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코로나19가 몰고온 변화 속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실체를 갖춘 패러다임으로 부상했다. [사진: 셔터스톡]

[디지털투데이 황치규 기자]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초유의 변수 속에 올해 기업용 IT 시장은 기존 질서가 빠르게 해체되고 새로운 판이 그 자리를 대신해 '트랜스포메이션'(전환)이 관련 업계를 강타했다.

코로나19가 요구한 변화는 공급 업체와 기업 사용자 모두에게 거부할 수 없고 또 불가역적인 것이었다. 코로나19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은 유연하고 확장성 있는 IT인프라인 클라우드를 빠르게 도입했고 재택 근무를 지원하는 원격 및 협업 서비스도 '뉴노멀'로 받아들였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4차산업혁명 만큼이나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하게 들렸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션은 체감할 수 있고 실체를 갖춘 패러라임으로 부상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던 지난 4월 말 "2년에 해당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2개월 사이에 봤다”는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의 발언은 코로나19가 요구한 변화가 얼마나 격렬했고 숨가쁘게 진행됐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메시지로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됐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속에 기업용 IT판을 둘러싼 업체간 역학 관계도 요동쳤다. 뜨는 해들이 있었으니 지는 해들 또한 있었다.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등 클라우드 퍼스트, 클라우드 네이티브를 표방하는 기업들이 신주류로 급부상한 가운데, 한시대를 풍미한 IBM, HPE 같은 테크 기업들에는 '올드가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출신 성분, 특히 개인용 서비스 시장에서 놀던 회사들이 기업 시장으로 확장하는 흐름도 올해들어 더욱 두드러졌다. 한국서도 SK텔레콤, KT, 카카오, 네이버 등 B2C 이미지가 강한 대기업 들이 기업 IT시장에서 큰소리를 치는 장면이 수시로 연출됐다.

클라우드 퍼스트 넘어 클라우드 네이티브로

클라우드로 대표되는 서비스형 IT 솔루션이 2020년 기업 IT시장을 들었다 놨다 했음을 부정하는 이는 드물다. 클라우드에 의한, 클라우드를 위한 변화가 IT판을 뒤흔들었다.

시장 조사 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은 전년 대비 6.3% 증가해, 2579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는 3049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클라우드가 대세론을 타면서 관련 업계 매출도 빠르게 늘었다.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에서 '빅3'로 통하는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GCP)는 3분기 실적 집계 결과 매출이 각각 전년 대비 29%, 48%, 45% 성장했다.

클라우드 확산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 클라우드 도입에 보수적이었던 대기업들과 금융 기관들이 문호를 확대하기 시작했고 예전부터 클라우드 많이 써온 삼성전자 외에 SK텔레콤, 대한한공, 두산그룹, KB금융 등의 클라우드 전략도 관심을 끌었다. 정부 차원에서도 데이터 경제 활성화 일환으로 공공기관 IT 환경을 클라우드로 전환하는 사업에 속도를 내면서 클라우드는 민간과 공공 모두에서 중요한 인프라 옵션으로 떠올랐다.

가트너는 "유연하고 확장성 있는 클라우드 모델이 제공하는 능력은 비용 효율성과 비즈니스 지속성을 성취하기 위한 조직들이 빠르게 디지털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을 가속화할 수 있는 추진력을 제공하고 있다. 늘어난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 사용은 클라우드 채택이 그 어느때보다 뉴노멀이 되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 팀즈의 투게더 모드는 화상회의의 피로감을 줄일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br>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회상회의 화면. [사진: 마이크로소프트]

화상회의 서비스로 대표되는 원격 및 재택, 협업 지원 서비스들도 클라우드 인프라와 함께 2020년 기업 IT시장에서 확실한 블루칩으로 부상했다. 협업 플랫폼은 올해를 기점으로 기업 업무 환경을 위한 운영체제(OS)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가 11월 자사 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를 기반으로 작성한 '협업 툴 업종 앱 사용자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10월 기준 협업 툴 앱 사용자수(MAU)는 전년 동기 대비 6.3배 늘어난 424만3558명으로 나타났다. 특히 화상회의가 필수 솔루션으로 떠오르면서, 화상회의 기능을 지닌 앱 사용자수가 전년 동기 대비 16배 증가한 378만6265명에 달했다.

사용자수 성장 만큼이나 업체간 경쟁도 뜨거웠다. 줌,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구글 미트 등 글로벌 서비스들 외에 카카오, 네이버, KT 등 국내 대기업들, 알서포트, 마드라스체크 등 국내 전문 기업들까지 대권 레이스에 뛰어들면서 협업 솔루션 시장 판을 달궜다.

달라지는 경쟁 판도, 새로운 DNA 기업들의 부상

클라우드 중심으로의 판갈이 속에 업계 판세가 크게 바뀌었다는 점도 2020년 기업 IT 시장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클라우드로 게임의 법칙이 바뀌니 잘나가는 선수들 세대 교체도 가속화됐다.

