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글러, 땜장이, 놀이꾼, 디지털 세상을 설계하다

 

테크와 과학 그리고 디지털 산업 부문에서 꼭 읽어볼만한 양서를 과학기술 전문서점, 책과얽힘에서 선정해 소개합니다

 

책과얽힘에는 과학자나 공학자의 전기나 자서전을 많이 비치하고 있다.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테슬라, 오펜하이머, 리처드 파인만 등의 전기는 그들의 삶과 동시대 사람과의 관계, 연구 배경과 동기를 이해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우리가 지식으로만 알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즐거움을 준다.

이번에 나온 '저글러, 땜장이, 놀이꾼, 디지털 세상을 설계하다'란 조금은 긴 제목의 책이 소개하는 인물은 정보이론의 선구자 클로드 섀넌이다.

2017년에 나온 원서의 제목은 ‘놀이하는 정신’이지만 섀넌이라는 사람의 여러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붙인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흔한 용어인 정보 사회, 정보 기술, 정보화 등의 단어에서 정보란 과연 무엇일까? 이 단어의 현재 의미를 만들어 내고 정보 이론이라는 20세기와 21세기 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 바로 섀넌이다.

그런데 아마 대부분의 독자는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대학에서도 전자공학이나 컴퓨터 관련 학과에서 배우는 그의 이론은 그냥 기본 이론으로 지나간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고, 왜 그의 생각이 위대했는지에 대해 그렇게 깊이 있게 들을 기회가 없다(그런 의미를 가르치는 교수님이 있다면 죄송한 말씀이다).

하지만 그는 정보 이론의 뉴턴이며 아인슈타인 같은 존재이다(책에 나오는 표현이다).

 

클로드 새년(Claude Elwood Shannon, 1916년 4월 30일 ~ 2001년 2월 24일)
클로드 새년(Claude Elwood Shannon, 1916년 4월 30일 ~ 2001년 2월 24일)

 

책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앤아버의 미시간대학, 그리고 당시 공돌이들의 새로운 메카가 떠오르던 MIT 대학원시절, 벨 연구소(흔히 벨랩으로 불리는 이곳은 당시 최고의 연구소였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아이슈타인과 괴델이 있었던), 2차 대전, 다시 벨연구소와 MIT 교수 시절까지 시간 순으로 그의 삶을 소개한다.

대부분의 전기가 그렇듯 그가 만난 사람과의 관계, 수많은 증언들, 개인적 삶과 취미 활동, 그리고 그가 얼마나 괴짜였고 특출한 사람이었는지를 계속 강조한다. 사실 대부분의 과학과 공학의 위대한 인물중 괴짜가 아니고 성격이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

디지털 세상을 연 그의 가장 위대한 논문은 1948년 벨연구소의 벨 시스템 테크니컬 저널에 시린 ‘통신의 수학적 이론’이라는 논문이다.

물론 이 논문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지속적 연구(원래 수학자이며 전기공학자였다), 그리고 나이퀴스트나 하틀리의 선행 연구와 연결된다. 그들의 연구를 바로 잡고 완성한 것이 섀넌이다.

그를 통해 정보는 인텔리전스에서 인포메이션이 되었고, 내용과 무관하게 비트로 부호화할 수 있게 됐다. 또 정보란 해소된 불확실성으로 정의하며, 잘 일어나지 않는 사건의 정보량이 자주 일어나는 사건의 정보량보다 많다는 개념 등이 정립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저널리스트이어서인지 필요한 수식이 생략돼 있어 개념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다. 특히 정보를 전달하는데 필요한 최소 비트를 정의한 섀넌 엔트로피는 은근 슬쩍 언급하며 지나간다(이는 물리학의 엔트로피와는 다른 성격으로 불확실성 또는 놀라움의 정도라고 얘기한다. 특정 분포에서 여러 샘플링을 했을 때 얻는 평균 정보량을 말하는 것으로 그 이상은 어려워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이 책에서 섀년이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컴퓨터 역사의 선구자 들이다. 그를 가르치고 이끌었던 바네바 부시는 아날로그 컴퓨터의 선구자로 '메멕스'란 개념의 가상 컴퓨터를 제안해서(무려 1945년에!) 지금의 하이퍼텍스트나 개인 지식저장 장치 개념을 탄생시킨 사람이다.

또한 앨런 튜링과의 여러 번 만남에서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해 여러 얘기를 주고받는다. 섀넌 역시 기계적 지능이 인간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는 아인슈타인이나 괴델을 만났을 것으로 나오지만, 아인슈타인이 관심을 가진 젊은이는 아니었다.

현재 컴퓨터의 기본 구조를 제시한 존 폰 노이만, 사이버네틱스를 제시한 노버트 위너 역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컴퓨터 사이언스의 개척자들이 다 등장하는 책이다.

위너는 그가 공부한 MIT의 교수였지만 나중에 정보 이론에서는 은근한 경쟁자로 그리고 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나온다. 대중적 인기를 즐겼던 노버트 위너에 비해 대중의 주목을 부담스러워하고, 사교적이지 않았던 섀넌과는 가까워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석사 논문에서 이미 부울 대수를 통해 스위치 회로 (지금으로 말하면 디지털 시스템)을 제시했다.(이 얘기는 이번 책에서 처음 알게 된 것인데) 여러 글에서는 이 석사 논문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석사 논문이라고 칭송했다.

그는 테세우스라는 로봇 쥐와 체스 기계를 만드는 등 뭔가에 흥미를 가지면 닥치는 대로 집에서 만들었던 땜장이 이기도 했고, 클라리넷을 즐기고 재즈를 좋아하며, 저글링을 하고, 외발자전거를 즐겨 탄 사람이다.

그가 말하는 천재의 조건은 재능, 훈련, 호기심, 짜증, 즐거움이라는 데, ‘사물이 완벽해 보이지 않아 약간 짜증스러운 상태’를 건설적인 불만족이라고 말했다는 점이 참 재미있다.

우리가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를 기억하지만 그들은 기술 이론에 기여하지 않은 사업가였을 뿐이고, 현재의 디지털 기술과 정보 이론의 시작은 바로 클로드 섀넌에서 비롯되었음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책이다.

그가 관심 가졌던 많은 문제들이 그저 풀고 싶은 호기심과 재미에서 접근했다는 점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는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만든다.

이 책에서 아쉬운 부분은 저널리스트의 한계로 이론에 대한 설명이 매우 피상적이었다는 점(사실 그래서 더 이해하기 어려워진 면이 있다), 그리고 그의 이론이 향후 정보 기술과 산업에서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좀 더 설명했으면 하는 점이다.

주로 그의 젊은 시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후 정보 이론이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지미 소니, 로브 굿맨 지음/ 곰출판 / 22000원/ 4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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