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쇼핑 [사진: 셔터스톡]
AI 쇼핑 [사진: 셔터스톡]

[디지털투데이 손슬기 기자]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쇼핑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제 일일히 쇼핑몰을 찾지 않아도 된다. 검색도 필요 없다. '언제 어디서나' AI가 각종 플랫폼을 누비며 필요할 만한 물건을 알아서 추천해 준다. 일명 '발견형 쇼핑'의 시대다.

발견형 쇼핑을 온라인에서 구현하는 것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발견형 쇼핑은 본래 백화점, 마트 등 오프라인 상점에서 전략적으로 매대를 구성해 구매를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와인 코너 옆에 치즈 코너를 놓거나, 계산대 옆에 껌을 놓는 식이다. 

웹 초기에는 인터넷 망을 비롯한 인터넷 쇼핑에 필요한 자원의 가격이 전체적으로 비쌌다. 때문에 이를 아끼는데 최적화된 검색 기반의 목적형 구매가 성행했다. 검색 결과의 정확성이 중요했고 얼마나 더 경쟁시켜 싼 값에 물건을 제공하느냐가 화두였다. 소비자도 여기에 반응해 시장이 성장했다.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에만 연간 200조원이 넘는 돈이 흐른다.

그러던 온라인 쇼핑의 추세가 최근들어 바뀌었다. 검색 과정이 크게 축소하고 그 자리를 플랫폼이나 AI의 추천이 메우고 있다. 국내 업계에서 AI 추천, 개인화 추천 등을 발견형 쇼핑으로 포장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과거에는 단순 광고 수준에 지나지 않던 추천 기능이 초개인화라는 이름으로 소비자 삶 곳곳에 침투했다. 플랫폼과 이용자간 상호작용이 활발해진 덕에 공급자 관점에서 추천과 수급자 관점에서 발견이 딱 떨어지는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실제 이런 초개인화 마케팅은 업계 추세다. 공정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이커머스 시장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40개 브랜드 중 35곳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인화된 상품 추천, 광고상품 개발, 마케팅 전략 수립 등을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87.5%에 해당하는 수치다. 

당근(왼)과 지그재그의 홈화면. 당근은 AI가 추천한 상품이 지그재그는 유튜버 '라뮤끄'의 추천 상품이 전면에 뜬다 [사진: 각사 앱 갈무리]
당근(왼)과 지그재그의 홈화면. 당근은 AI가 추천한 상품이 지그재그는 유튜버 '라뮤끄'의 추천 상품이 전면에 뜬다 [사진: 각사 앱 갈무리]

◆검색 축소하고 라방 키우는 이유?...핵심은 발견 강화

검색의 축소는 앱 홈화면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중고거래 앱 당근의 경우 홈화면에 검색창이 아예 없다. 우측 상단에 돋보기 아이콘을 눌러야 검색이 활성화된다. 홈화면에서 이용자 조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검색이 중요도에 있어 후순위 서비스라는 의미다. 검색 대신 당근은 앱 접속과 동시에 관심 키워드를 기반으로 한 추천 상품들을 보여준다. 사용자 입장에서 쇼핑 몰입도가 높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당근의 중고거래 특성상 완벽히 똑같은 상품은 잘 없어 매번 새상품을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쿠팡도 개인화 추천 상품들을 홈화면에 전면 배치했다. 쿠팡 앱의 경우 디자인은 투박해도 이용자별로 시간대에 맞춰 몇가지 기능을 강조하는 고도화된 개인화 기능을 갖췄다. 기본적인 정렬은 고객이 구매할 확률이 높은 순서대로 상품을 추천하는 것이다. 최상단은 장바구니 상품 등 1~2개는 바로 살 법한 그룹이다. 이후 순서대로 빈번하게 구매하는 상품, 구매 빈도는 낮지만 구매할 때가 된 상품, 관심 상품의 연관 상품 등의 추천이 이어진다.

