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4명 목숨 앗은 가습기살균제…애경-SK케미칼, 부담금만 내면 땡?
1374명 목숨 앗은 가습기살균제…애경-SK케미칼, 부담금만 내면 땡?
  • 신민경 기자
  • 승인 2018.12.18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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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땐 '아기 위해-가족 건강 위해'라며 열 올리더니
피해자 오랜 곡소리에도 책임·사과엔 '모르쇠' 일관

[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인체에 무해하다 했다. 가습기 속 세균은 물론 물때도 말끔히 없앤다 했다. 아기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메이트 구입은 필수라고도 했다. 지난 1994년 11월 16일자 매일경제신문 11면엔 사상자 1374명을 낸 '가습기용 살균제'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순간이 기록돼 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주식회사 유공(현 SK디스커버리)의 바이오텍 사업팀은 18억원을 들여 1년 만에 세계 최초로 가정용 미생물 번식억제제인 '가습기메이트'를 만들었다. 가습기의 물에 넣기만 하면 완전 살균이 가능하다는 이 제품의 당시 소비자가격은 230ml 기준 4000원이었다. 통계청의 화폐가치계산에 따라 당시 가격을 지금의 물가로 환산하면 약 7896원이다. 1.974배 상승했다. 그리고 이 제품은 2l짜리 가습기로, 23회 사용하면 소모되는 정도의 분량이었다. 즉 호흡기가 약한 사람이나 아기를 둔 집안은 겨우내 쾌적한 실내 습도 유지를 위해 적어도 두세 통은 구비해놓았을 성싶다. 비용 부담도 만만찮았다는 얘기다. 당시 기사는 "가습기메이트란 제품명으로 판매될 이 살균제의 효력은 약 15일 이상 지속되며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언급했다. 소비자들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조사결과를 그대로 믿었고, 가습기메이트는 의혹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 2011년까지 약 200만 개 팔려나갔다.

'건강과 청결' 마케팅으로 몸집 불린 가습기살균제

SK디스커버리(옛 유공, SK케미칼)는 지난 1994년 11월 가습기메이트를 개발해 세상에 내놨다. 당시 유공은 신문 광고를 통해 "부설 대덕연구소에서 살균제를 콜레라균포도상구균 등의 수인성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과 가습기 내부 물때를 형성하는 물때균이 들어있는 물에 0.5% 농도로 첨가한 후 살균력을 실험했다. 3시간 경과 후 살균율이 99%였고 만 하루가 지났을 때는 100%의 살균율을 보였다"고 밝혔다. 

SK디스커버리는 1994년 11월부터 이듬해인 1995년 12월까지 약 1년에 걸쳐 주요 3개 신문사(한겨레, 동아, 매일경제)에 9번의 지면 광고를 실었다. 주요 소비층인 주부의 정서를 겨냥해 '내 아기를 위해'서나 '우리 가족 건강을 위해'서 가습기메이트를 구입하라는 구절이 광고문구로 여과 없이 사용됐다. 

상단과 하단 오른쪽은 1995년 12월 9일자 동아일보 지면, 하단 왼쪽은 1994년 12월 24일 동아일보 지면에서 발췌
상단과 하단 오른쪽은 1995년 12월 9일자 동아일보 지면, 하단 왼쪽은 1994년 12월 24일 동아일보 지면에서 발췌

SK디스커버리가 가습기메이트를 출시한지 2년 만인 1996년엔 옥시도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냈다. 하지만 이후 2011년 한 해 동안 임산부들이 잇따라 호흡부전과 폐손상 등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윽고 같은 해 8월 31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가 사상자들의 폐질환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후 11월 11일에는 정부 차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수거 명령이 이뤄졌다. 동물흡입실험을 치르고 이상소견이 발견된 화학물질(PGH, PHMG)을 원료로 사용한 가습기살균제 6종을 거뒀다. 한 달 후에는 모든 가습기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했다. 이듬해 9월 환경부는 PHMG뿐만 아니라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와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도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유독물로 지정했다. 하지만 때는 한참 늦었다. 가습기살균제가 제조되고 유통되기 시작한지 17년 만의 진단이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무책임한 판매와 정부의 늑장 대응 등으로 피해자들은 확대 양산됐다. 현재까지 가습기살균제를 쓰다 사망하거나 다쳐 신고한 피해자는 6239명이다. 이 가운데 확인된 사망자만 1374명(지난 14일 기준)에 이른다. 대한민국 검찰은 전무후무한 수치의 사상자가 발생한 해당 참사의 원인이 밝혀진지 5년 만인 2016년에 들어서야 전담 수사팀을 꾸렸다. 현재까지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세퓨 등 몇몇 업체의 일부 임원만 기소돼 책임을 지고 있는 상태다. 

