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민병권 기자] 기자는 연비운전에 관한 한 젬병이다(쓰고 보니 다른 운전도 마찬가지긴 하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승행사에서 종종 ‘연비 1등’을 가리는 이벤트가 열리는데, 시작부터 “아몰랑”하고 기권해버린다. 기자가 넘볼 수 없는 연비운전 달인들이 업계에 널렸다는 걸 익히 알기 때문이다.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이렇게 밑밥 까는 이유는 이번 시승에서 얻은 연비 수치가 결코 노력의 결과물이 아님을 말하기 위해서다. 어쩌다 보니 거의 7시간 독박 운전을 했는데, 만약 그 시간 내내 연비운전을 하는 조건이었다면 진작 시승을 집어 치웠을 것이다.

스스로 설정한 상황극에만 충실하기로 했다. 평일에 갑자기 쉬게 돼서, 혼자 차를 몰고 서울에서 강원도 바닷가까지 드라이브를 다녀온다는 상상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왕복하면 너무 단순하니 중간에 한계령을 넘어 낙산해변을 찍고 돌아 오기다.

볼트EV 시승기를 읽은 독자라면 눈치챘겠지만, 그때와 동일한 시승코스다. 쉐보레 전기차가 충전 한번으로 너끈히 다녀올 수 있다고 자랑한 경로를 하이브리드카로 똑같이 달려보면 어떨까라는 뚱딴지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

그 과정에서 연비운전을 하지 않았을 때 하이브리드카가 제시할 연비 수치가 궁금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하이브리드카는 고속연비보다 도심연비가 우수하다. 그럼 고속도로만 달릴 경우 연비가 나쁠까? 또, 한계령처럼 높은 곳을 올라갈 때는 어떻게 될까? 내려올 때는 회복이 될까?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생각에 혼자 신이 났다.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시승차는 토요타 하이브리드카 중에서도 도심 사용에 특화된 소형 해치백, 프리우스C다. 정확히 말하면, 프리우스C에 SUV룩 치장을 더하느라 100만원 비싸진 ‘프리우스C 크로스오버’지만, 주 무대가 도심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다.

그런데, 2590만원짜리 차를 사서 막히는 시내도로에서만 탈순 없지 않겠는가. 본의든 아니든 가끔은 자동차 전용도로에 오를 일이 있을 테고, 어쩌다 한번은 멀리 떨어진 다른 지방까지 휙 몰고 갈 수도 있어야 내차 가진 맛이 날 것이다. 원거리 맛집을 방문하기 위해 새벽부터 여정을 떠나는 아반떼의 ‘세상 달라졌다’ 광고처럼.

광고에선 함께(운전교대)할 친구가 있었지만 이번 시승은 혼자라 시원섭섭하다. 그보다 문제는 새벽에 떠날 수 없다는 것. 아침 10시에 토요타 전시장에서 차를 수령했다가 오후 5시까지 반납하는 일정이다. 마침 강원도에는 호우주의보도 내려졌다.

이걸 왜 하나 싶으면서도 쓸데없는 도전 욕구가 불타올랐다. 수 차례 내비게이션 예상소요시간을 확인한 끝에 결국 ‘나혼자간다’ 게임을 시작했다.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최근 서초역 인근으로 확장 이전한 효성토요타 서초 전시장이 출발지. 일찌감치 도착해 토요타 스포츠카 수프라 전시차를 구경했건만 정작 시승할 차는 꼬꼬마 친환경차라니 살짝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야광조끼마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현란한 시승차 색상에 금세 기분 좋아졌다.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는 (얌전한 색 포함) 12가지 컬러를 보유한 색상부자다. 국내 시판 토요타 차 중 가장 많은 외장 색상을 갖췄다.

실물로 보니 예상보다 그럴듯하다. 프리우스 C에 SUV 토핑을 살짝 얹었을 뿐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루프박스에 캠핑장비 잔뜩 싣고 어디론가 떠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물론 이번 시승에서는 연비를 악화시키고 풍절음을 크게 만들 요소는 사절이다. 참고로 프리우스 C는 하이브리드 배터리를 뒷좌석 아래에 배치했기 때문에 등받이를 접을 때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어 작은 공간이나마 효율적으로 활용 가능하다.

서초전시장에서 자동차전용도로(올림픽대로)까진 지척이다. 이번 시승코스에서 도심 구간이 극히 짧다는 뜻이다. 다만 전용도로에 오르고도 교통체증을 벗어나기까진 다소 시간이 걸렸다.

