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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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투데이 강진규 기자] 수많은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는 보이스피싱이 인간 내면의 취약점을 파고드는 심리 범죄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에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인공지능(AI) 상담사를 활용해 심리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2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검찰청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 의뢰해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심리분석을 통한 피해 예방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기 위해 검찰, 경찰 수사기관들과 금융감독원, 은행 등이 총력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2024년 금융감독원이 발표에 따르면 2023년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965억원으로 전년도 피해액인 1451억원보다 514억원(35.4%) 증가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수는 2022년 1만2816명에서 2023년 1만1503명으로 전년 대비 10.2% 감소했지만 피해자 1인당 피해액은 2022년도에 1130만원에서 2023년 1710만원으로 증가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최종보고서에서 “보이스피싱은 현대 사회의 대표적 신종 금융사기이자, 심리 조작을 핵심으로 삼는 범죄 유형이다”며 “겉보기에는 단순히 전화나 메시지로 상대를 협박·유혹해 금전을 갈취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정교한 심리적, 환경적 기제를 동원해 피해자가 이성적 판단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보이스피싱 과정에서 ‘주의 집중의 왜곡(Attentional distortion)’ 현상이 일어나는데 강렬한 욕구 상태에서는 특정 보상(금전, 안전, 사랑 등) 혹은 공포를 유발하는 대상에만 주의가 집중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에서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피해자는 순간적으로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돼 다른 정보를 배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통제 불능(out of control)’ 감각이 커지는데 사람이 극단적 공포, 탐욕 등에 사로잡히면 상황을 통제하기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가령 “빨리 계좌이체를 하지 않으면 체포될 것이다”라는 식의 압박을 받으면 피해자는 더 이상 선택권이 없다고 여기고 순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보이스피싱에서는 사기범이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긴급 제안을 빙자하는 방식으로,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기법이 흔히 목격된다고 지적했다.

이때 자기통제가 낮거나 충동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감정적 판단에 치우쳐 합리적 의심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은 심리적 조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유형에 따라 방식도 다르다고 한다. 검사 사칭 유형은 '검사'라는 단일 권위를 강조하는 반면 금융기관 사칭 유형에서는 '저희'라는 용어를 통해 좀 더 부드럽게 화자의 신뢰성을 부각시키는 전략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검사를 사칭하는 범죄자는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로 피해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권위적인 태도가 피해자의 순응적인 태도를 쉽게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이다.

연구진은 “보이스피싱 피해에는 보통 네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며 “첫 번째는 공포, 희소성, 권위, 호감과 유사성, 사회적 증거 등 인간의 자동화된 심리 반응을 자극하는 심리적 트리거다. 두 번째는 각 개인이 가진 성향이나 배경, 세 번째는 사기 취약성을 높이는 온라인·오프라인 행동 습관, 네 번째는 외로움이나 특정 생애사건 같은 생활환경이다”라고 소개했다.

연구진은 결론에서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보이스피싱에 대한 단순한 형태의 예방 대책이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범죄자에게 심리적으로 조작을 당하면 인출이나 송금의 마지막 단계에서 피해자 자신에게 이 단계만 넘기면 큰 이익(대출의 실현, 범죄와의 연루 종료)이 실현된다는 기대 심리가 커진 상황이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짧은 안내만으로 보이스피싱을 막기에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연구진은 새로운 대책을 제시했다. 개인이 보이스피싱 위험 현혹될 수 있는 심리적 요인이 있는지 스스로 참여해 확인할 수 있는 지표와 도구를 개발하고 금융권이 이에 맞춰 상담과 개입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금융기관, 은행 등의 AI 금융 상담사가 고객 상담을 통해 개인의 위험 요인을 파악해 맞춤형으로 경각심을 주고 위험성이 높은 경우 금융기관 직원에게 통보해 직원들이 피해를 막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연구진은 보이스피싱에 대한 홍보 역시 전통적이고 단순한 일괄적 방식 대신 잠재적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이스피싱이 심리 조작 범죄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폭력 피해 만큼이나 정신적 외상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검찰청은 앞으로 보이스피싱 대책을 마련하는데 이번 연구 결과를 참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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