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LG생활건강(이하 LG생건)이 'BKC(염화벤잘코늄)'로 만든 '119가습기 세균제거'를 개발·판매하는 과정에서 자체적인 흡입독성 실험을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BKC는 치명적인 독성물질로, 먹으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걸 가습기를 통해 호흡기로 들이마시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런 제품을 LG생건은 지난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간 110만400개나 팔았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28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연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LG생건의 '119가습기 세균제거'에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았단 증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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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청문회'가 열렸다. (사진=신민경 기자)

먼저 이날 특조위는 올해 환경부가 내놓은 용역 보고서를 근거로 대며 LG생건 제품의 위해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보고서 내 흡입독성시험 결과에 따르면 LG생건 가습기살균제의 주요 성분인 BKC는 흡입 시 비강과 후두, 폐 등 호흡기 계통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은 "무려 110만여개가 팔렸는데 아직까지도 제품의 유해성과 피해자수, 피해유형 등이 전혀 구체화된 게 없다"면서 수년간 제품의 판매 사실을 함구해 온 LG생건을 질타했다.

특조위는 이어 지난 1997년 8월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출원한 가습기살균제 관련 특허를 공개했다. 자료에는 BKC 성분에 대한 '경구독성값'만 수치로 표기돼 있고 '흡입독성값'은 없다. 입을 통한 독성 물질 섭취만 따져보고, 호흡기 등을 통해 들이마실 경우 독성에 노출될 위험이 없는지는 실험하지 않았단 얘기다.

최 부위원장이 "개발 과정에서 BKC 성분의 흡입독성 시험을 한 적 있느냐"고 묻자 이치우 전 LG생건 생활용품 사업부 개발팀 직원은 "흡입독성 실험을 실시하지 않은 것은 인정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소속된 팀은 마케터가 제품 콘셉트를 지시하고 의사결정을 하면 주어진 일정에 맞춰 협조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기술 상의 하자에 대해선 잘 모른다"며 "위해의 소지가 있는 원료를 택하고 이를 활용한 제품 뒷면에 '인체 무해'를 부연한 데 따른 책임은 담당 부서인 마케팅 팀에 있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증인으로 참석한 LG생건 관계자들을 향해 "알면서도 묵과했지 않느냐" "당신이 우리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 "LG가 사람을 죽였다" 등 울분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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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과 박헌영 LG생활건강 대외협력부문 상무가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고 있다. (사진=신민경 기자)

최 부위원장은 또 "화학산업의 선두주자라 불리는 대기업 LG생건이 왜 가습기 제품에 흡입독성과 인체무해 여부 실험을 거치지 않은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박헌영 LG생건 대외협력부문 상무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연히 조사했어야 할 부분인데 왜 당시엔 안전 실험을 치르지 않았는지 유감스럽다"고 답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통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119가습기 세균제거' 제품을 사용해 피해를 입었다고 추산되는 피해자는 총 26명이다. 이 가운데 2명만이 정부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최 부위원장은 "최근 위원회 조사 결과 부산시 공무원 수십명이 LG생건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봤고, 이 가운데 사망 사례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집계에 누락된 피해자들이 더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보상문제와 관련해 LG생건 관계자는 "국가에서 판단하고 결론을 낸다면 그에 따라 배·보상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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