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민병권 기자] 한국GM이 2020년형 쉐보레 볼트(BOLT EV)를 출시하며 1회충전주행가능거리를 31km 늘렸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383km였던 수치가 414km로 늘어나면서 ‘400km 돌파’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됐다.

2020 쉐보레 볼트 [사진:민병권기자]
2020 쉐보레 볼트 [사진:민병권기자]

이처럼 주행거리가 넉넉한 전기차를 시승할 때 흔히 떠올리는 코스가 서울-부산이다. 단순무식 하면서도 주어진 시간이 충분해야 진행할 수 있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타고 끝에서 끝까지 달려보는 것이 실생활에서 유의미한 일인지 회의도 든다. 그래서 이번 시승은 방향을 달리했다. 서울-양양 왕복이다.

출발지인 잠실 롯데월드에서 강원도 양양의 낙산 해수욕장까지 거리는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편도 170km이다. 대부분 자동차전용도로 구간이라 재미없다. 때문에 동홍천IC에서 빠져 한계령을 넘어가는 변주를 택했다. 거리는 편도 190km, 즉 왕복 380km로 늘어났고 평지 고속도로보다 배터리 소모를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볼트는 ‘복합’ 에너지효율상 주행가능거리가 414km지만 ‘고속’ 기준으로는 363km에 그친다.

탑승자는 성인남성 2명이고 무시해도 좋을 만큼의 촬영장비와 노트북, 도시락 등 짐을 실었다. 완전 충전된 차의 계기판에 표시된 주행가능거리는 431km. 제원 수치보다 높다. 물론 이는 최근 어떤 운전을 했는지, 앞으로 어떤 운전을 할지에 따라 적잖이 달라진다. 볼트 계기판은 최소치(353km)와 최대치(610km)도 함께 보여주니 합리적이다.

‘한번 충전으로 600km라고?’ 문득 도전욕구가 샘솟았지만 연비를 쥐어짜보는 시승이 아니니 애초에 포기하기로 했다. 극한의 연비주행으로 그런 수치를 얻었다 한들 실생활에선 그리 도움되지 않을 것이다.

평소 운전습관대로 마음 편히 운전키로 했다. 속도를 낼 때는 내고, 에어컨도 아끼지 않았다. 다만 주행거리를 향상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하는 로우(L) 레인지와 ‘리젠 온 디멘드(Regen on Demand)’는 적극적으로 사용해보기로 했다.

2020 쉐보레 볼트 [사진:민병권기자]
2020 쉐보레 볼트 [사진:민병권기자]

볼트에 적용된 회생제동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가속페달을 늦출 때 감속과 함께 발전을 해 배터리를 충전한다. 전자식 변속레버를 D에서 한단 더 내려 L로 유지한 상태에서는 그 정도가 한결 강해진다. 리젠 온 디멘드는 스티어링휠 왼쪽 후면의 패들을 당기는 동안만 회생제동이 강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둘을 콤보로 사용하면, 감속 시 그냥 버려질 에너지를 최대로 주워담아 주행가능거리 연장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브레이크페달 조작 없이 차량을 멈춰 세울 수도 있는 원페달 드라이빙 시스템이다.

우선 서울에서 양양까지 가는 동안은 도로 구분 없이 L 모드를 유지했다. 가속페달을 조금만 늦춰도 소위 말하는 ‘엔진 브레이크’가 몹시 빠르고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부드러운 운전이 쉽지 않다. 오른발 움직임에 신경이 곤두서는걸 막기 위해 크루즈 컨트롤을 적극 활용했지만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차간거리 유지 기능(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없기 때문에 수시로 브레이크페달을 건드려야만 했고, 그때마다 크루즈 컨트롤이 해제되면서 강한 회생제동과 브레이크 작동이 겹쳐 차가 앞뒤로 들썩거렸다. 원래 L 레인지는 고속도로 주행용이 아닌 점을 고려하면 사서 고생한 셈이다.

어쨌든 출발지점에서 96km 떨어진 경유지에 도착했을 때 주행가능거리는 325km를 가리켜 무난한 완주에 대한 전망을 밝게 했다. 연비는 7km/kWh로 제원상 고속연비(4.8km)보다 월등히 좋게 나타났다. 참고로 볼트 연비는 다른 전기차, 하이브리드카들처럼 고속보다 도심(6.0km)이 더 좋다.

2020 쉐보레 볼트 [사진:민병권기자]
2020 쉐보레 볼트의 애플카플레이 화면 [사진:민병권기자]

한계령을 넘는 구간에선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졌다. 문제는 경사보다도 굽이길이다. 며칠 간의 초여름 더위를 잊게 하는 쾌적한 날씨 속에 신록이 우거지고 한적한 도로가 눈앞에 펼쳐지니 신나게 달리고픈 마음을 주체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스포츠’ 버튼을 누르고 시선을 전방 도로에 고정한 채 계기판 연비 수치는 외면했다. 타이어는 일찌감치 죽는 소리를 내지만 차체 움직임은 운전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아 나름 가혹한 주행을 계속하게끔 만들었다. 차체가 껑충하고 실내 바닥이 높아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낮게 깔린 배터리가 주는 안정감이 든든하다.

