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모습 [사진: 국정원]
국정원 모습 [사진: 국정원]

[디지털투데이 강진규 기자] 국가정보원이 사이버보안을 총괄하도록 하는 내용의 사이버안보법에 대해 시민단체는 물론 유관 정부부처들까지 반대 입장을 속속 나타내고 있다. 사이버보안법은 그동안 수차례 추진됐으나 번번히 좌절된 바 있다. 이번에도 난관에 봉착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 7일 김창룡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특정 부처가 주도권을 갖고 대응하는 체계보다는 각 부처 간 협업이 가능하도록 국무총리실에 사이버안보 의사결정, 집행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기서 특정 부처는 국정원을 지칭한 것으로 경찰청이 국정원을 중심으로 사이버안보 체계를 개편하는 사이버안보법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경찰은 사이버범죄 발생 시 수사, 대응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보안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찰청 뿐 아니라 민간 사이버보안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군 사이버보안을 담당하는 국방부 등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3일 국정원감시네트워크도 국회 정보위원회에 국가사이버안보법 논의를 중단하고 관련 법안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진보네트워크 등으로 시민단체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김병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국가사이버안보법안’과 조태용 의원(국민의힘)이 발의한 ‘사이버안보기본법안'을 모두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례적으로 시민단체와 정부 기관들이 국정원 중심의 사이버안보법안에 함께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국정원 출신의 김병기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가사이버안보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각종 해킹으로 사이버안보 위협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응해 사이버안보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법안은 국정원장 소속으로 사이버안보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으며 국정원이 사이버안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관련 활동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국정원이 사이버안보 위협과 관련해 정보통신기기 운영주체에 필요한 조치를 요구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이에 유관 기관들은 이 법안이 국정원이 사이버보안을 총괄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국회는 김병기 의원의 법안을 앞서 발의된 조태용 의원의 사이버안보기본법안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국회 법안심사소위에 사이버안보법안이 상정돼 논의에 들어갔다.

시민단체와 유관 부처 관계자들은 국정원에 사이버보안 기능이 집중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국정원이 사이버안보를 명분으로 기관, 기업들의 서버, 스토리지 등의 정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국정원이 민간인 사찰 등을 했었던 어두운 과거로 때문에 이런 우려가 나온다. 또 유관 부처에서는 국정원이 정보를 독점하고 권위적으로 힘을 사용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국정원 관계자들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요구하고 독점하면서 유관 기관들과 협조를 하지 않았던 사례가 있었다”며 "때문에 법안이 만들어지면 이런 행태가 더 강화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버안보 체계를 둘러싼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등 과거에도 국정원 등을 중심으로 사이버안보를 강화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당시 유관 부처들이 반대해 무산된 바 있다.

국정원은 과거 사례와 유관 기관 등의 우려를 인식해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12월 사이버안보센터 홈페이지를 개설하며 업무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했다. 또 폐쇄적이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사이버보안 위협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리며 국정원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사이버위협 정보를 유관 기관들과 공유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앞서 경찰청, 시민단체 등의 반발처럼 여전히 국정원을 향한 여론이 냉랭한 상황이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국정원 중심으로 사이버안보를 재편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유관 기관들을 설득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도 국정원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쉽지 않다”며 “과거에 유관 기관들을 설득하지 못해서 실패했던 상황이 또 다시 재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관 기관들과 보안업계 관계자들은 지금이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라는 점도 사이버안보법에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3월 9일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현 정부와 여당이 적극적으로 사이버안보법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야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역할 재정립 등의 논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사이버안보법 추진 여부는 차기 정부의 과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차기 대통령이 국정원 등 권력 기관의 역할을 재정립할 가능성이 크고 또 새로운 국정원장이 부임하면 국정원 운영의 방향성도 바뀔 수 있다”며 변수가 많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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