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옥 칼럼] 이제 ‘관치 핀테크’의 마지막 단추를 끼자
[한민옥 칼럼] 이제 ‘관치 핀테크’의 마지막 단추를 끼자
  • 한민옥 기자
  • 승인 2020.01.1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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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옥 디지털투데이 편집국장

# 20143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 현장.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호통이 쏟아진다.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한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여주인공이 입어 화제가 된 옷, 일명 천송이 코트를 중국인들이 공인인증서 때문에 사지 못하고 있다며 질책한 것. 대한민국 관치 핀테크의 시작이다.

 

# 당시 중국인들은 다소 불편할 수는 있지만 충분히 국내 쇼핑몰에서 천송이 코트를 살 수 있었다. 이미 (영세 쇼핑몰을 제외하고)국내 상당수 쇼핑몰은 외국인이 해외 카드로 결제하면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는 결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대통령이 지적한 옷은 공인인증서를 쓰지 않아도 되는 30만원 이하의 제품이었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도 이 사실을 알았지만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대신 ‘30만원 이상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폐지' 대책을 내놓았다. 문제는 공인인증서가 아닌 공인인증서를 구동하는 액티브X였으니, 의무조항을 삭제했다 해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자 대통령의 주문 수위가 더 높아진다. “(공인인증서 관련해)현장에서 변화를 못 느낀다. 우리도 온라인 간편결제 시스템을 도입하지 못하면 외국 업체에 빼앗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금융위가 나선다.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는 간편결제를 허용하고 결제대행사업자(PG)도 개인 카드정보를 보유할 수 있게 한다. 이를 계기로 국내 간편결제 서비스의 꽃이 피기는 했으나 대통령의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그래서 등장한 게 인터넷 전문은행이다. 같은 해 국감에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인터넷 전문은행 검토를 시사하더니 다음 해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방안 등을 담은 핀테크 육성정책을 발표한다. 이때부터 보여주기 식 핀테크 정책이 쏟아진다.

 

# 왜 핀테크를 해야 하는지, 핀테크가 어떻게 금융을 혁신할 수 있는지, 우리 환경에 필요한 핀테크 서비스는 무엇인지 고민의 흔적은 없었다. 해외에서 핀테크가 대세라고 하고, 대통령도 하라고 하니 일단 보여주고 보자는 식이었다. 심지어 핀테크와 스마트 금융, 디지털 금융을 혼동하는 경우도 흔했다. 정부가 화두를 던지면 무조건 따르는 식으로 금융회사들이 움직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6년 전, 우리나라의 금융IT 수준은 인터넷·모바일 인프라와 함께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였다. 24시간, 실시간으로 전자금융 거래가 가능한 나라는 우리뿐이었다.

온라인 예대 업무나 펀드 판매는 이미 인터넷 뱅킹에서 하고 있었다. 핀테크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온라인 전자결제 서비스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도 우리나라였다. 카드번호를 한번만 등록하면 다음부터는 바로 결제가 되는 간편결제 서비스도 이미 일부 쇼핑몰과 카드사에서 시작한 상태였다. 공인인증서 역시 정부 정책이 문제였지, 기술만 놓고 보면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기술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당시 중국인들이 천송이 코트를 왜 살 수 없느냐(사실 살 수 있었지만)가 아니라, 우리의 앞선 금융IT 기술이 왜 국내에서조차 활성화되지 않는지에 초점을 두고 핀테크 육성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주먹구구 정책에 맞춰 원포인트로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핀테크 강국 도약을 목표로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는 금융규제 전반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 잘 못 낀 첫 단추의 후유증은 크다. 시간이 지나면 바로 잡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더욱이 처음부터 잘 못 낀 것을 알고 있었다면 바로잡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모양이 이상하고 불편해도 입고 있을 수밖에 없다. 출범 3년 만에 사실상 셧다운상태에 빠진 국내 1호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가 방증한다.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 과정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케이뱅크는 첫 단추부터 순탄치 않았다. 케이뱅크를 주도한 KT의 사업자 선정부터 특혜 논란이 일었고 출범 후에도 대주주 자격 미달 논란, 주주간 이면 계약서 논란 등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되고 후속으로 특례법 개정이 추진되는 과정에서도 KT와 케이뱅크에 대한 특혜 논란은 계속됐다. 결국 인터넷 전문은행 특례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케이뱅크는 식물은행으로 전락했다.

물론 케이뱅크가 이렇게까지 된 것은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의 취지는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논란만 키운 국회의 탓이 크다. 그렇다 해도 케이뱅크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만은 없다. 케이뱅크의 경우 경쟁사인 카카오뱅크에 비해 지금까지 이렇다 할 혁신 서비스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과연 케이뱅크가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 취지에 걸맞은 혁신 서비스로 금융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끌어냈어도 정치권이 은행 영업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방치할 수 있었을까? 사실상 셧다운에도 케이뱅크 이용자들의 불만이 크지 않다는 점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핀테크 전성시대는 열렸다. 앱 하나로 모든 은행 계좌를 넘나드는 오픈뱅킹 서비스가 본격화됐고, 해외 송금이나 환전 등은 이미 은행의 전유 서비스가 아니다.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핀테크 업체들의 발목을 잡아 온 거미줄 규제도 어느 정도 풀렸다. 특히 데이터 3(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금융권 전반으로 핀테크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제 관치 핀테크의 마지막 단추를 끼워야 할 때가 왔다. 마지막 단추는 지금까지처럼 성급한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철저한 사후 규제여야 한다.

핀테크 서비스와 관련한 가장 큰 우려는 보안이다. 데이터 3법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들끓는 것도 개인정보 보호 등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이 걱정을 막는다고 섣부른 규제의 칼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사고를 낸 기업에 강력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케이뱅크 사태도 마찬가지다. 은행 개점 휴업은 대형 금융사고이고, 그 책임은 이유가 무엇이든 분명 KT와 케이뱅크에 있다. 따지고 보면 천송이 코트 논란이 커진 근본적인 원인도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을 이용자에게 지운데 있었다. 마지막 단추로 첫 단추의 실수까지 바로 잡아보면 어떨까.

mohan@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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