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민병권 기자] 현재의 BMW Z4(3세대, G29)가 2018년 처음 공개됐을 당시 당혹감을 나타낸 이들이 적지 않았다. 날렵했던 이전 세대 모델에 비해 뭉툭한 느낌을 주는 차체 형태가 낯설었다.

BMW의 디자인 언어가 바뀐 탓도 있지만 달라진 차체 비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전 세대에 비해 차체 길이와 너비가 80mm 내외로 커진 반면 앞뒤 바퀴의 중심 사이 거리인 휠베이스는 25mm 줄어든 것.

이렇게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이에 대한 해답을 BMW가 아닌 토요타 관계자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지난 1월 21일 GR 수프라의 한국 출시 행사에 참석한 타다 테츠야 수석 엔지니어(CE)로부터다.

토요타코리아의 GR 수프라 신차발표행사에 참석한 타다 테츠야 치프 엔지니어(사진=민병권 기자)
토요타코리아의 GR 수프라 신차발표행사에 참석한 타다 테츠야 치프 엔지니어(사진=민병권 기자)

단종된지 17년만에 부활한 토요타 스포츠카 GR 수프라와 현재의 BMW Z4는 토요타와 BMW의 공동 개발로 탄생한 이란성 쌍둥이 관계. 기존 토요타 스포츠카 ‘86’의 개발 책임자였던 타다 CE는 7년전 86 출시 직후 시작된 GR 수프라의 개발까지 총괄하게 되면서 BMW측과 실무 협상에 나섰다.

“양사는 공동 개발을 통해 포르쉐의 카이맨·박스터에 견줄 수 있는 스포츠카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토요타·BMW 합작 스포츠카는 (엔진이 앞에 있고 뒷바퀴를 굴리는) FR 스포츠카라서 (엔진이 운전석 뒤에 있는) 미드십 스포츠카 카이맨·박스터의 운동 성능을 따라잡는데 한계가 있었다.”

토요타와 BMW가 가진 기존 FR 플랫폼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였다. 양사는 다각적으로 연구한 끝에 최적 조건의 FR 플랫폼을 새로 개발하면 가능하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토요타 GR 수프라(A90)
토요타 GR 수프라(A90)

“자동차의 주행, 핸들링을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다. 대게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서스펜션 형식이 무엇이냐, 타이어가 무엇이냐 등이지만 실제 핸들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휠베이스, 트레드, 그리고 무게중심 높이의 세가지다.”

트레드(윤거)는 좌우 바퀴의 중심 사이 거리를 뜻하며 차체 너비와 관련이 있다. 타다 CE는 스포츠카의 운동 성능을 결정하는 3대 요소인 휠베이스와 트레드, 무게중심의 높이만 확실하게 잡으면 핸들링 성능의 80%를 결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이 중요시하는 서스펜션 튜닝이라는 요소는 상대적으로 아주 낮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때문에 토요타와 BMW는 새 플랫폼의 기본 치수를 결정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하우를 투입했다. BMW 2시리즈 쿠페를 잘라 휠베이스와 높이를 줄인 프리 프로토타입으로 검증 작업도 벌였다. 이 차를 일본에서 시승해본 도요타 아키오 토요타자동차 사장은 GR 수프라를 위한 새 플랫폼 공동 개발을 승인했다.

토요타 GR 수프라의 옆모습
토요타 GR 수프라의 옆모습

결국 (BMW Z4와) GR 수프라는 기존 스포츠카에서 찾아볼 수 없는 휠베이스와 트레드 비율을 갖게 됐다. 2인승인 GR 수프라의 휠베이스는 토요타 86(2+2시트)보다 100mm 짧은 2,470mm다. 휠베이스와 앞뒤 바퀴의 트레드 평균을 비교한 값은 1.55. 기존 2인승 스포츠카들(1.6이상)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낮다. “레이싱 카트의 경우 이 비율은 1.1이다. 수치가 낮을 수록 차의 회두성이 좋다”고 타다 CE는 말했다.

전체 무게와 무게 중심을 낮추고 앞뒤 무게 배분을 최적화하기 위해 차체 앞부분 골격과 보닛, 앞 펜더, 도어는 알루미늄으로, 백도어는 합성수지로 만들었다. 그 결과 GR 수프라는 무게중심이 낮기로 유명한 토요타 86보다도 낮은 무게중심을 실현했다. 동시에 차체 강성은 86의 2.5배, 렉서스 RCF, LC500은 물론 탄소섬유 뼈대를 적용한 렉서스의 10년전 슈퍼카 LFA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토요타 GR 수프라 실내
토요타 GR 수프라 실내

새 플랫폼의 치수와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 형식까지 함께 결정지은 BMW와 토요타 개발팀은 이후 따로 떨어져 각자의 스포츠카를 개발했다. 타다 CE조차 Z4의 출시 직전 최종 프로토타입이 나오고 나서야 시승 기회를 얻을 만큼 양측의 교류를 최소화했다. 토요타의 경우 유럽 토요타 소속 ‘마스터 드라이버’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엔진과 파워트레인을 튜닝했다.

