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케이블TV(SO) 업계와 홈쇼핑 업계가 송출수수료 협상을 두고 갈등을 빚는 가운데, 블랙아웃(방송 송출 중단 사태) 가능성이 커지면서 결국 정부가 나섰다. 홈쇼핑사업자와 SO 등 유료방송사업자간 계약 공정성을 살피는 대가검증협의체가 처음으로 운영된다. 가이드라인에 ‘홈쇼핑 송출료 대가검증 협의체’ 운영 근거를 마련한 2020년 이후 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협의체가 중재에 나서도 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가검증 협의체는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와 대가산정 고려요소 값을 검증하는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송출 대가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산식에 적용된 데이터 정확성만 검증한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마련된 가이드라인 개정안은 나올 때부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르면 다음 주 중 대가검증협의체를 열어 홈쇼핑과 유료방송사 간 수수료 협상에 대한 객관적 검증에 나선다. NS홈쇼핑과 롯데홈쇼핑이 첫 대상으로 NS홈쇼핑은 지난 주 과기정통부에게 LG유플러스와 계약 갈등 중재를 위한 대가검증협의체 구성을 요청했다. 사업자가 협의체 구성을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확인됐다. 

롯데홈쇼핑은 딜라이브 강남 케이블TV에 10월 1일부터 방송 송출 중단을 고지했다. 롯데홈쇼핑측이 협의 종료 의사를 밝힌 것이기 때문에 가이드라인 개정안에 따라 대가검증협의체는 자동으로 운영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 29일 ‘홈쇼핑 송출수수료 대가검증 협의체 운영지침’을 마련해 홈쇼핑과 유료방송 사업자 및 관련 협회에 배포했다. 대가검증 협의체는 홈쇼핑과 유료방송사간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경우, 양측이 송출수수료 협상 과정에서 가이드라인을 준수 했는지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2021년부터 홈쇼핑 방송채널 사용 계약 가이드라인 개정을 위해 계속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그 과정에서도 홈쇼핑과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의견차이는 심했다. 정부는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마련하는 데만 시간을 1년이 넘게 소비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3월 정부는 겨우 송출수수료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홈쇼핑 방송채널 사용계약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며 대가검증 협의체 운영방안을 제시했다.

가이드라인 개정 전 대가검증 협의체는 사업자 요청이 있거나 과기정통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운영됐지만, 실질적으로 협의체가 운영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에 가이드라이드 개정안에서는 기본 협상 기간(5개월) 종료 후 홈쇼핑사와 유료방송사업자 중 한쪽이 협상 종료 의사를 통보한 경우 자동 운영되도록 내용을 추가했다.

하지만 대가검증 협의체가 중재에 나서도 이번 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시각이 많다. 대가검증 협의체는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와 대가산정 고려요소 값을 검증하는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송출 대가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산식에 적용된 데이터 정확성만 검증한다.

지난 3월 가이드라인 개정안이 나올 때부터 핵심은 빠지고 개정만을 위한 가이드라인, 즉 반쪽 짜리 가이드라인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송출수수료를 둘러싸고 이해관계와 대립이 워낙 첨예하지만 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산정식을 구성하는 고려요소 값은 명확해졌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비율로 산식에 반영할지에 대한 분쟁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정부는 지난 2021년 7월 유료방송 상생협의체 회의 당시 제시한 2단계 협상 계획안을 철회한 바 있다. 원안은 송출수수료 협상 시기를 이원화하고 정부가 구체적 수수료 산정 기준을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1차 협상은 매출 변동률·물가상승률·조정계수만을 고려, 수수료를 산정하고 조정계수를 포함해 계산하고 양측 협상 불발 시 경매 방식의 2차 협상을 진행하는 방안이 제시됐었다. 양측 협상 불발 시 경매 방식의 2차 협상이 진행될 경우 이번 사태가 순조롭게 해결될 수도 있었다. 정부가 원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사태를 키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현재 정부는 서둘러 갈등을 중재시키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정부 역할에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다. 홈쇼핑사와 케이블TV 등 유료방송사 간 송출수수료 갈등은 매년 있었지만 홈쇼핑사들이 자발적으로 케이블TV 채널에서 빠지겠다고 통보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협의체를 운영할 예정인 롯데홈쇼핑과 딜라이브강남 케이블TV 갈등은 방송중지를 예고한 10월 1일까지 약 한 달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이 기간 양측 협상 과정에서 대가산정이 적절히 이뤄졌는지 검토를 넘어 적절한 중재가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업계는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홈쇼핑 업계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시 감소하는 등 실적 악화가 가시화되자, 홈쇼핑사들이 인터넷TV(IPTV)보다는 보다 협상 우위에 있는 케이블TV 대상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2분기 주요 홈쇼핑 4개사(현대·GS·CJ·롯데) 총 영업이익은 560억원으로 전년 동기(1065억원)대비 반토막(47%) 수준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조2238억원에서 1조1278억원으로 7% 정도 줄었다. 반면 송출수수료 부담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송출수수료 규모는 1조9065억원으로, TV홈쇼핑 방송 매출액의 65.7%를 기록했다.

정부는 지난 2020년 CJ ENM과 딜라이브가 프로그램 사용료에 대한 분쟁 갈등을 빚을 때 중재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중재위원회를 통해 CJ ENM이 제안한 인상률을 중재안으로 채택했다. 정부가 특정 인상률을 제시하는 대신, 양사 제안을 놓고 분쟁중재위원회에서 다수결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는 미국 프로야구(메이저리그)에서 연봉조정 때 활용되는 방식이다. 중재위원의 선택을 받을 만한 합리적인 대안을 유도, 당사자 간 의견차를 좁히고 합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당시 과기정통부 측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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