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일몰된 이후, 일부 시장 왜곡 현상이 발생했지만 정부 차원에서 논의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유료방송 합산규제에 대한 연구반을 운영했다. 임재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수석 전문위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합산규제에 도입에 대해 여러 사항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 6월 합산규제 일몰 후, 이에 대한 모든 논의는 국회에 맡겨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최근 이뤄지고 있는 KT의 딜라이브 인수합병 추진 때문이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 LG유플러스는 CJ헬로 인수를 추진 중이고, 최근 KT계열은 딜라이브 인수를 판단하기 위해 기업 실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합산규제 일몰 전에는 LG유플러스와는 달리 KT 또는 KT스카이라이프는 케이블 사업자의 인수합병이 불가능했다. 결국 합산규제가 일몰되면서 KT계열은 CJ헬로나 딜라이브등 다른 케이블TV 사업자의 인수가 가능한 상황이지만, 다시 합산규제 법안이 통과된다면 다시 KT계열은 다른 기업의 인수합병이 불가능하게 된다. 

지난 달 26일 국회에서 열렸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기정통부 대상 국정감사에서 박선숙 의원은 “지난 6월 27일 이후로 합산규제가 일몰됐고, 유료방송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 휴대폰 및 IPTV 보조금이 100만원 가까이 올라가고 있고, 4000원대 상품이 나오는 등 요금덤핑이 이뤄지고 있다”며 “KT와 KT스카이라이프가 시장을 확대하고 SO(유선방송사업자)까지 인수하려는데, 유료방송 합병 문제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LG유플러스와 CJ헬로 인수합병 설이 나오면서 통신-방송 융합이 주목 받고 있다. KT(스카이라이프) 등과 연계된 합산규제 일몰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된다.
LG유플러스와 CJ헬로 인수합병 설이 나오면서 통신-방송 융합이 주목 받고 있다. KT(스카이라이프) 등과 연계된 합산규제 일몰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된다.

합산규제, 정부 차원 논의는 '그만'  

유료방송 합산규제란 케이블TV와 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시장에서 특정기업계열(예, KT+KT스카이라이프) 가입자 점유율이 전체의 3분의 1(33.33%)를 넘지 못하도록 한 것을 말한다. 2015년 6월 합산 규제가 시행될 때 3년 일몰을 조건으로 만들어졌고, 올해 상반기 일몰을 앞두고 합산규제를 연장할 지 폐지할 지 논의가 진행돼야 했지만 이뤄지지 못한 채 일몰됐다. 

박 의원의 지적에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합산규제가 일몰로 일단락이 돼서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런 상황까지 올 정도로 시장 왜곡이 빨리될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원기 과기정통부 제2차관 역시 “유료방송 시장 상황을 파악해보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 방송산업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유영민 장관이 과기정통부 종합감사에서 발언한 내용은 과도한 경품 및 보조금 제공 등 혼탁한 시장상황에 대한 의원의 지적에 대해 경품 등에 의해 시장이 왜곡돼서는 안 되며, 시장상황을 서둘러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이라며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법률 개정사항으로 국회에서 심도있는 논의를 거쳐 결정될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임재주 과방위 수석 전문위원은 방송법,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 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지난 9월, 낸 적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통신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합산규제 재도입에 대해 신중한 검토를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임재주 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과기정통부는 유료방송 시장의 공정경쟁 환경조성 등을 위해 합산규제가 필수적인지에 대해 이해 관계자간 이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합산규제 재도입 여부는 유료방송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 이용자 편익, 해외규제 사례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합산규제 도입을 신중히 검토하자는 것은 우회적으로 합산규제를 하지 말자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국회 법안소위 등에서 법안이 통과될 때 정부의 의견이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합산규제 재도입에 대해 정부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고, 이에 대한 논의를 정부차원에서 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이것은 합산규제 재도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현재 KT, 케이블TV 1위 사업자인 CJ헬로 M&A도 가능...합산규제 다시 도입되면 케이블TV 인수합병 불가능  

합산규제 법안이 일몰되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KT와 KT스카이라이프의 규제가 풀려 다른 케이블 TV 사업자의 인수합병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KT의 유료방송점유율은 20.21%, KT스카이라이프는 10.33%이다. 두 회사의 점유율을 합산할 경우 30.54%다. 2위인 SK브로드밴드의 점유율이 13.65%이기 때문에 유료방송업계 1위인 KT그룹과의 차이는 16.89%포인트다. KT계열은 유료방송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 지배적 사업자다.

