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 서정대 교수(전 YTN 사장)

ESG가 기업 경영에 강력하게 작동한 사례가 있다. ㈜한화는 분산탄을 제조하다 국제적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분산탄이 넓은 지역을 초토화하면서 민간인 피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등 유럽국가 연기금은 2007년에 ㈜한화를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결국 ㈜한화는 지난해 11월에 ESG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분산탄 사업을 매각했다고 발표했다. 

ESG는 이처럼 그동안에도 개별 사안에 따라 기업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해 왔다. 현재는 관련 제도가 마련되고 있고 글로벌 재계와 자본시장 등에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어 이제는 기업 경영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ESG가 실효성이 있는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선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가 공시돼야 한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올해 재무제표부터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등 앞서가고 있다. 세계적 자산운용사인 블랙록도 올해부터 투자 기업에 기후 변화에 대한 기업의 대응 등을 공시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 일정대로라면 2030년이 돼야 모든 상장사의 공시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설사 공시가 이뤄진다고 해도 보고 항목과 양식을 표준화하는 일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도 일부 기업들은 재무제표와 별도로 지속가능보고서라는 형태로 ESG 관련 사항을 공표하고 있다.

문제는 기업마다 발표 항목과 내용, 양식이 제각각이어서 기업별로 비교하는 데 적합하지 않고 일관성도 부족하다는 데 있다. 최근 ESG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올해부터 ESG 관련 데이터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표준화되지 않은 대규모 자료는 유용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혼선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무대에선 의미 있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세계경제포럼(WEF)은 세계 4대 회계법인인 딜로이트, EY, KPMG, PwC와 함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측정지표(SCM:Stakeholder Capitalism Metrics)'를 내놨다.

이 지표는 기업이 이해관계자와 사회 전체를 위해 지속가능한 가치를 얼마나 창출하는지를 측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SCM은 두 가지 기준을 통합해 만들어졌다. 하나는 UN이 지난 2015년에 발표한 '지속가능 개발목표(SDGs)'로 가난의 종식, 맑은 물과 위생, 불평등 완화 등 17개의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ESG다.

이 둘을 포괄한 SCM은 지배구조 원칙, 지구, 사람, 번영 등 크게 4가지 축으로 구성됐다. ESG와 관련된 세부 주제를 살펴보면 지배구조의 목적과 이해관계자 참여, 기후 변화, 자연훼손, 고용의 다양성,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등을 평가 항목으로 두고 있다.

SCM은 출발부터 그 대표성을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 추가적인 논의와 보완 작업을 거쳐 구체적인 실행에 들어가게 되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ESG를 착근시키는 중요한 제도적 인프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현재 지속가능 회계표준 위원회(SASB) 등 국제표준기구 5곳이 ESG를 포함한 글로벌 기업보고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재무 실적 중심으로 돼 있는 기존 기업 공시에 기후 변화, 팬데믹 등 지속가능 이슈를 통합한 포괄적 공시 기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업 공시를 통해 재무와 비재무적 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는 공시 표준화 작업이 완성되면 ESG가 더 정확하게 측정되고 기업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ESG 경영은 말로 하는 선언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기업이 실제로 적극적인 실행을 해왔는지를 평가하는 '공인된 성적표'가 공개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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