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투데이 황치규 기자]디지털 결제 스타트업 스트라이프는 최근 950억달러에 달하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가운데 6억달러 규모 추가 투자를 유치했다.
비상장 회사로는 가장 비싼 몸값이다. 1년도 안돼 기업 가치가 3배 가까이 늘었다. 상장 전 페이스북이나 우버가 누렸던 위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스트라이프에 붙은 가격표는 테크 기업들에 대한 과도한 투자 열기 외에 나름 의미 있는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인터넷판의 무게 중심이 광고에서 커머스로 넘어가는 상황 속에 벌어진 현상이라는 얘기다.
파이낸셜타임스의 팀 브래드쇼도 최근 쓴 글에서 스트라이프의 커진 존재감은 이커머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스트라이프의 상승세는 인터넷 경제 근간이 광고에서 커머스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트라이프는 2010년 설립 이후 빈공간으로 남아 있던 웹의 결제 부분을 채워가며 빠르게 성장해왔다. 복잡하고 경직된 결제 시스템을 개혁해 웹에서 단순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웹의 탄생 이후 지금까지 결제를 온라인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표준화된 방법은 없었다. 30년 전 웹을 창시한 팀 버너스리와 동료들은 핵심적인 부분을 미완성으로 남겨놨다. 결제였다.
웹페이지가 찾아지지 않을 때 뜨는 404 메시지처럼, 웹에는 지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402 코드가 있다. 웹브라우저 업체 모질라에 따르면 402 코드는 방문자에게 특정 웹페이지를 보려면 결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고안됐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구현되지는 않았다.
스트라이프 공동 창업자인 패트릭 콜리슨은 이 같은 문제를 주목했다. 몇 년 전 와이어드가 진행한 행사에서 그는 "지속적인 수입을 창출 할 수 있는 핵심적인 중요성을 고려하면 이 부분이 완성되지 않고 개발되지 않은채 있다는 것은 웃기는 것이기도 비극이다"고 말했다.
스트라이프 외에 스퀘어, 애드옌, 페이팔 등과 같은 결제 플랫폼 기업들은 쇼피파이 등과 함께 오리지널 402 에러를 푸는 새로운 온라인 커머스와 결제 인프라를 구현했다.
웹에서 결제 부분이 빠진 데 따른 결과물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주도하는 온라인 광고의 지배력이었다. 인터넷 경제는 광고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지금도 광고가 갖는 힘은 여전하다. 하지만 판이 흔들리는 정황은 여기저기에서 포착되고 있다. 규모로만 놓고 보면 결제와 커머스는 이미 광고보다 훨씬 더 큰 시장이 됐다.
미디어 에이전시인 마그나(Magna)에 따르면 글로벌 광고 지출 규모는 지난해 4% 하락한 5690억달러였다. 물론 온라인 광고 부문은 여전히 상승세다. 지난해 8% 성장했다. 반면 오프라인 광고는 21% 뚝 떨어졌다.
반면 이커머스 시장은 전체 광고 시장의 몇배 수준이다. 시장 조사 업체 이마케터에 따르면 이커머스 시장은 올해 5조달러 규모에 육박할 전망이다. 전세계 이커머스 매출은 지난해 28% 성장했고 전체 소매 시장에서 18%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마진은 적지만 성장세는 광고를 크게 앞선다.
코로나19 상황이 발생하기 전부터 이커머스를 둘러싼 판은 잠재력이 커지고 있었다. 거물급 기업들도 이커머스 겨냥한 행보를 구체화했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업체들도 커머스를 신사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광고로 먹고 사는 세계 최대 SNS 플랫폼 페이스북도 이커머스가 차세대 사업 영역 중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20년 1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회사의 다음 챕터를 위해 가장 집중하는 영역은 개인 간 메시징, 가상현실, 커머스&결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페이스북 매출에서 광고는 여전히 99%를 차지할 만큼 핵심적인 캐시 카우다. 하지만 회사 차원에선 광고를 넘어선 성장 동력 발굴에 적지 않은 실탄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커머스 쪽에서만 보면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 및 다른 앱들에 쇼핑 탭을 추가했고 인도와 브라질에선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 기반 결제 시스템을 테스트해왔다. 힘이 좀 빠진 감도 있지만 하반기에는 디지털 화폐인 디엠(Diem)도 선보인다.
광고 외 다른 사업 영역을 파고 들려는 SNS 기업들이 페이스북만 있는 건 아니다. 트위터도 최근 사용자들이 보너스 콘텐츠에 대해 과금을 할 수 있게 하는 '슈퍼 팔로우'(super follows) 기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틱톡은 이커머스 플랫폼 업체 쇼피파이 등과 제휴를 맺고 쇼핑을 전진배치했다.
사람들이 SNS에서 확보한 팔로우어들에게 판매나 조언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도 큰틀에서 보면 커머스 영역으로 볼 수 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중국에서 개척됐고 트위치나 패트레온 등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대형 플랫폼들도 크리에이터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뉴스레터 플랫폼인 서브스택 등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겨냥한 스타트업들도 10여개 이상 활동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스트라이프는 이같은 흐름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며 성장하고 있다. 쇼피파이, 인스타그램, 카메오, 서브스택 등은 모두 스트라이프가 제공하는 결제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패트릭 콜리슨은 "회사 미션은 인터넷의 GDP를 늘리는 것이다. 이것은 대형 고객을 놓고 경쟁사와 싸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로섬 게임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결제를 보다 쉽고 빠르게 함으로써, 새로운 경제적인 활동을 자극하는데 무게를 두겠다는 것이었다.
결제와 커머스가 광고를 단기간에 대체한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는 보는 이들은 점점 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커머스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회사들의 기본적인 수익화 형태가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인프라는 천천히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