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삼성전자의 법인세(법인의 소득에 매기는 세금) 부담률이 애플을 넘어섰다. 한·미간 법인세 부담 역전을 두고 경제계는 기업 투자 둔화와 국가 경쟁력 약화 등을 우려하며 법인세율 정책 완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일각에서는 지난 수년간 친기업 정책의 일환으로 최대 감세를 단행한 것이 오히려 국가 부채만 불렸다며 법인세 인상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법인세 부담률, 삼성전자 28%-애플 14%?... "한국서는 영업이익 약 40%가 법인세로 납부"

28일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한국반기보고서와 미국 10-Q 연결손익계산서를 가지고 한·미 법인세 부담 비중을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전기전자와 자동차, 철강 분야 대기업의 법인세 부담이 미국 기업보다 높아졌다. 삼성전자가 작년 상반기 23.8%에서 올해 동기에는 4.2%p 늘어난 28%의 법인세 부담을 안은 반면, 애플은 전년동기비 10%p 줄어든 14%로 부담 비중을 덜었다. 현대차의 법인세 부담률은 작년 20.6%에서 올해 24.9%로 늘었고, 포드는 작년 19.1%에서 올해 13.9%로 줄었다. 또 뉴코(Nucor)의 법인세 부담률이 전년비 8.4%p 줄어든 23.5%를 기록한 반면 포스코는 기존보다 1.8%p 오른 31%의 법인세를 부담하게 됐다.

상반기 법인세 비용 추이 (이미지=한경연)
상반기 법인세 비용 추이 (이미지=한경연)

한경연은 한·미간 법인세부담 역전 요인으로 지난해 결정된 '한국 법인세율 인상(22%→25%)'과 '미국의 법인세율 인하(35%→21%)'를 지목했다. 이어 한경연은 분석 결과, '세율 인상'으로 인해 올 상반기 국내 상장사의 영업이익,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법인세 제외 모든 비용을 공제하고 난 순이익) 증가보다 법인세 부담이 더 크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경연 통계 조사에 의하면, 작년과 올해 연속 법인세비용과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이 흑자인 450개 상장사의 영업이익과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이 각각 27.7%, 27.3% 늘어난 데 반해 법인세부담 증가율은 49.3%에 달했다. 이에 한경연 측은 "영업이익이 3.3조원 증가할 때 법인세부담은 5.3조원 증가한 셈"이라며, "영업이익 증가분의 39.8%가 법인세부담으로 귀결되었다"고 언급했다.

450개 상장사 영업이익,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 법인세부담 증가율 (이미지=한경연)
450개 상장사 영업이익,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 법인세부담 증가율 (이미지=한경연)

이번 법인세 비용 추이 통계를 두고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인세 인상 정책이 '한국 대기업에 대한 사망선고'를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감세로써 기업 투자를 촉발하고 궁극에는 고용 성장을 이뤄야 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인하 추세인 법인세율을 역으로 인상한다는 것은 '갈라파고스 규제(국제 정세와 단절돼, 개선될 필요가 있는 규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법인세율 정책의 변화가 세계에서 경쟁하는 대표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을 역전시키고 있다"며, "우리나라 기업의 투자 여력과 글로벌 경쟁력 증대를 위해 세계의 법인세율 인하경쟁에 동참해야 한다. 실질적인 부담 완화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법인세 주요 개정 내용 (자료=국회예산정책처)
법인세 주요 개정 내용 (자료=국회예산정책처)

앞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8월 법인세 인상 개정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 1월 1일부터 시작되는 사업연도분부터 법인세 과세표준이 3000억 원을 초과하는 법인에 한해 법인세율이 22%에서 25%로 상향 조정됐다. 최고 법인세율 대상 기업은 국내 재벌대기업 포함 대기업 60여 개다.

