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창조적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많은 학자들이 논의한 주제다. 여러 학술회의나 세미나에서 이런 주제의 발표가 있었는데 특히 예술 분야 종사자들이 이 문제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최근 열린 '세계박물관포럼'이라는 행사에서도 AI와 예술성에 대한 주제 발표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지금까지 이 주제에 대해서는 철학자나 미학자, 예술 평론가, AI 학자들의 글이나 연구 논문이 많았다. 이 책은 흥미롭게도 수학자가 쓴 책이다.

저자인 마커스 드 사토이는 옥스포드 대학교 수학과 교수면서 영국 왕립 회원이다. 군 이론(group theory)을 연구하면서도 과학 대중화 사업에 앞장선 학자다. 딥마인드 창업자인 데미스 허사비스와는 개인적인 친분(두 사람은 동시에 왕립학회 회원이 됐다)으로 알파고와 같은 딥마인드 연구를 가까이서 본 사람이기도 하다.

마커스 드 사토이 [사진: 위키피디아]

AI가 활용되는 창의성 분야로는 미술, 음악, 글쓰기 등이 언급된다. 사토이는 이와 관련해 여러 결과를 직접 접하며 그 수준을 평가했고 본인의 전공 분야인 수학에서 AI가 얼마나 창의성을 가질 수 있는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토이는 인지 과학자 마거릿 보든의 이론을 인용해 창조력을 설명한다. 창조력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기존 규칙을 따르면서도 실현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확장하는 '탐구적' 창조력, 서로 다른 두 개념을 접목시키는 '접목적' 창조력, 신비롭고 난해한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는 '변혁적' 창조력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하는 창조적인 사람들은 바로 세 번째, 변혁적 창조력을 보여주는 이들이다.

'AI가 이런 창조력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게 사토이가 가진 질문의 시작이다. 그는 특히 AI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기존 하향식에서 벗어나 딥러닝으로 대표되는 기계 학습의 상향식 방식이 보여주는 결과들에 주목한다.

사토이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간 바둑 대결도 예로 들었다. 알파고가 2국에서 보여준 37수와 이세돌이 4국에서 보여준 78수는 기계와 인간의 창조력 순간을 보여준 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수학자기 때문에 체스와 바둑의 차이, 바둑이 갖는 문제의 어려움을 분석적으로 설명한다.

6장까지는 AI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알고리즘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설명하고 7장부터 본격적으로 AI가 도전한 분야가 무엇인지 하나씩 설명한다.

플라톤, 칸트, 비트겐슈타인의 예술에 대한 정의를 소개하며 예술은 근본적으로 인간 자유 의지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또 컴퓨터의 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의 창조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예술 감상은 인간과 세계의 관계에 대해 예술가가 전하고자 하는 흥미로운 메시지와 관점을 해석하는 과정이란 입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AI는 예술가가 이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다. 코드를 활용한 프랙탈 아트(프랙탈 구조를 이용한 기하학적 형태의 예술 작품)나 헤럴드 코헨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가 설계한 로봇 화가 '아론' 등이 사례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와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가 협력한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나 미국 럿거스 대학의 적대적 생성 기법에 기반한 연구, 구글이 만든 AI 화가 딥드림 등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이런 사례들은 또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가 흥미로운 과제로 남는다.

미술 평론가인 조나단 존스는 렘브란트의 창조적 천재성이 그의 독창적인 화풍 덕분만이 아니라고 봤다. 화가가 자신의 내면을 드러냄으로써 우리 자신의 내면 세계를 보여주는 데 창조적 천재성이 있다는 평가다. 천재의 걸작 앞에서 우리는 소위 '전율감'을 느끼지만 AI 미술은 이 전율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가 협력해 만든 '넥스트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사진: 넥스트 렘브란트 공식 홈페이지]

특히 딥러닝은 엄청난 데이터를 갖고 학습해 이를 처리한다. 이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 '바벨의 도서관'처럼 모든 것이 있으나 사실 아무것도 없는 곳과 다름 없는 모습도 있다. 한 수학자는 "창조는 바로 쓸모없는 조합을 만들지 않는데 있다. 창조력은 곧 분별력이요, 선택력"이라고 언급했는데 이 말은 딥러닝의 창조성에서 빠진 부분이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

미국의 인지 과학자인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어떤 프로그램이 쇼팽과 바흐처럼 음악을 만들어 내려면 직접 세상을 돌아다니며 삶의 미로를 헤쳐 나가고 모든 순간을 느껴봐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인간이 갖는 창조성이 왜 기계의 창조성과 다를 수밖에 없는 체화된 것이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자아와 죽음이라는 필멸성이야 말로 인간 창의성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AI는 어떻게 자아를 가질 수 있을까. AI가 의도나 욕구를 표현하면서 자신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자아를 가졌다고 볼 수 있을까. AI의 자의식이 인간의 자의식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날 필요는 없지만 그 단계를 보여줄 때가 돼야 우리도 AI의 창조력을 진정한 창조로 인정할 듯 싶다.

그럼에도 사토이는 AI가 지금 보여주는 결과들에 잠재력이 있으며 인간의 창조성 증대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음악이나 글쓰기에서는 이미 창의적 AI가 작곡가나 작가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훌륭한 동반자가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마지막에 가서는 그 역시 이 책의 한 단락은 글쓰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작성했음을 밝히며 이 프로그램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는지 묻는 유머를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은 그동안 창조성 있는 AI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견해나 노력의 배경이 무엇이고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권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OTT) 서비스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케임브리지 연구소에 들러 그들의 학습 과정을 지켜본 일화 등이 대표적이다.

사토이는 그간 AI 예술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했던 사람들의 입장을 각 장(챕터) 마지막에 소개하고 있다. 사토이는 AI가 보여주는 놀라운 결과에 대해서 무조건 폄하하고 싶지 않다고도 고백한다.

책을 덮으면서 과연 AI가 인간의 창조력과 본질적으로 같은 창조력을 가져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우리가 갖는 인간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맞물려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마커스 드 사토이 저 | 박유진 역 | 북라이프 | 2020년 7월 15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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