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사상자 1370명을 낸 애경산업 '가습기메이트'의 광고 모델이 방송프로그램 진행자 임백천-김연주 부부로 드러났다. 이런 가운데 이들 행보에 세인의 관심이 모인다. 해당 TV 광고를 보고 제품 구매를 결정했던 피해자들 중 일부가 이 부부의 근황을 접하는 데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주식회사 유공(현 SK디스커버리)의 바이오텍 사업팀은 지난 1994년 18억원을 들여 1년 만에 세계 최초로 가정용 미생물 번식억제제인 '가습기메이트'를 만들었다. 가습기의 물에 넣기만 하면 완전 살균이 가능하다는 게 제품 내용의 골자다. 유통은 애경산업이 맡았다. 제품은 2L짜리 가습기로, 23회 사용하면 소모되는 정도의 분량이었다.

호흡기가 약한 사람이나 아기를 둔 집안이 겨우내 쾌적한 실내 습도 유지를 위해 주로 구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습기메이트는 '인체 유해' 의혹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 2011년까지 약 200만개 팔려나갔다.

지난 5일 기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통계에 따르면 가습기메이트와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등의 제품으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되는 사람들은 총 6360명이다. 이 가운데 가습기메이트로 인한 피해당사자는 137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당시 정부 등 관련기관의 대처 미흡이 피해 확산을 조장했단 점에서 현재는 세월호 사건과 함께 또 하나의 '사회적 참사'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해 3월 국무조정실 산하기구인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진상 규명을 위해 출범 소식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광고 화면 캡처=신민경 기자)

가습기메이트의 텔레비전 광고는 제품 출시 한달만인 지난 1994년 12월 처음 개시됐다. 당시 광고에선 방송진행자 김연주가 모델로 나와 "물이 깨끗해야 공기도 깨끗해집니다"며 아기를 품에 안은 채 가습기메이트를 홍보했다. 그는 "세워둔 채로 살짝 눌러 요렇게 붓기만 하면 세균도 물때도 (닦입니다)"면서 "가습기메이트 덕분에 우린 건강하게 살아요"라고 했다. 라디오 진행자 임백천은 직접 얼굴을 드러내진 않았으나 광고 말미에 목소리만 출연하며 "아내가 똑똑하면 편하다니까"라고 덧붙였다.

이들 부부는 최근까지 꾸준하게 방송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지난해엔 예능방송프로그램인 '싱글와이프2'에 3개월간 동반 출연하며 금슬을 뽐낸 바 있다. 같은해 5월엔 퀴즈방송프로그램 '1대 100'에 동반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또 임백천은 지난 2014년 도서 '한마디 말로 힐링하라'를 낸 뒤 2017년엔 예능프로그램 '세모방'의 진행을 맡았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현재까지는 KBS2라디오 '임백천의 골든팝스'를 직접 진행 중이다. 방송이 끝난 후에도 언론사와 인터뷰를 갖는 등 근황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광고가 전파를 탄지 24년째가 되도록 이들이 직접 모델로 섰던 '가습기메이트'에 관한 언급은 전무한 상태다. 

광고모델이 해당 제품의 안정성과 위해요소를 가늠할 길은 없다. 그러나, 가습기메이트가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악화시켰단 점에서 이들 부부가 비판을 면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통상 모델에 의지하는 광고의 경우 모델이 여타 논란에 휩싸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모델의 이미지와 제품의 이미지가 연결돼 있어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예컨대 부모의 채무로 인해 가수 마이크로닷이 여론의 십자포화를 받자 그를 모델로 한 광고를 찍어뒀던 피자헛은 급히 모델 출연 분량을 삭제한 후 내보내야 했다. 반면 제품 논란으로 인해 모델이 이미지 타격을 입은 사례는 거의 없다. 모델의 비고의성이 참작돼서다.

하지만 가습기메이트 광고는 수많은 피해자 양산을 부추겼단 점에서 모델에게 도의적 책임을 물을 여지가 있어 보인다. 당시 임백천은 2집 앨범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고 김연주는 MBC 방송프로그램 진행자로 크게 활약 중이었다. 이 부부가 아기와 함께 광고에 출연했단 것은, 이들의 소비자 친화적이고 건강한 이미지가 가습기살균제의 청결한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형성하기 위함이었단 점을 방증한다. 부부가 자신의 이미지와 제품의 특성을 결부해 이득을 취한 만큼 자신들의 광고 속 발언에 대한 도의적 자각을 할 필요가 있단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경산업의 가습기메이트와 이마트 PB제품 등을 사용한 뒤 현재까지도 급발작성 중증 천식과 저감마글로불린혈증 등 각종 난치병을 앓고 있는 조순미(50)씨는 "물론 부부가 제품의 문제를 알고 모델로 나선 것은 아니나 피해 당사자로서 이들을 방송에서 볼 때마다 답답한 감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고 했다. 조씨는 이어 "현재 피해자단체가 제품의 피해를 알리려 해도 국민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상황이다"면서 "부부가 지금이라도 나서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활용해 제품으로 인한 피해현황을 알리는 활동을 한다면 피해자들로선 마음을 추스릴 계기가 될 듯하다"고 말했다.

이연 선문대 사회과학대학 학장(한국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은 "수많은 사상자를 배출한 사회적 재난인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광고모델로 섰단 점만으로도 이들 부부는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 마땅하다"면서 "광고를 보고 구매를 결정한 피해자들로선 그들을 매체에서 접하는 게 껄끄러울 것이다"고 했다. 이 학장은 "사과를 강요할 순 없겠으나 자신들이 대표했던 해당 광고에 대한 유감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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