합산규제 일몰 전에는 KT와 KT스카이라이프는 다른 회사를 인수 합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가입자 유치 마케팅을 할 때도 제약이 생겼다. 합산 규제안이 지난 6월에 일몰되면서 KT와 KT스카이라이프는 각각 독립적으로 규제 제한(1/3)을 받기 때문에 인수합병에 여유가 생겼다. KT가 만약 케이블 1위 사업자인 CJ헬로를 인수한다고 가정할 경우에도 두 회사의 점유율을 더하면 33.31%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유료방송 가입자와 시장점유율은 작년 하반기 기준이다. 과기정통부는 올해의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KT가 IPTV 1위 사업자이고 CJ헬로 역시 케이블 TV 1위 사업자인 것을 고려해보면 두 회사는 각각 시장 점유율이 더 높아졌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KT가 CJ헬로 인수합병을 추진한다고 가정했을 때 두 회사의 시장 점유율 합산 수치가 33.33%를 넘었어도 KT가 CJ헬로를 인수합병하는 것은 가능하다. 유료 방송 시장 규제(1/3)의 경우 IPTV와 케이블TV 영역이 각각 별도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KT가 CJ헬로를 인수합병할 경우는 IPTV 업체가 케이블TV를 인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종간 결합이 인정돼 시장 점유율이 33.33%를 넘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KT가 LG유플러스 등 다른 IPTV 사업자를 인수해 규제 제한인 33.33%를 넘길 경우에는 동종간 결합이라 인수합병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KT를 포함한 IPTV를 서비스하는 통신사업자들의 경우 다른 통신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낮고, 케이블 TV를 인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합산 규제 일몰 후 현재의 유료 방송 시장 규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합산규제가 논의를 거쳐 다시 도입될 경우 KT나 KT스카이라이프는 딜라이브 등 다른 케이블TV 사업자를 인수하지 못한다. 

KT의 케이블TV 인수..."LG유플러스-CJ헬로 인수 확정되면 나설 것"

LG유플러스와 달리 KT가 케이블TV 인수에 먼저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낮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2016년 SK텔레콤이 CJ헬로를 인수해서 SK브로드밴드와 합병하는 안을 추진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당시 공정위는 유료방송 시장에서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의 결합 시 CJ헬로의 23개 방송구역 중 21개 방송 구역별에서 점유율 합계가 1위가 나온다며 경쟁 제한 효과를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분석했다.

공정위가 일종의 판례를 남긴 상태인데, 이후 어떠한 변화가 없는 현 시점에서 무선 시장 1위인 SK텔레콤이나 유선 시장 1위인 KT가 케이블 TV 인수합병을 시도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KT는 유료 방송 시장 1위 업체이고, SK텔레콤의 경우 무선 시장 지배적 사업자이기 때문에 결합 상품 등을 통해 지배력 전이가 우려될 수 있다. 이에 따라 LG유플러스가 주(LG)의 승인을 거쳐 CJ헬로 인수를 확정할 경우 KT가 딜라이브 등 다른 케이블TV업체의 인수를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공정위가 일종의 판례를 내렸고, 어떤 상황의 변화가 없는 이상 이것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3위 업체인 LG유플러스와 달리 SK텔레콤이나 KT가 인수합병을 먼저 추진하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LG유플러스의 케이블TV 인수가 성공할 경우 두 회사는 본격적으로 인수 추진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 업계 관계자는 “KT가 실사를 통해 파악한 딜라이브의 인수가가 약 1조원 수준인데, 현재 KT나 KT스카이라이프 모두 자금 상황이 좋지 않아, 이 금액으로 인수할 형편이 못된다”며 “만약 KT가 딜라이브 인수에 나설 경우 KT의 주가가 바로 떨어질 것이다. KT가 실사를 마쳤다고 해서 바로 인수합병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수가 추진된다면) KT스카이라이프보다는 KT와 합병하는 것이 그나마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료=과기정통부
자료=과기정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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