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SK그룹과 한화그룹 등에 이어 LG그룹도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사익 편취)' 규제를 피해 자회사인 서브원의 분할 매각을 결정했다. '김상조호'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확대하면서, 서브원이 공정위가 분류한 '기업집단별 사익편취규제 사각지대 계열회사 현황'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땜질식 대응이 반복되는 가운데, 업계에선 사익에 눈 먼 총수들이 공정거래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개정안의 허술함이 총수 일가의 폐단을 유지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LG, 서브원 'MRO사업부'만 매각키로

21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현재 서브원의 소모성 자재 구매대형(MRO) 사업을 분할해 지분을 매각키로 결정하고 인수 회사를 물색 중이다. 서브원은 MRO, 건물, 부동산 관리, 건설, 레저분야를 아우르는 아웃소싱서비스 업체다. 작년에는 영업이익 2109억 원을 냈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1347억 원을 기록했다. 이번에 LG그룹은 고객사 구매 모델을 설계하는 MRO 사업부만 매각을 진행한다. 서브원 관계자는 "현재 MRO를 육성할 여력이 있는 외부 투자자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LG그룹 소유 지분도 (자료=공정거래위원회)
LG그룹 소유 지분도 (자료=공정거래위원회)
LG 기업집단 소유구조 현황 (자료=공정거래위원회)
LG 기업집단 소유구조 현황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지주회사를 통한 LG의 서브원 간접 지배... 공정위 개정안서 '새 규제 대상' 됐다  

지난달 27일 공정위가 발표한 '기업집단 소유지분도'에 따르면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의 LG그룹 지분율은 11.1%다. 이에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특수관계인(회사의 대주주와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의 지분율까지 합치면 총수 일가의 LG그룹 지분율이 46%에 달한다. 그리고 지주회사인 ㈜LG는 자회사인 서브원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사실상 LG그룹이 서브원의 지분을 들고 있는 것이 되므로 총수는 서브원에 대한 지분이 일절 없다. 이처럼 지주회사제도를 통해 총수일가가 사익을 편취하고 지배력을 강화하는 경우는 그간 대기업에서 흔한 '꼼수'로 작용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개정안을 통해 지분율 50%을 초과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으로 삼으면서, LG계열사와 내부 거래가 매우 활발한 서브원 또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피해 지분 매각?... "공정법 본질 호도 우려 있어"

대기업 총수들의 잇단 임시방편식 지분 매각에 관해 업계는 '총수들의 규제 비껴가기'가 궁극에는 공정거래법의 본질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도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서브원 매각이 시급하지는 않았다. LG그룹이 선제적으로 알짜 자회사 사업부의 분할 매각을 진행함으로써 추후 발생 가능한 사회적 논란의 여지를 없애고자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광모'식 사업 개편일 수도 있다. 일단 서브원의 경우 내부 거래 비중이 컸고 총수 일가가 간접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후 관련 규제 시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일부 대기업 총수들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사익을 편취하는 행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본질을 비껴가는 것이다. 규제를 피하려고 급히 지분 매각하는 모습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공정위와 LG, 서브원 (이미지=디지털투데이)
공정위와 LG, 서브원 (이미지=디지털투데이)

"간접지배 빠진 허술한 공정위 규제에도 문제 있다"

한편 공정위가 이번 개정안에서도 '간접 지분'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을 두고, 공정위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자체가 실효를 기대하기 어려운 고육책일 뿐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권오인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팀장은 "이번 개정안에서도 '지주 회사를 통한 간접 지배'가 빠졌다. 앞으로도 총수들은 사익 편취를 목적으로 꾸준히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해갈 것이다. 내부 거래를 근절하려면, 총수 일가의 지분은 없으나 계열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분을 취하는 자회사를 규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현 개정안대로라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권 팀장은 또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 기준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괄 20%로 낮췄다고 하더라도 기업들은 또 19.9%의 지분율을 남겨둘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를 근절할 의지가 있다면, 보다 확실하고 강력한 규제를 내놔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MRO 매각은 예상된 일... 대기업에 무조건적 외부거래 강요 지양해야"

한편 이번 LG의 MRO 매각은 예상된 수순이었을 뿐, 내부 거래와 연관지어 논란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입장도 있다. 최승재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은 "LG그룹이 MRO 사업부만 집어 매각을 단행한 것은 사측의 유동성 있는 판단이었을 것"이라며 "구매대행업무를 굳이 논란을 업으면서까지 내부 거래로 해결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최 원장은 내부 거래를 악의 도식에만 가두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부거래의 단점도 분명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도 많다. 삼성 SDS나 LG CNS등에서 IT관련 사업부를 내부에 두는 것도 보안 문제 때문이다. 무조건 중소기업을 선(善)의 선상에 놓고 대기업의 내부 거래를 배척하는 규제는 위험하다. 대기업들에 사업의 사안을 따지지 말고 내부 거래의 비중을 낮추고 외부에 맡기라고 요구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규제다"고 밝혔다.

(사진=공정거래위원회)
(사진=공정거래위원회)

앞서, 지난달 24일 공정위는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위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방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계열사에 대한 총수 일가의 지분율 기준이 상장사 30%, 비상장사 20%에서 상장 여부와 관계 없이 모두 20%로 일원화됐다. 더불어 지주회사나 계열사가 출자 회사의 지분을 50% 이상 보유한 경우, 해당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은 작년 231개사에서 607개사로 늘어난다. 공정위는 내달 4일까지 예고사항에 관한 의견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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