라이브스트리밍은 조금 더 적극적인 추천 방식이다. AI가 아닌 사람이 상품을 소개할 뿐 뒷단에서 상품이 고객에게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과정에 AI가 숨어있다. 영상이 실시간이냐 녹화본이냐에 따라 각각 라이브커머스, 콘텐츠커머스로 나뉜다. 

특히 기업들은 라방에서 추천한 상품을 간편하게 구매로 연결하는 기능에 집중하고 있다. 라방 메뉴를 앱 홈화면에 전면 배치하는 것이 최근 업계 추세다. 컬리, 무신사, 지그재그 등은 앱 홈화면에 라이브스트리밍 팝업을 띄운다. 올리브영, 지마켓, 11번가 등도 라이브 메뉴가 홈화면 상단에 비중있게 들어간다. 홈쇼핑에서 쌓은 구력으로 관련 시장을 선도 중인 CJ온스타일은 앱 홈화면이 온통 라방이다. 라방 옆에 라방이 팝업으로 나오는 식이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는 새로운 발견을 통해 탐색 기능을 확대했다 [사진: 네이버+ 스토어 앱 갈무리]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는 새로운 발견을 통해 탐색 기능을 확대했다 [사진: 네이버+ 스토어 앱 갈무리] 

검색 기업 네이버도 최근 쇼핑앱을 출시하며 검색이 아닌 발견과 탐색을 강조했다. 고객 추세에 반응한 결과겠으나, AI에이전트의 위협에 대응한 것이란 현실적인 추론이 나온다. 앞서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한 단계 더 고도화된 AI 기술을 적용한 초개인화 커머스의 시작"이라고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를 소개한 바 있다. 

네이버가 구상하는 AI 쇼핑 서비스는 일종의 관심법(독심술)이다. 내 마음을 이해하는 쇼핑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용자 관심을 끌 만한 쇼핑 피드를 끊임 없이 공급하겠다는 것. 지금의 네이버를 만든 '콘텐츠 공급자'의 마인드를 가져온 것이 특징이다.

최재호 네이버 발견/탐색 프로덕트 부문장은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사용자들 관심사라는게 굉장히 자주 바뀌는 걸 실제로 보고 있다"며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탐색하고 발견할 수 있도록 끊임 없이 피드를 제공하는 것을 통해 숨은 니즈까지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앤드류 제시 아마존 CEO [사진: 아마존] 
앤드류 제시 아마존 CEO [사진: 아마존] 

◆트렌드 리더 아마존, 발견형 쇼핑 전진배치·AI에이전트 투자↑

아마존도 최근 발견형 쇼핑 기능을 연이어 출시했다. 아마존이 집중하는 분야는 AI가 불러올 고객경험 변화다. 특히 AI에이전트가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도 영향이 크다.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들 AI 기능 상당수가 아마존의 AI 플랫폼 베드록 기반이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기술에서 만큼은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아마존이니 국내 기업들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다.

작년 10월 아마존은 'AI 쇼핑 가이드'라는 새 AI 쇼핑 기능을 출시했다. 아마존 측은 "생성형AI로 구매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이라고 설명했는데, 여기엔 발견형 쇼핑을 위한 수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먼저 아마존은 구매자와 충분한 상호작용을 통해 사이즈, 물건을 놓을 공간, 취향 등 개인적인 정보를 모아야 한다. 이를 수억개의 아마존 내 상품 정보들과 맞춰보고 고객이 원할 때 즉각 안성맞춤인 상품을 추려내면 된다. 문제는 이용자 정보와 상품 정보간 괴리다. '배는 고프지만 뭘 먹고 싶은지 모르겠어'와 같은 모순 상황이 쇼핑의 세계에선 수도 없이 발생한다. 만약 '테이블'을 검색한다면, AI 가이드는 '45세 켈리는 남편과 10대 남아 둘과 사는 4인가구원이니 지름 160cm 이상 180cm 이하, 높이는 75~80cm의 사각식탁만, 미국 서부에 거주하니 습기엔 취약해도 무늬가 아름다운 월넛목으로. 색상은 흰색이 좋겠네'라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아마존의 AI 쇼핑 가이드 [사진: 아마존]
아마존의 AI 쇼핑 가이드 [사진: 아마존]

이외에도 올해 들어서만 아마존은 수억개의 아마존 제품 카탈로그, 고객 리뷰와 Q&A 등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쇼핑 맞춤 AI인 △루퍼스, 취향 기반 실시간·신상품 자동 추천 기능 △인터레스트 등 AI 쇼핑 편의 기능들을 선보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머지 않아 국내 플랫폼에 최적화한 모습으로 도입을 시작할 것이다.

