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주요 감시 대상으로 자산 2조원에서 5조원 사이의 중견기업을 언급함에 따라 관련 업계가 동요하고 있다. 식료품·급식 등 생활밀접업종 내 부당거래 현황도 집중 조사 대상이 된다. 공정위 조치를 접한 중견기업 업계 시선은 곱지 않은 모양새다. 내부거래의 목적이 거래비용 절감인 경우가 많은데, 계열기업을 지원했다는 사실만으로 부당성이 판단되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대기업에 머물렀던 공정위의 칼날이 중견업계로 전환된 데 대해 학계의 의견도 엇갈린다.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이들 중견기업 내부거래의 경쟁제한성 여부를 따져 위법성을 판단하는 게 옳다는 시각이 있다. 반면 큰 제재 성과 없이 공정위가 자산규모가 큰 대기업·중견기업만 겨냥해 번갈아 '겁주기'를 하는 것은 역차별적 조치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28일 공정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역점과제 가운데 하나로 '식료품·급식 등 생활밀접업종의 부당내부거래 집중 감시'를 선정했다. 국민 체감이 빠른 업종을 중심으로 일감개방과 일감나누기를 서두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단체 급식기업인 삼성웰스토리와 식료품 업체 CJ그룹 등을 콕 집어 언급키도 했다. 

자산 2조원에서 5조원 사이의 중견기업에 대한 사익편취 행위도 중점 조사한다. 때문에 태광과 대림·금호아시아나·하림의 부당지원혐의 건에 대해서는 상반기 내로 조속히 심판정에 상정할 예정이다. 이들 사건은 각각 지난해 11월 8일과 16일날 위원회 안건으로 오른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브리핑에서 "올해는 중견기업의 부당지원을 조사할 것"이라며 "그간 현장조사를 벌인 그룹 10곳의 경우 심사보고서 작성 외 새로운 조사를 착수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공정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공정위)

이에 따라 식료품·급식 부문 주력기업 포함 중견기업들은 출발부터 사업계획에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그간 자산 5조원 미만인 중견기업들은 일감몰아주기 조사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지난 2015년 2월 시행된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법'의 조건에서 부당거래의 주체를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소속 회사로 한정해서다. 대신 중견기업은 '부당지원금지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공정위가 대기업 중심 조사에 주력한 탓에 사실상 중견기업에 대한 부당거래 조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앞선 2017년 2월부터 지난해 11월 말까지 3차례에 걸쳐 '중견기업집단 계열회사의 일감몰아주기'와 관련한 사례 분석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은정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당시 3번의 보고서에서 "재벌그룹으로 통칭되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일감몰아주기나 회사기회유용 양태에 관한 제도적 규율은 어느정도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중견기업의 일감몰아주기 실태는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100곳을 웃도는 중견기업들이 올해 공정위의 주요 타깃으로 거론되자 국내 유일한 중견기업 대변 법정단체인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견련)는 불편함을 드러냈다.

중견련 측은 공정위가 중견기업의 내부거래 현황을 '일감몰아주기'로 명명한 것 자체가 모든 내부거래를 부정적으로 재단한 것이란 입장을 내놨다. 중견련 관계자는 "기업은 통상 사적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기에, 자원 조달을 하는 여러 대안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방안으로써 내부거래를 활용할 뿐"이라며 "지배주주나 이사의 부당이익 편취, 당사자 간 부의 이전을 위해 내부거래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중견기업 업계 내부거래의 목적은 비용 절감을 통한 경영 효율화에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법적 제재를 가할 시 기업 개개의 역량과 경쟁력을 떨어트릴 것이란 얘기다. 이 관계자는 또 "이미 상속세법에서 일감몰아주기에 관해 증여세를 과세하고 있는데, 공정위의 조치는 이중과세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면서 "연이은 기업 규제는 국민의 반기업 정서 확산과 기업 투자 위축으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정위가 올해 일감몰아주기 조사대상 전환을 감행한 데 대해 학계 의견은 엇갈린다.

공정위는 앞선 7일 업무보고 브리핑에서 중견업체의 부당지원 여부 판단 근거를 명확히 해 의심기업들을 간추려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상가격 산정기준과 일감몰아주기 제재 예외기준 등 상이한 비즈니스모델 별로 모호할 수 있는 기준들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용상 동국대 법학대 교수(한국법학교수회 명예회장)는 "영세성이 짙은 벤처산업과 국가 차원에서 장려되는 신성장 동력 등 산업유형 상 내부거래를 지향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제재 예외기준을 적시하고 이들 산업을 경과적으로 보호한다면 중견기업 조사 전환은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정 교수는 "중견업계가 말하는 경영효율화 작업은 개별 기업 단위로 주창 가능한 근거가 아니며 산업·업종별 차원에서 진단돼야 할 사안이다"며 "경영효율화 자체가 높은 내부거래 비중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제도권 밖에 있던 중견기업 내 폐해를 방지해 경제력집중과 시장양극화 가능성을 청산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또 급식사업을 전개 중인 CJ와 삼성웰스토리 등에 대해선 "급식사업은 중소기업 보호업종에 해당하기에 대기업 계열사가 급식사업을 하면 안 된다"면서 "대기업·중견기업 특유의 '싹쓸이' 의식을 버리고 중소기업과의 협업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일각에선 공정위가 대기업·중견기업에 국한해 역차별적인 조치로 일관하고 있단 시각도 제기된다. 심형석 미국 사우스웨스턴캘리포니아대학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정부는 매번 기업의 자산 규모 등에 따라 번갈아 조사 대상을 확장하고 있는데, 애초에 부당거래 문제가 기업 규모로 나뉠 일이 아니다"면서 "중소기업에도 부당거래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공정위는 10대 대기업집단에 관한 제재도 끝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중견기업 겁주기를 시작했다"면서 "이들 규모의 기업만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제재하기보단 전 기업으로 조사의 초점을 확대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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