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충무공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를 보면 선조에 대한 원망과 비판이 없다. 임금을 비판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복무하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 없어서다."

화장품 제조사인 한국콜마의 윤동한 회장은 지난달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순신을 정신적으로 사숙하고 있음을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투를 앞두고도 선조나 임금을 탓하지 않으면서 부하들의 충성을 받아낸 이순신의 '경영자적 자세'를 닮고 싶어 했다. 대통령과 여성을 향한 비하를 공개적으로 옹호한 윤 회장을 두고 이순신 전문가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이때문이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직원 700명에 '극보수 유튜브 영상' 틀고 맞장구친 윤동한 회장

최근 윤 회장이 월례조회에서 비속어가 난무한 보수 유튜버의 영상을 재생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공분을 사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윤 회장은 지난 7일 세종시 본사와 서울 내곡동 신사옥 직원 700여명을 대상으로 월례조회를 가졌다. 직원이라면 다달이 의무적으로 이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

(이미지=유튜브 계정 '리섭TV' 캡처)
(이미지=유튜브 계정 '리섭TV' 캡처)

윤 회장은 일본의 수출 제재에 직면한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며 보수 유튜버인 리섭TV의 영상을 전 직원에게 보여줬다. 해당 영상에서 유튜버 리섭은 "아베가 문재인에게 한글로 글씨를 쓴 케이크를 선물했는데 문재인은 단 것을 안 먹는다면서 면전에서 거부를 했다"며 "그래놓고 김정은하고는 케이크를 또 잘만 처먹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아베가 문재인의 면상을 주먹으로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나 대단한 지도자임에 틀림 없다"며 비속어를 섞어 문 정부의 체면을 깎아 내렸다.

여성을 극단적으로 비하하는 표현도 나온다. 리섭은 "베네수엘라의 여자들은 단돈 7달러에 몸을 팔고 있다"며 "이제 곧 우리나라도 그 꼴이 날 것"이라고 했다.

의도와 상관 없이 영상을 시청하게 된 직원들은 정례 행사가 끝난 뒤 익명 게시판을 통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직원들은 "회장은 보여준 영상에 동조하면서 각자 생각해보란 말을 남겼다" "개인의 정치성향이 다 다른데 회사 차원에서 편향된 이념을 전달하는 게 말이 되냐" "연구와 사무직 직원들 모아 놓고 생산직 사람들의 교양 수준을 공개적으로 저하한 발언도 실망스러웠다" 등의 글을 남겼다.

윤 회장의 발언이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리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비난을 받자 이날 오전 한국콜마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회사는 "영상을 보여준 취지는 감정적으로 현혹되지 않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해 상황을 직관하자는 것이었다"면서 "여성에 대한 부적절한 사례 언급은 전무했다"고 밝혔다.

(이미지=픽사베이)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이미지=픽사베이)

이순신 연구가들 "윤 회장, 충무공 정신 논하지 말라"

지난 7월 윤 회장은 '80세 현역 정걸 장군'을 출간했다. 이순신 장군 곁에서 전술과 관련한 조언을 하며 조력자를 자처하던 정걸의 삶을 회상하고자 쓴 글이다. 지난 2017년엔 뜻을 같이 한 기업인들과 사재를 동원해 '사단법인 서울여해재단'을 세우고 이순신과 관련한 갖은 행사를 열고 있다. 서울여해재단에선 지난 5월부터 문집 '이충무공전서'의 오역 정정과 교열에 착수해 오는 2022년까지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간의 집필과 공헌 활동은 이순신에 대한 윤 회장의 애정을 반영한다.

다만 학계의 이순신 연구가들은 윤 회장이 이순신과 함께 거론되는 데 대해 거북함을 표시하고 있다. 그가 충성심과 민심을 모두 포용한 이순신과 반대되는 행실을 보였기 때문이다.

책 난중일기의 역자인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는 디지털투데이에 "이순신은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실현 가능한 개혁을 했으며 사람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라면서 "이순신 정신을 역설하는 이들은 많으나 막상 진정한 강대국의 도약을 이끌 만한 재계 지도층은 전무하단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밝혔다. 

정병웅 순천향대 관광경영학회장(전 이순신연구소장)도 "이순신 정신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견강부회하는 이들이 많다"며 "윤 회장의 발언과 행동은 이순신을 욕되고 부끄럽게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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