟁, 테러, 강력한 사건에 의한 트라우마와 통증 치료의 가능성은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아직 이런 치료를 병원에서 직접 사용하기에는 미국 FDA(식품의약국)나 CMS(의료보험청) 같은 기관의 승인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연구는 가상현실이 우리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가 가장 주목하는 영역은 역시 사람과 사람이 가상 공간에서 만나는 것이다.

현재 판데믹 상황에서 언택트 사회를 위한 많은 새로운 시도가 있다. 만약 가상현실을 이용해 우리의 사회적 경험을 대면 관계처럼 만들 수 있다면 불필요한 이동이나 시간 낭비를 크게 줄이고 에너지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는 사람들이 비 언어적 신호를 통해 정말 많은 정보를 얻고, 친밀감을 갖게 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 위한 여러가지 시도들, 가상 악수와 페이스시프트가 보여준 아바타의 표정과 몸짓의 중요성을 소개하고 있다(페이스시프트는 애플이 인수했다).


한편 뉴스 저널리즘에서 가상현실을 사용하는 데 대해서는 좀 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다.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고 조작된 영상이 악의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페이크 뉴스의 문제점이 가상현실 저널리즘에서 반복된다면 그 부정적 측면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을 교육에 활용하면 일대일 대면 교육을 실현하는 것은 물론 앞에서 언급한 새로운 사회적 관계들로 다양한 장점을 얻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아이들에게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는 현장학습을 제공할 수 있다. 고등 교육에서는 과학과 역사학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교육과 탐구의 영역을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지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는 이 책에서 이반 서덜랜드나 제런 러니어 같은 가상현실 파이오니어에 존경을 표하고 많은 동료 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하면서도 윌리엄 깁슨이나 닐 스티븐슨 같은 SF작가가 준 영감을 잊지 않는다.

“5G와 고성능 디스플레이를 갖고 문자나 보내거나 트윗을 날리기만 한다면 19세기의 전신과 뭐가 다르냐”는 그의 농담은 우리가 앞으로 이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함을 알려준다.

저자는 마샬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통찰,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는 사람들은 이전 것들과 관련된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려워하는 시기를 거친다”는 말을 소개한다. 아직 영화와 게임은 이 시기에서 방향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서사를 보여줄 것인지 아직은 탐구하는 수준인 것이다.

오큘러스를 인수한 페이스북의 움직임이 많은 가상현실 기업에게 큰 기대를 주었지만 아직도 시장이 크게 확대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가 마지막에 “좋은 가상현실 콘텐츠의 문제는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는 숙제”라며 “이 것이 가상현실에 있을 필요가 있는지 자문하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왜 내가 가상현실용 HMD를 쓰면 멀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명확히 알게 되었다. 또한, 이렇게 다양한 연구들이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고 매우 희망적인 결과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를 다시 꺼내 읽어 보고 싶어 질 것이다.

제러미 베일렌슨 저/백우진 역 | 동아시아 | 2019년 02월 20일 펴냄

 

테크와 과학 그리고 디지털 산업 부문에서 꼭 읽어 볼만한 양서를 과학기술 전문서점, 책과얽힘과 함께 선정해 소개합니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