수프라 개발은 철저하게 일반 도로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시험 주행도 공도에서 80%, 테스트 코스에서 20%를 진행하는 등 전세계 많은 도로를 주행하며 숙성 시켰다. 성능 수치나 랩 타임에 연연하기 보다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느낌, 차와의 일체감과 운전 즐거움 같은 감성을 끌어 올리는데 집중했다.

토요타 GR 수프라 정측면
토요타 GR 수프라 정측면

그런데 결과적으로 GR 수프라는 BMW Z4보다 빠른 차로 평가받고 있다. 이건 어찌된 일일까? 타다 CE는 기업평균연비제도(CAFE)를 한가지 원인으로 꼽았다.

“알다시피 토요타는 세계 최고 친환경차 회사다. 하이브리드카를 워낙 많이 팔고 있기 때문에 수프라처럼 판매대수가 적은 차는 다소 연비나 배출가스가 좋지않더라도 문제되지 않는다. 애초에 개발팀은 연비를 고려치 않았다. 연비에 신경 쓸 시간에 차를 더 짜릿하게 만들 방법을 연구하라고 주문했다.” 

타다 CE는 GR 수프라 고객들이 길에서 토요타 하이브리드카 고객을 만나면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한다는 농담도 덧붙였다.

토요타 GR 수프라 뒷모습
토요타 GR 수프라 뒷모습

GR 수프라는 일반 도로 위주로 개발된 차지만 모터스포츠와의 연관성도 깊다. 차의 개발 과정에서 경주용 버전을 만들어 레이스에 출전시켰고 그 결과를 피드백해 양산차를 다듬었다.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부문 ‘가주레이싱’을 뜻하는 GR이 차명에 붙은 이유다.

GR 수프라의 차체 곳곳에 뚫린 ‘가짜 구멍’들도 모터스포츠와 관련이 있다. 헤드램프 아래, 앞 펜더 위, 도어 등에 자리한 통풍구 장식은 단순한 디자인 요소가 아니라 튜닝이나 모터스포츠 등 추후 필요에 따라 실제 구멍을 뚫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를 위해 경주용 차로 개조한 경우의 공기흐름을 시뮬레이션한 후 구멍 위치를 결정했다.

“GR 수프라는 터보 엔진을 탑재해 튜닝으로 출력을 높이기가 쉽다. 그런데 엔진 출력을 높이려면 냉각 성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구멍을 뚫어 공기흐름을 개선할 수 있도록 여러 곳에 장치를 마련했다.” 타다 CE가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디퍼렌셜에도 오일 쿨러를 추가할 수 있도록 파이프 구멍을 넣는 등 “고성능 수프라로 튜닝하고자 할 때 비교적 돈이 적게 들고 손이 많이 가지 않도록 여러가지로 고심해서” 설계했다.

토요타 GR 수프라 운전석
토요타 GR 수프라 운전석

타다 CE는 GR 수프라의 부활이 더뎌진 이유도 공개했다. GR 수프라는 2012년 5월 개발을 시작해 2019년에야 세상에 나왔다. 일반적인 자동차 개발 기간보다 2~3배 더 걸린 셈이다.

BMW와의 공동 개발 협의는 초기에 수월하게 진행되는 듯 했다. 1~4세대에 걸친 기존 수프라로부터 반드시 계승해야 할 유산으로 ‘직렬 6기통 엔진’과 ‘FR’을 꼽은 토요타 입장에선 고성능 직렬 6기통 엔진으로 유명한 BMW만한 파트너가 없었다.

하지만 실무에 들어가자 양측의 입장차이가 컸다. 당시 BMW의 기술개발 부사장이었던 허버트 디에스는 순수 스포츠카를 만들고 싶어하는 토요타의 의지에 난색을 표했다. 시장이 작아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공동개발이 답보상태로 1년여의 시간이 흘렀을 때 디에스 부사장이 돌연 퇴사했다. 폭스바겐 CEO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서였다. 클라우스 프뢸리히가 BMW 개발담당 부사장을 맡으면서 BMW측 개발 팀이 새롭게 구성됐다. 프뢸리히 부사장은 토요타의 입장을 이해하고 힘을 실어주었다. 공동 개발은 이때부터 비로소 본격화될 수 있었다.

2014 토요타 FT-1 콘셉트
2014 토요타 FT-1 콘셉트

여담이지만 빼어난 운동 성능을 얻은 대신 ‘몸매가 망가진’ 것은 Z4뿐이 아니다. GR 수프라(A90)는 거의 30년전 나온 이전 세대 A80 수프라보다 차체 길이는 135mm, 휠베이스는 80mm 줄어든 반면 폭은 45mm 늘었다.

GR 수프라에게 디자인 특징을 물려준 2014년의 콘셉트카 FT-1과 비교하면 차체가 흉하게 쪼그라들었다고 생각될 정도다. 데뷔 당시부터 '수프라 콘셉트카'로 알려졌던 FT-1은 역대 수프라들처럼 2+2 시트 구성을 가졌고 차체 길이 4,675mm, 휠베이스 2,740mm, 폭 1,970mm 등 GR 수프라(4,380mm, 2,470mm, 1,855mm)와 비교하면 기골이 장대한 스포츠카였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