플랫폼 측면에선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들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AWS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등 퍼블릭 클라우드 업체들은 IT인프라 시장에서 '트렌드 세터' 역할을 하는 플랫폼으로 위상을 굳혔다. 

전통적인(레거시) IT인프라를 제공해온 업체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클라우드 사업자로 변신에 나섰다. 데이터베이스 최강 오라클은 자체 퍼블릭 클라우드 인프라를 앞세워 AWS와 대결 구도를 만들었고 IBM은 한때 먹거리였던 IT서비스 사업을 매각하면서까지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서버를 팔던 델과 HPE도 올해를 기점으로 클라우드 같은 종량제형 서비스형 IT인프라를 미래 사업으로 전진배치했다.

기업 IT 시장 밖에서 놀던 기업들의 기업 IT시장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이커머스 하는 아마존이 클라우드 사업으로 기업 가치를 크게 끌어올리자 개인 사용자를 상대하던 여러 업체들이 B2B로 영토를 빠르게 확장하는 모습이다. 한국도 마찬가지. 카카오톡 만든 카카오가 AWS까지 겨냥한 클라우드 사업하겠다고 나섰고 네이버는 이미 기업 대상 클라우드 사업을 커머스, 콘텐츠와 함께 차세대 전략 포트롤리오 리스트에 올려놨다. 통신 업체 KT는 기업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시장을 파고들기 위해 KT엔터라이즈라는 브랜드까지 내놨고 SK텔레콤도 기업용 멀티 클라우드 사업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기존 대형 업체들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고성장한 스타트업들의 활약도 눈길을 끌었다.

협업쪽에선 줌이 코로나19발 비대면 업무 확산 속에 사용자 기반을 크게 확대한데 이어100년 기업 IBM을 시가총액에서 앞지르는 기염도 토했다.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분석 서비스인 스노우플레이크는 올해 IPO에서 투자자들로부터 인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클라우드에 최적화된, 이른바 클라우드 네이티브 기업이 갖는 잠재력을 과시했다. 

상대적으로 국내의 경우 기업 IT를 주특기로 하는 스타트업들 활동폭은 미국 만큼 넓지 않지만 넥스클라우드 등 B2B를 주특기로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몇몇 회사들이 최근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질적인 변화 가져와야 뉴노멀 정착

코로나19가 부른 2020년 기업 IT시장의 변화는 내년에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클라우드 중심으로의 판갈이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승기를 굳히기 위한 업체간 샅바싸움도 격렬해질 것으로 보인다.

클라우드 시장은  다양한 회사들의 다양한 클라우드 기술 및 서비스 모델들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기존 IT인프라와 클라우드를 함께 쓸 수 있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를 놓고서도 업체간 노선이 제각각이다. 어떤 모델이 대세가 될지는 현재로선 예측불허. 업체들이 저마다 각자 비전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내년에 어느정도 우열이 가려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퍼블릭 클라우드와 상호 보완적인 엣지 컴퓨팅이 좀더 실체를 드러낼지도 관전포인트다. 엣지컴퓨팅은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기반한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를 보완하는 개념으로 몇년전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스마트팩토리 등 디지털 환경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흐름은 확산되고 있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퍼블릭 클라우드만으로는 이 같은 요구를 맞춰주기 어렵고, 결국은 데이터 발생 지점과 가까운 엣지컴퓨팅 인프라가 해결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관련 업계는 보고 있다.

엣지컴퓨팅 관련 시도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의미 있는 비즈니스 모델로 이어진 사례는 아직 드문 것이 현실. 2021년 엣지컴퓨팅을 둘러싼 디테일이 어느 정도 구체화될지 관련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방물케하는 협업 솔루션 시장에서 업계 재편이 본격화될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글로벌 시장의 경우 세일즈포스가 최근 슬랙을 인수하면서 협업 플랫폼 시장 구조조정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2021년에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클라우드, 데이터 비즈니스, 인공지능(AI)과 맞물리면서 IT가 가져오는 변화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대접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버즈워드 딱지를 확실하게 떼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 양적으로는 판이 꽤 커졌지만 질적으로 의미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루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디지털을 활용해 기업들이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한 경우는 국내에선 아직 드물다는 지적도 많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대형 프로젝트 한방으로 할 수 있는 성격의 일도 아니며 오랜 여정(Journey)이란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어드바이저리 업체를 표방하는 정우진 디지털X 대표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기업들이 클라우드 도입을 포함해 많은 시도를 했지만 기술 도입에 초점이 맞춰졌다. 남들 따라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디지털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단계에 이른 기업들은 많지 않다. 계획은 쏟아지고 있지만 실행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서 "디지털 전환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기업들이 각사 환경에 맞게 현실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맞춤형 디지털 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