정체된 길에서 느릿느릿 이동하는 사이, 상위 모델들에 비해 생생하게 전달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 작동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시끄럽고 불편하기 보단 생동감 있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특히 꼼짝 못하는 차들 사이를 전기모터만으로 쓱쓱 미끄러져 다닐 때 기분이 좋다.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그러다 가속페달을 깊이 밟을 일이 생기자 대번 한숨이 나왔다. 엔진은 굉장히 열심히 일하는 척 소리를 내는데, 차 속도는 쉽사리 높아지지 않는 것. 마침 주행모드가 ‘에코(ECO)’로 되어 있어서 증상이 더 심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프리우스 C는 1.5리터 가솔린 엔진을 기반으로 시스템 최고출력 101마력을 낸다. 덩치 큰 하이브리드카들과 달리 엔진출력(72마력)과 모터출력(61마력)에 큰 차이가 없어 흥미롭다.

바닥 쪽에 숨다시피 위치한 버튼을 눌러 에코 모드를 끄자 한결 활기차게 움직였다. 하지만 교통체증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금방 또 한계가 찾아왔다. 제한속도인 시속 100km까지 속도를 높이려는 것뿐인데도 이 녀석은 도통 협조를 하려 들지 않는다. 태코미터가 없으니 회전수를 알 수는 없지만 엔진은 2만rpm쯤 도는 시늉만 하고 차는 안 나간다.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그런데 꾸준히 100km/h를 유지하면 그건 또 괜찮다. 그렇다 보니 연비운전을 하려는 의도가 아닌데도 자연스레 정속 주행을 하게 된다. 이걸 노렸는지, 작은 덩치에 장비도 보잘것없는 녀석이 크루즈컨트롤만은 갖췄다.

제한속도를 지키는 정속 주행도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서행하는 차들이 있으면 추월을 하느라, 뒤에서 눈치 주는 차가 있으면 피해주느라, 수시로 엔진을 갈굴 수 밖에 없다. 틈틈이 에너지 모니터를 살펴보니 엔진은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 정속 주행을 하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쉬지 않고 바퀴를 굴리면서 배터리 충전까지 한다. 반면 전기모터와 배터리는 거의 베짱이처럼 놀고 먹는 듯 보인다.

하이브리드카에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이유도 이거 아니던가? 하이브리드카는 구매 시 세제혜택(일부는 차 가격에 반영) 외에 도심혼잡통행료 감면, 수도권 공영주차장 50% 할인 등 혜택을 받는다.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처럼 엔진만 돌고 전기구동시스템은 무게만 잡아먹고 있으니 연비가 뚝뚝 떨어질 만도 하다. 왠걸, 한계령으로 넘어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벗어난 뒤 잠시 들린 국도변 휴게소에서 확인해보니 평균연비가 23.1km/ℓ다. 여기까지 110km를 이동하는 동안 주행거리가 늘어날수록 연비 수치도 꾸준히 상승했다. 전체 중 EV(전기차) 주행 비중은 14%(15.7km)로 나타났다.

휴게소를 떠나기 전 연비를 초기화 했다. 국도를 따라 50km 남짓 이동하자 연비는 21.8km/ℓ를 가리켰다. 중간에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최대 가속성능을 살펴본 영향이 있다.

한계령을 향해 본격 오르막을 오르기에 앞서 다시 연비를 초기화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아낌없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비가 퍼붓고 있었던 덕분에 프리우스 C의 비명 소리는 그리 애처롭게 울려 퍼지지 않았고, 적당히 미끄러지는 바퀴를 컨트롤하며 구비구비 코너를 돌아나가는 재미도 있었다. 연약해 보이는 15인치 휠·타이어를 끼우긴 했어도 무게중심이 낮게 깔린 덕분인지 고속도로는 물론 이런 악조건에서도 기대이상의 안정감을 보인다.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해발 920m 한계령휴게소에 당도해 확인한 연비는 10.2km/ℓ. ‘내가 좀 심했나…’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 만회할 차례다. 올라온 길과 반대 방향으로 낙산해변을 향해 내려가는 동안은 기어 셀렉터를 D가 아닌 B에 두어 회생제동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물론 연비운전 차원이 아니라 엔진브레이크 대용이다. 감속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브레이크 페달만 밟는 것보다 B 모드를 적극 활용하면 더 쾌적하다.

다만 계단식으로 움직이는 기어셀렉터를 D에서 왼쪽으로 꺾어내려야 B가 되는데, 기자는 습관적으로 오른쪽으로 밀게 돼서 어색했다. 프리우스 같은 전자식 레버였다면 좋았겠다.

사실 프리우스 C는 저가 수입차라 어쩔 수 없는 장비수준은 둘째치고 너무 오래 전의 차로 보이는 실내가 핸디캡이다. 그 동안 소소한 부분변경을 거쳤을 뿐, 2011년말 처음 나왔을 당시랑 큰 차이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이래봬도 토요타가 하이브리드카 글로벌 누적판매 1500만대를 달성하는데 큰 몫을 담당한 차인데 이렇게 방치된 모습이 안타깝다.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한계령휴게소부터 낙산해변까진 30km 남짓. 이번엔 연비 초기화 없이 그냥 내려갔다. 아니나다를까, 처참했던(?) 연비는 긴 내리막을 지나면서 20km/ℓ까지 회복됐다. 서울의 출발지점부터 낙산해변까지는 200km 조금 넘게 주행했고 평균연비는 22.7km/ℓ로 나타났다.

