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유해물질 섬유탈취제를 팔았다'는 부정적인 평판을 떠안았던 피죤이 누명을 벗었다. 당시 환경부가 한 시험연구원의 검사 결과지를 근거로 문제 제기를 했단 점에서 정부 부처의 고시 방식을 맹목적으로 따라선 안된단 목소리가 나온다. 잠재적 피해기업과 소비자를 양산하지 않기 위해선 연구기관들간 '최신 검사방법의 표준화'가 추진돼야 한단 분석이다.

30일 청주지방검찰청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위해물질 검출 논란을 빚었던 피죤의 탈취제 '스프레이 피죤'이 최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제품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은 데다 당시 검사 방법의 부정확성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감지돼서다.

문제가 됐던 피죤 섬유탈취제 2종.
문제가 됐던 피죤 섬유탈취제 2종.

앞서 지난해 3월 금강유역환경청은 피죤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환경부가 지정한 공인분석기관인 FITI시험연구원이 피죤의 '스프레이 피죤'에서 사용제한물질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이 검출됐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PHMG는 흡입독성이 강한 인체 유해물질로 사상자 4600여명을 낸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의 주원료기도 하다.

檢 "검사 방법의 부정확성 여지 다분...유해물질도 검출 안돼"

청주지검 측이 피죤을 불기소 처분한 주요 근거는 'PHMG 불검출'이다. 피죤 제품을 둘러싼 이번 논란은 FITI시험연구원 검사 결과에서 촉발됐지만 정작 같은 시료를 의뢰 받아 검사한 대검찰청 화학분석실과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등에선 PHMG가 나오지 않았다.

피죤은 또 청주지검에서 무혐의 처분이 나기 전인 지난해 말께 이미 원료공급업체인 AK켐텍과의 법적 분쟁 과정에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으로부터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통지를 받았다.

이같은 정황을 확인한 검찰은 불기소결정서에서 "환경부 표준 고시를 따르고 있는 FITI시험연구원의 검사방식은 여타 공인 검사기관들의 방식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면서 "전혀 다른 물질도 PHMG로 오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지난 8월 제출한 법과학 분야 R&D사업 중장기 추진전략 수립 연구. 애경산업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예시로 들어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료=과학기술정책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지난 8월 제출한 법과학 분야 R&D사업 중장기 추진전략 수립 연구. 애경산업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예시로 들어 현행 측정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료=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번 논란이 점화된 뒤인 지난해 말 국립환경과학원이 PHMG 측정에 활용할 표준 검사방식을 대검찰청 화학분석과의 것으로 바꾼 점도 검찰 판단에 영향을 끼쳤다. 종전 검사방식 차용 기관인 환경부의 고시에 대한 불신이 반영됐단 것이다.

검사방식 보완과 관련한 연구원 측 입장을 묻는 질문에 FITI시험연구원 관계자는 "우리는 환경부가 고시한 바를 따라 진행한 것뿐이므로 그 뒤의 여파에 대해 왈가왈부할 상황은 아니다"고 답했다.

'매출 위축 불가피' 피죤 반면교사 삼아 '환경부 측정방식 표준화 해야"

피죤은 지난해 3월 검찰에 고발된 직후 해당 제품 2종을 전면 회수한 뒤 판매 금지 조치를 해야 했다. 탈취제에서 독성 물질이 나왔단 구실 아래 1년 7개월 동안 제품을 팔지 못한 피죤으로선 매출 타격과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하다.

피죤 관계자는 디지털투데이에 "일단 결백을 알리는 데 집중하는 터라 피해 규모를 추산할 여력은 없다"면서도 "제품 판매를 못한 사실만으로 잠정적 매출 손실이 있던 것은 맞다"고 했다.

애경 전경. (사진=신민경 기자)
애경 전경. (사진=신민경 기자)

앞서 해당 탈취제의 원료를 만든 곳인 애경그룹 계열사 AK켐텍은 "환경부 시험고시에 오류 가능성이 있다"며 다른 기관 조사결과를 제시해 왔다. 대·중견기업과 정부가 각각 지정한 분석기관이 검사방식의 차이로 PHMG 검출여부에 대한 다른 판단을 내놨을 경우 법정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PHMG 등 주요 독성물질에 대한 시험기관들의 측정 방식을 표준화해야 한단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향후 다른 애꿎은 생활용품기업이 피죤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자는 취지에서다. 현행 화학물질 관리법에선 일부 검사기관의 오류가 감지돼도 재검사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어 해당 기업이 일방적인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업에 귀책 사유가 있다고 해도 측정법의 일원화를 통해 소비자들 간 혼선을 막고 신중한 판단을 도울 수 있단 것이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살균제 성분과 질량값이 비슷한 생활화학제품의 원료에 대한 변별이 안돼 PHMG로 오인 받은 듯하다"면서 "우리 측에선 억울한 면이 많아 지난해 FITI시험연구원의 오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백남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는 "시험연구원이 환경부 고시를 따라야 한단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각 연구원들은 오히려 SCI 등 국제학술지에서 해마다 다뤄지는 최신 검사방식을 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안전과 직결된 독성물질의 판별 땐 정부나 공무원들의 담론으로 결정한 기준이 아닌 국내외에서 공인 받은 검사방법에 의지해야 한단 얘기다. 백 교수는 이어 "측정과 검사를 위한 최신 분석장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유해물질 측정 방식을 일원화하는 방향으로 하되 자주 갱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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