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버 파워 모듈 내 MLCC 탑재. 서버 전력 소비량이 높아질수록 고온을 감당할 수 있는 MLCC가 요구된다. [사진: 삼성전기]
AI 서버 파워 모듈 내 MLCC 탑재. 서버 전력 소비량이 높아질수록 고온을 감당할 수 있는 MLCC가 요구된다. [사진: 삼성전기]

[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AI 수요 폭증이 만든 새로운 병목 현상이 데이터센터와 메모리를 넘어 전자부품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HBM에 이어 MLCC와 FC-BGA 같은 핵심 부품에서 공급 부족 조짐이 나타나면서 글로벌 공급망에 새로운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AI 칩의 크기가 커지고 고성능화되면서 이를 메인보드와 연결하는 고성능 반도체 패키지 기판이 새로운 공급 병목 지점으로 부상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이비덴은 AI 서버용 반도체 기판 수요 폭증에 대응해 2027년까지 생산능력을 2024년 대비 2.5배로 늘린다고 전했다. 이비덴 사장은 "2026년 3월기 생성형 AI 서버용 수요가 전기 대비 2배 가까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3거점 5공장 체제로 확대하는 대규모 투자를 집행 중이다.

일본 부품업계는 AI 수요 급증을 성장 기회로 인식하면서도 공급 능력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AI 반도체와 칩렛 기술 확산으로 고성능 프로브 카드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들 기업의 생산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전자 부품 제조기업인 TDK 등 전력 모듈 제조업체들도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화와 엣지 AI용 센서 수요 증가로 생산 확대를 서두르고 있지만 설비 투자와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부품 공급난이 가시화되고 있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GB200/GB300 NVL72 같은 랙 스케일 구성으로 인해 MLCC 사용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승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랙 스케일 구성은 랙 내부에 다수의 보드와 복수의 전력 변환 계층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기존 AI 서버랙 대비 MLCC 사용량이 의미 있게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GB200/GB300 NVL72 랙의 총 전력 소비량이 최대 120kW에 달하면서 초고전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렇게 높은 전력을 랙 전체에 공급하고 개별 고성능 칩에 정밀하게 분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단계의 전압 변환이 필요하다. 각 변환 단계마다 노이즈를 제거하고 전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MLCC가 대량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FC-BGA 시장 역시 급성장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내년부터 랙 스케일 제품에 FC-BGA를 공급할 예정이며 고부가 FC-BGA 비중 확대를 통해 연 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버용 FC-BGA는 일반 PC용보다 면적 4배, 층수 2배 이상으로 단가가 높다. 서버 시장이 2029년까지 연평균 1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속적인 매출 확대가 가능할 전망이다.

국내 부품업체들은 AI 특수를 본격적으로 누리기 시작했지만 생산능력 확대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삼성전기와 같은 국내 주요 부품업체들이 AI 서버향 제품 공급을 늘리고 있지만 이미 가동률이 풀가동 수준에 도달해 추가 증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랙스케일 레퍼런스 시스템 ‘헬리오스' [사진: AMD]
랙스케일 레퍼런스 시스템 ‘헬리오스' [사진: AMD]

◆AI 칩 고성능화로 부품 수요 폭발...글로벌 공급망 압박 심화

이같은 부품 공급 부족 전망은 데이터센터와 관련된 전력·통신장비 가격이 오른 이후 메모리 반도체 공급난에 이어진 연장선이다. 유진투자증권은 산업 격변기에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내년부터 본격화될 AI 서버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수적이지만 투자 리스크와 인력 확보 문제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한국 반도체 두 업체가 코스피 상승의 44%를 기여할 정도로 AI 관련 수요가 집중되고 있으며 이는 공급 부족 상황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장기적인 공급 병목의 지속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AI 인프라 구축에 첫 1조달러가 투자될 경우 막대한 GDP 성장을 이끌 수 있지만 동시에 구리, 알루미늄 등 원자재의 전략적 비축이 필요할 것으로 분석됐다. AI발 수요가 반도체와 전자부품을 넘어 핵심 산업 원자재 시장까지 영향을 미치며 장기적인 공급 병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양승수 연구원은 "내년부터 엔비디아 외에 AWS, AMD 등 주요 AI 가속기 업체들의 서버랙 구성 역시 랙 스케일 구조로 전환될 예정이어서 AI 기반 MLCC 수요 증가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라며 "이미 가동률이 풀가동 수준에 근접해 있는 만큼 내년에는 AI용 MLCC가 공급 부족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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