한편 군 법무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한경연이 발표한 자료를 놓고 실증적인 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법인세 비용 증가에는 법인세율 인상과 비과세감면 축소 효과가 공히 작용했다. 그러나 법인세 문제만으로 국가 경쟁력을 운운하며 국가 간 비교를 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각국의 경제 사정에 따라 법인세율이 탄력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면서 "만일 법인세 인하의 유의미한 효과를 논하려면, 세율 인하를 통해 외국인 투자기업이나 국내 기업들이 유턴(U-turn)할 가능성에 대한 논거를 제시해야 했다"고 밝혔다.

법인세율 인하로 오히려 대기업 사내 유보금 늘어...낙수효과 실패 반복해선 안 돼

기업들의 부담 완화 요구와 사회 공익적 재원 확충 요구가 팽팽히 맞서며 공전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법인세 인상 카드를 꺼낸 것을 두고 대통력의 결단력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기업 친화 정책'을 내걸고 금융위기 이후 경기 활황을 위해 법인세율을 3%p 인하했다. 과세표준 2억 원 이하 기업의 법인세율은 10%까지 낮췄다. 즉 낙수효과(고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경기를 부양해 궁극에는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 작동을 기대한 것이다. 이에 반해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분수효과(저소득층의 소득증대가 경기 활성화를 이끌어 궁극에는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를 주창했다. 이처럼 중산층 국민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 내수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는 '정부 재정 확충'이 필수적이며, 때문에 법인세 인상도 불가피하다.

박지웅 기획재정부 경제부총리 정책보좌관은 법인세 정책이 재벌 중심의 낡은 경제와 사회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보좌관은 "2015년 말 기준으로 상위 10대 대기업이 보유한 사내유보금은 약 350조 8000억 원에 달한다"면서도 "자영업자와 임금근로자에 대한 소득배분의 척도인 '조정노동소득분배율'은 2015년에 66%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기업의 발전이 가계소득으로 연결된다는 이른바 낙수효과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된다.

상장기업/자산총액 상위 100대 기업 사내유보금 추이 (자료=한국신용평가정보)
상장기업/자산총액 상위 100대 기업 사내유보금 추이 (자료=한국신용평가정보)

박 보좌관은 이어 "법인세율 인하로 명확히 늘어난 것은,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이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신용평가정보의 상위 100대 기업 사내유보금 추이 통계를 들며 낙수효과의 실패를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코스피, 코스닥 등 상장기업의 사내 유보금은 2011년 636조 1000억 원이었던 것이 2016년에는 876조 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자산총액 상위 10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455조 9000억 원에서 627조 3000악 원으로 매년 87~8%p대의 성장을 기록했다. 따라서 법인세 감세효과는 대기업들의 유보금 등 특정 기업군의 자금 여력만 높여주었고 감세로 인한 낙수효과는 매우 낮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게 박 보좌관의 입장이다.

또 그는 법인세율 인상이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 보좌관은 "매해 세계경제포럼에서 조사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는 137개 국 가운데 26위를 기록했다. 자국 경제 규모에 비해 국가경쟁력 순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노동, 금융 부문의 후진성과 국가신뢰성지표, 이른바 사법 중립성과 관료의 청렴성이 낮기 때문이다"면서 "한국보다 국가경쟁력 순위가 높은 독일의 지방세 포함 법인세율은 30.2% 수준으로 우리보다 훨씬 높고, 일본의 법인세율 역시 30% 수준이다"고 밝혔다. 그에 의하면 해당 나라의 사회지표가 얼마나 선진화되어 있는지, 정부정책과 기업 간 상호 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따져 국가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지, 법인세율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박지웅 정책보좌관은 정부의 재정수입 확대 수단이 제한적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결국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체세 등 기간 세목에서 세원을 확충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비과세, 감면제도 등의 혜택을 받은 대기업들은 이제껏 수혜 규모에 상응하는 투자나 고용을 많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소기업이 더 많이 했다. 혜택을 받아 온 재벌대기업들이 법인세를 우선적으로 더 부담하는 것이 세제형평에 맞다.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재벌 등 대기업 법인세를 2008년 이전 수준으로 환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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