AI에이전트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는 모습이다. 앤드류 제시 아마존 CEO는 최근 주주서한에서 "생성형AI는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고객경험을 혁신할 것이다"라며 AI에이전트에 대한 투자를 촉구했다. 긴 내용의 서한이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AI 에이전트는 더 빠르고 똑똑하게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야만 하고 도태되면 끝이니 장기수익을 위해 투자할게'라는 것. 최근 아마존이 출시한 AI 에이전트 노바 액트를 염두한 것이겠지만, 경쟁 AI 에이전트가 없는 상황이라면 굳이 투자할 필요도 없다.

이해를 위해 아마존이 처한 미국 시장 상황을 살펴보자. 미국 온라인 쇼핑 시장은 40%의 아마존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들이 한자릿수 점유율을 보이는 사실상 독점 형태다. 대다수가 1%대 점유이고 3%를 넘는 곳도 월마트, 애플, 이베이 정도 뿐이다. 월마트는 오프라인 매장과 연계성이 짙고 애플, 이베이는 니치마켓에 가깝다. 즉 웬만한 미국인들은 '온라인 쇼핑해야지'하면 아마존에 접속을 한다는 것이다. 근데 이제는 '챗GPT에 검색한다'는 옵션이 생겨 버렸다.

이런 아마존이니 고객이 다른 플랫폼으로 눈을 돌리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간 아마존이 다진 '대다수 상품에서 합리적인 가격과 편리한 쇼핑'의 입지를 AI 에이전트는 '이 상품 만은 아마존 보다 더 싼 곳을 매우 편리하게' 안내함으로써 앗아갈 수 있다.

미국 내 AI에이전트를 통한 산업별 플랫폼 트래픽 변화율. 작년 7월을 기점으로 여행, 소매유통, 금융 분야에서 AI의 답변 링크를 통한 트래픽이 폭증했다 [사진: 어도비]
미국 내 AI에이전트를 통한 산업별 플랫폼 트래픽 변화율. 작년 7월을 기점으로 여행, 소매유통, 금융 분야에서 AI의 답변 링크를 통한 트래픽이 폭증했다 [사진: 어도비]

◆AI에이전트, 위기일까 기회일까?

실제 AI에이전트를 통해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늘어나는 추세다. 어도비가 지난 3월 공개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11~12월 AI를 출처로 미국 쇼핑몰로 유입된 트래픽은 전년 대비 1300%가 늘었고 사이버먼데이에는 1950%까지 폭증했다. 

해당 보고서에서 어도비는 5000명의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했는데, 응답자의 39%는 생성형AI를 온라인 쇼핑에 써봤다고 답했다. 또 이들 중 92%는 AI가 구매경험을 향상시켰다고 답했고 87%는 더 크고 복잡한 구매에 AI를 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즉, 큰 맘 먹고 사야하는 고가의 상품일 수록 AI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마존에서 10달러 짜리 선크림을 50개 사봤자, 2000달러 짜리 TV사는 데 챗GPT를 써버리면 이커머스 입장에선 수익을 보증할 수 없어진다.

AI의 발전이 쇼핑 시장을 얼마나 바꿀까. 예단은 이르지만 진화 보다는 혁명에 가까울 것이다. 구매자의 선택을 예측하는 것이 시장을 지배하는 키가 될 수 있다. 발빠른 이들은 이미 첫발을 뗏다. 완주까지 관전 포인트가 여럿이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