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투데이 정유림 기자]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관련 인터넷 사업자에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n번방 방지법’(정보통신망법,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둘러싼 정부와 인터넷 업체들 간 의견이 좁혀질 기미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법안이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관련 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정부는 텔레그램 n번방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물에 칼을 빼들고 20대 국회 내 관련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은 플랫폼이 가지는 영향력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현재 개정안은 사업자에 과도한 의무를 부과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번주 중 열릴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문턱을 넘으면 20일 예정된 본회의에 상정된다.
◆공개된 촬영물에 한해 조치 vs 현재도 관련 조치 중
디지털 성범죄물, 불법 촬영물 등에 대한 정의는 4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 특례법)에 명시됐다. 법안에는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인터넷 업체들도 여기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이를 위해 인터넷 사업자들에 책임을 지우는 것에 초점을 맞춰 정보통신망법,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하려는 것은 과잉 규제라는 입장이다.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을 직접 만든 것도 아니고 이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님에도 촬영물이 유통되고 이를 방치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건 '오버액션'이라는 것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음란물 유통과 관련해 이미 조치를 취하고 있는 만큼, 개정안은 과도한 의무를 사업자들에게 부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이미 검색 필터링(제목에 특정 단어가 들어갈 경우 검색이 불가능하도록 함)을 서비스에 적용했고 모니터링 인력도 별도로 배치해 운영하고 있다. 불법 음란물 여부를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 문의해 결과를 받은 뒤 삭제 등 조치를 취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사업규모 등 고려해 대상 사업자 선정 vs 스타트업·신생 서비스도 예외 없어
주무 부처인 방통위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전기통신역무의 종류, 사업규모 등을 고려해 대상 사업자를 시행령에서 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선 이용자 수, 트래픽 양 등을 기준으로 하면 신생 서비스들이 회피 통로로 활용될 수 있고, 시행령에 따라 스타트업, 중소규모 기업들에게도 규제가 부과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메신저와 포털 위주로 논의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 정보통신망 서비스에서 대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른 비즈니스 모델도 수범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n번방 사태는 대화 서비스를 통해 문제가 불거졌는데 현재는 게임, 커머스 등 다양한 부문에서 대화 서비스를 사용하는 만큼 영역을 불문하고 개정안 수범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관련 사항을 시행령에서 정하겠다고 나오면서 관련 업계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커졌다는 지적이다.
◆기술적 조치도 실효성 의문
방통위는 앞서 발표한 설명자료를 통해 사업자가 기술적 조치 등에 활용할 ‘표준 DNA 데이터베이스(DB, 가칭)’를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별 자료 특징을 몇 가지 추출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이와 유사한 또는 관련된 자료가 유통이 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게 목표다. 하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예를 들어 음성이 들어간 동영상에서 음성을 삭제했는데 데이터베이스가 영상만 가지고 판단하는 시스템으로 구축된다면 이를 걸러내지 못하고 재유통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방통위에선 업계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지만 현재로선 데이터베이스 자체를 구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해 1년 이내에 사업자가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6개월 후부터 시행된다. 사업자가 취해야 할 기술적, 관리적 조치는 시행일로부터 1년 이내로 하도록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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