바닷가에 오긴 했으나 바다를 보긴커녕 차에서 내릴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점심도 먹지 않고 달려왔건만 시간은 벌써 오후 2시. 아까 휴게소에서 촬영 영상을 백업하느라 지체한 시간이 길었다. 원래 계획은 다시 한계령을 넘어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방도가 없다. 시간 맞춰 반납하려면 고속도로를 타고 쭉 가는 수밖에.

다시 연비를 리셋하고 서울양양고속도로에 올랐다. 100km쯤 달렸을 때 이번 시승 최고 연비인 25km/ℓ 수치가 계기판에 표시됐다. 기쁨(?)도 잠시. 전혀 예상치 못한 교통정체가 시작됐다. 고속도로에서 걷는 속도로 서행을 하게 된 원인은 터널 내 추돌사고였다. 가다 서다가 반복되는 정체가 늘어지면서 연비도 서서히 떨어지는 듯 했으나 폭락은 없었다. 24.7km/ℓ를 사수했다.

마침 금요일 오후다. 반납시간을 지키지 못하게 될까 애가 탔다. 다행히 이 구간을 지나서 서울까지는 우려했던 정체나 돌발상황이 없었다. 강원도 양양의 낙산해변에서 서울 서초동까지 180km를 달린 평균 연비는 24.9km/ℓ로 나타났다. 당초 계획했던 400km가 아닌 총 380km를 주행한 이날 시승의 평균 연비는 23.6km/ℓ였다. 전체 중 EV 주행 비중은 7%였다.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1라운드는 이렇게 막을 내렸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2라운드를 마련했다. 빠듯한 시간과 날씨 탓에 차 사진을 남기지 못했고, 연비 수치에도 일말의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요행히 연비가 잘나왔던 것은 아닐까? 이번엔 서울 역삼역을 출발해 강원도 인제군의 인제스피디움을 왕복하는 코스에서 ‘나혼자간다’ 게임에 나섰다.

이번에도 연비 운전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차들과 보조를 맞춘다는 핑계로 급가속과 과속을 더욱 노골적으로 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날씨는 그리 덥지 않았고 에어컨은 1라운드와 마찬가지로 자동으로 설정했다(이래봬도 풀 오토 에어컨).

그런데 이런, 인제로 갈 때는 (또) 에코 모드가 켜진걸 모르고 느린 가속에 답답해하다가 나중에야 깨달았다. 내친김에 인제스피디움까지는 에코 모드를 유지하고, 돌아올 때는 출발에 앞서 확실하게 에코 모드를 껐다.

주행경로는 꼬지 않았고 오갈 때 동일 경로로 이동했다. 주행거리는 편도 153km씩 총 306km. 그렇게 해서 인제까지 갈 때는 24.8km/ℓ, 역삼으로 돌아올 때는 22.7km/ℓ의 연비가 나왔다.

프리우스 C 공인연비(크로스오버도 동일)는 도심 19.4km/ℓ, 고속도로 17.7km/ℓ, 복합 18.6km/ℓ지만, 실제로는 훌쩍 상회함을 재확인했다.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토요타 프리우스 C 크로스오버 [사진:민병권기자]

대충 운전해도 이 정도라면 작심하고 연비 운전을 할 경우 어떤 수치를 얻을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답은 가까이, 바로 계기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에코 점수 확인 기능과 함께 이전 주행 중 최고 연비 1~3위 기록이 시상대 모양 그래픽으로 표시되는 것.

아아, 보지 말걸 그랬다. 1등 연비는 무려 53.8km/ℓ. ‘에이, 이건 뭔가 잘못됐거나 조작이지. 주행거리도 8km밖에 안되네’. 그런데 2등은 13km 주행에 35.4km/ℓ, 3등은 77km 주행에 30.6km/ℓ다. 나도 모르게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제서야 생각났다. 한국토요타는 오는 7월 말일까지 ‘하이브리드 연비 레이스’ 이벤트를 진행한다. 전국 토요타 전시장에서 하이브리드카를 시승하면 연비랭킹에 따라 전기자전거를 비롯한 경품을 주는 것. 시승차에 남겨진 연비 기록들도 이벤트 참가자들의 도전 결과일지 모른다.

기자처럼 하이브리드카 연비에 의심이 많거나 도전정신이 불타오른다면 토요타 전시장에서 하이브리드 연비 레이스에 참여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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