지난달 27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모여 가습기메이트를 개발한 SK디스커버리과 판매한 애경산업을 상대로 검찰에 재고발했다. 양사는 가습기살균제의 원료로 CMIT와 MIT를 사용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지난 14일 갱신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제품별 사용자 현황 통계를 보면 옛 SK케미칼이 만들고 애경이 유통한 가습기메이트의 사용자는 1362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CMIT/MIT성분 함유 제품의 단독사용자 245명 중에서 정부지원금을 받는 이는 10명 뿐이다. 복수사용자 120명을 더한다고 하더라도 총 130명만 1·2단계로 인정 받아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나머지 90%이상의 사람들은 정부 지원금을 일절 못 받고 있었다. 하지만 애경과 SK디스커버리는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구하는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다.

애경가습기메이트 사용자 현황 ⓒ환경부
애경가습기메이트 사용자 현황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심지어 검찰도 양사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월 12일 공정거래위원회가 SK디스커버리와 애경산업을 가습기살균제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3월 29일 검찰은 가습기메이트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지지난해 9월부로 5년간의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해서다. 검찰의 처분에 불복한 피해자들은 지금까지도 양사의 사과를 요구하며 검찰 재고발과 1인시위 등 집중행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애경산업 관계자는 "부과받은 분담금인 92억7200만원은 완납한 상태다. 현재까지는 분담금 이외 피해자 구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추후 추가적인 인과관계 조사 결과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성실하게 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가해기업들, 같은 '죄' 다른 '성의'

지난해 8월 환경부와 환경산업기술원은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와 원료물질 제조업체 등 기업 18곳에 분담금 총 1250억원을 부과했다. 애경은 지난해 자사에 부과된 분담금 92억7200만원을 완납했다. 그리고 212억8000만원을 납부해야 하는 SK디스커버리의 경우 아직 납부 중이다. 이준현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살균제종합지원센터 연구원은 "SK케미칼은 현재까지 159억원 납입했고 지연 납부는 없었다. 나머지 53억원은 내년 6월까지 완납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성보 환경부 환경피해구제과 행정사무관은 "분담금 부과기업들은 이행보증증권으로 납입해야 한다. 따라서 SK케미칼을 비롯해 현재까지 분담금을 완납하지 않은 기업들도, 추후 납입 여부와 상관 없이 궁극에는 이행보증증권으로 자동납부가 되게 돼 있다. 그래서 정부(환경부) 측에서는 징수가 완료됐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제도적으로 강제한 분담금을 잘 낸다고 해서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은 가습기메이트로 인한 사상자가 1362명이라는 수치로 집약되는 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배상 제안이나 사과 발언을 일절 삼갔다. 피해자들에게 사과 한 마디 건네는 데는 품도 돈도 안 드는 데 말이다.

지난달 27일 가습기넷 등이 애경산업과 SK디스커버리를 재고발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을 찾았다. 사진은 한 시민단체 회원이 애경산업 고발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신민경 기자
지난달 27일 가습기넷 등이 애경산업과 SK디스커버리를 재고발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을 찾았다. 사진은 한 시민단체 회원이 애경산업 고발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신민경 기자

반면 양사와 정반대로 적극적으로 용서를 구하고 배상을 제안한 곳이 있다.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으로 피해자를 양산한 옥시 측은 지지난해 4월 21일 입장문을 통해 "사건에 대한 책임을 깊이 통감하며 기존에 조성한 피해자 지원기금 50억원 외에 50억원을 추가 출연하겠다. 가습기살균제 사건 수사와 관련해 제기된 갖은 의혹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번 사태로 고통 받은 분들께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또 독성 가습기살균제를 표방한 자체브랜드 상품을 내놔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롯데마트의 경우 관련 업체들 가운데 가장 먼저 피해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는 옥시의 입장문 발표가 있기 전인 18일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검찰 수사가 끝나기 저에 피해전담조직을 설치하고 피해보상 재원 100억원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와 가족들께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같은 죄를 저질렀지만 기업의 대처방식은 상이하다. 애경산업과 SK디스커버리는 피해자들의 오랜 곡소리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담금은 내겠는데 죄는 없다"는 역설적인 말을 하고 싶은 걸까. 13년 전 모 연예인이 추돌사고 뺑소니를 놓고 이후 기자회견에서 늘어놓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궤변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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