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세계 5대 연기금 가운데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 소속인 경우는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유일했다. 여타 해외 연기금들은 기금운용에 대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자산규모 기준 세계 5대 연기금을 대상으로 지배구조와 의결권 행사 방식 등을 비교한 결과를 19일 내놨다. 조사 대상이 된 5대 연기금은 우리나라 국민연금과 일본 GPIF, 캐나다 CPPIB, 미국 캘퍼스(CalPERS), 네덜란드 ABP 등이다. 이들 연기금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위원회에 해당하는 의사결정기구가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고, 위원장도 기업·학계 출신 전문가들이 맡았다.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보건복지부)에 소속돼 있으며,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경우는 국민연금이 유일하다는 게 한경연의 설명이다.

기금운용이사회 구성에서도 국민연금과 해외 연기금은 차이가 났다. GPIF, CPPIB, ABP 등은 이사회 내 정부 인사가 포진돼 있지 않다. 모두 경제·금융, 연기금 전문가거나 기금 조성 사용자나 노동자 대표로 구성된다. 미국의 캘퍼스는 주(州) 공무원과 교육공무원들을 위한 직역연금이다. 따라서 이해당사자로서 주 정부 인사 4명이 당연직으로 참가한다. 나머지 위원 6명도 가입자들의 선거로 선출된다는 점에서 독립성이 보장된다.

반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고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농립축산식품부 차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총 5명이 당연직위원으로 있다. 사용자 위원 20명 중 5명꼴로 현직 장·차관이 배치됐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당연직으로 참가한다. 그런만큼 "국민연금이 기금운용 결정 과정에서 정부 입김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한경연의 지적이다.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국민연금공단 본사. (사진=국민연금)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국민연금공단 본사. (사진=국민연금)

앞선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은 올해 3월 주주총회부터 경영 참여를 본격화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배구조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는 만큼 3월 주총에서 정부 간섭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달리 ABP, CPPIB, 캘퍼스 등은 자체 의결권 행사지침을 마련한 뒤 외부 전문기관에 의결권 행사를 위임한다.

특히 일본 GPIF는 의결권과 스튜어드십 코드 일체를 위탁운용사에 위임했다. 이들 위탁운용사들은 자체적으로 의결권 행사기준을 정한 뒤 의결권 행사 결과를 GPIF에 정기적으로 보고한다.

국민연금의 자산 내 주식보유 비중은 지난해 기준 34.8%이다. 이중 절반이 국내주식이며 액수로는 109조원에 이른다. 이는 시가총액의 7%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자칫 정부의 간섭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구조라는 얘기다.

하지만 네덜란드 ABP와 캐나다 CPPIB는 국내주식 보유 비중이 각각 0.5%, 2.4%에 그친다. 일본 GPIF는 국내주식 비중이 25.3%로 국민연금보다 높다. 하지만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과도한 기업경영 개입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GPIF의 주식 직접 매매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의 캘퍼스는 국내주식 보유 비중이 국민연금과 비슷한 17.7%이나 미 중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에 불과하다.

한경연은 "해외 연기금들의 사례를 정면교사 삼아 우리 국민연금 또한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해 기금 고갈 위험을 막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해외 연기금들은 기금운용 과정에서 독립성이 훼손되는 문제를 막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뒀다. 미국의 캘퍼스는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기금을 이용해 재정적자를 해소하려 하자 1992년 칼리포니아주 헌법을 개정해 기금운용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했다.

캐나다연금도 1990년대 정부의 과도한 간섭으로 기금 고갈 위기를 맞자 1998년 별도의 공사인 CPPIB를 설립해 독립된 지배구조를 확보했다. 네덜란드 ABP는 지난 1922년 설립 당시 기금운용위원회가 내무부장관 지배를 받는 구조였으나, 1996년 독립자회사 형태로 민영화시켜 기금을 독자적으로 관리·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2016년 GPIF가 주식을 직접 투자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정부의 경영 간섭과 시장 왜곡 우려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법개정이 무산됐다. 현재 GPIF는 정부로부터 기금운용에 대한 전권을 위임 받아 독립적으로 운용 중이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