참고로 GM 엔지니어들은 공격적인 운전자들의 주행 패턴에서 회생제동 시스템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볼트의 원페달 드라이빙 시스템은 직관적일 뿐 아니라 다른 전기차 대비 회생제동성능이 월등히 높다고 자랑한다.

과거 수동변속기가 자동차 모는 재미의 상징이었다면 볼트는 원페달 드라이빙으로 새로운 시대의 운전 재미를 말하는 듯 하다. 수동변속기가 그렇듯, 다루는데 익숙해져야 부드러운 주행이 가능하다. 엔진 소음 없이 매끄럽게 바람을 가르며 산길을 누비다 보니, 지붕 열 수 있는 컨버터블이었다면 금상첨화였으리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파노라마는커녕 선루프도 없다. 여름날씨에 시승시간이 길어지니 통풍시트 없는 것도 아쉬웠다. 안드로이드오토로 연결한 카카오내비 사용이 원활치 않아 몇 번이나 폭발할 뻔 한 것은 차치하고.

2020 쉐보레 볼트 [사진:민병권기자]
2020 쉐보레 볼트 [사진:민병권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연식 차량이 남겼던 이미지에 비해 실내 분위기는 한결 좋아졌다. 10.2인치 화면에 360도 주변 상황을 보여주는 디지털 서라운드 비전 카메라와 업그레이드 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실내 이오나이저 등 작은 변화들이 그런 인상을 만든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주는 실내 공간 활용성도 새삼 돋보인다. 앞좌석 사이 바닥 공간을 온전히 수납용으로 사용할 수 있고 뒷좌석 사이 바닥도 평편해 내연기관 자동차와 제대로 차별화된 전기차라는 느낌이 든다. 실내 바닥이 높은데도 뒷좌석 머리공간은 좁지 않고 다리공간도 넉넉하다. 다만 앞좌석에서 느꼈던 만족감에 비해 뒷좌석은 높이 앉은 자세가 어색하고 진동, 소음 등 승차감이 열악해 탑승자 피로도가 높다.

한계령을 넘어 낙산에 도착해 확인한 연비는 7.4km/kWh로, 고속 구간만 달렸을 때보다 오히려 나아졌다. 주행한 거리는 194km, 주행가능 거리는 242km로 충분한 전력을 남겼다. 하지만 복귀하는 길에는 조건을 바꿔보기로 했다. 운전자 교대와 함께 L 레인지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한계령을 반대방향으로 넘어 다시 경유지에 도착했을 때 연비는 7.1km/kWh까지 떨어졌다.

주행가능 거리는 134km로 나타났다. 잠실까지 거리는 100km미만 남았으니 여유롭다. 하지만 동료 운전자는 약간의 긴장감을 드러냈다. 퇴근길 정체가 시작될 무렵 서울에 들어가게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도심 연비가 상대적으로 좋은 점을 위안 삼아도 되련만 아직은 낯선 전기차가 주는 막연한 불안감을 어쩌지 못했다.

2020 쉐보레 볼트 [사진:민병권기자]
2020 쉐보레 볼트 [사진:민병권기자]

그런데 불과 수년 전 1회충전 주행가능거리가 130km에 불과했던 BMW i3를 타며 노심초사했던 때를 고려하면 이정도 불안은 약과다. 계기판에 나타난 주행 가능거리를 믿고 굽이길을 신나게 달렸다가 뚝 떨어진 배터리 잔량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적도 있다. 충전소까지 가지 못하고 차가 설 뻔 했다.

볼트 EV는 2017년 국내 출시 당시는 물론 현시점에서도 부족해 보이지 않는 주행가능거리를 확보했는데, 이번 업그레이드를 통해 더욱 여유로워졌다. 그 ‘31km’의 여유는 충전기 위치를 찾아볼 생각조차 없이 다녀온 이번 여정에서 나타났다. 롯데월드에 도착하니 총 주행거리는 388km였고 주행가능 한 거리는 60km가 남겨졌다. 도착 즈음에는 배터리 게이지가 적색으로 바뀌고 D 레인지에서는 회생제동이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약해졌으나, 여전히 서울 반대편까지 이동하고 남을 전력이 남았다. 60kWh 배터리를 품은 기존 볼트였다면 아슬아슬했을 것이다.

신형은 66kWh 배터리를 탑재했다. 배터리 양극재의 니켈 함량을 높이는 등 최적화를 통해 성능을 향상시켰는데, 배터리 모듈크기는 그대로라 차체도 손대지 않았다(2020년형 볼트 가격도 4593만~4814만원으로 동결했다). 손상진 전기차 프로그램담당 부장과 김형민 전기차팀 부장 등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 관계자들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성능 개선 및 주행거리 증가는 볼트 출시 때부터 계획됐던 일이다. 주행거리뿐 아니라 다른 부분들에서도 전기차 고객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해 단계적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

2020 쉐보레 볼트 [사진:민병권기자]
2020 쉐보레 볼트 [사진:민병권기자]

현재 GMTCK 연구개발 인력의 1/4이 GM 전기차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가운데, GM은 지난 3월 2023년까지 20여개 전기차를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과거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EREV) 볼트(VOLT)용 배터리 공급을 시작으로 최근 GM과 차세대 배터리 셀 생산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LG화학과의 시너지도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다만 관계자들은 이번 볼트의 배터리와 GM의 차세대 배터리 ‘얼티엄’의 성능 차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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