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밤에 잠이 오지 않아 꼬박 새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입니다."

롯데그룹의 주요 유통계열사 중 하나인 롯데슈퍼가 과일도매점을 운영하는 한 소상공인을 상대로 갑질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피해를 입었다"는 김정균 전 성선청과 대표는 "롯데슈퍼가 사익을 편취하기 위해 고의로 수수료율을 높게 책정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바코드를 바꿔 붙여 도매점 측 납품 품목이 아닌 것처럼 팔아 매출에서 제외키도 했다"고도 했다. 이로 인해 13년간 불면증을 안고 살았다는 김 전 대표는 최근 롯데슈퍼의 갑질 행태를 널리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사측의 갑질 재발을 막고, 본인이 지난 2017년 1월 서명했던 합의금의 적정한 재산정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롯데슈퍼 측은 "재합의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며 김 전 대표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 중이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김 전 대표를 만나 수년간 양측이 벌인 승강이에 대해 들어봤다. 

Q. 롯데슈퍼로부터 갑질을 당했나.

A. 그렇다. 롯데슈퍼는 수년 동안 불공정한 거래를 일삼았다. 수시로 제품의 가격표를 바꿔 붙여 우리의 납품 품목이 아닌 것처럼 속이고 판매했다. 지난 2011년엔 장사가 되지 않는 곳으로 강제 입점을 요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주위 매장의 발주를 모두 줄였다. 매장 직원이 우리 물건을 말도 없이 가져가는 것도 자주 목격했다. 원가보다도 싼 납품단가를 요구하는 것도 을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간 김씨는 롯데슈퍼와의 거래를 위해 성선청과와 보성청과 등의 영업을 시작해 과일을 납품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금전적·정신적 피해를 받으며 병상과 매장을 오가다 결국 폐업했다.

Q. 병원에도 입원했었나.

A. 롯데와 거래하면서 암수술 등 수술만 16번을 했다. 수술비는 1억원이 넘게 들었다. 18년 전까지는 유도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체격이 크고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롯데슈퍼 측과의 거래를 시작한 이후로 신경쓸 것도 많고 불면증도 심해져 몸 상태가 많이 악화됐다. 내가 롯데슈퍼 관계자에게 맞고 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신은 매일같이 매를 맞고 산 기분이었다. 롯데슈퍼의 갑질이 나의 병치레와 어느정도 연관성은 있는 듯하다.

Q. 롯데와 '불운의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 롯데와의 연을 맺기 시작한 게 언제부턴가.
 
A. 지난 2005년이다. 그때부터 굿모닝마트 사업을 개시했다. 굿모닝마트가 6년 후 롯데슈퍼에 합병되지 않나. 그때부터 롯데라는 악마와 연을 맺은 것 같다. 2007년부터 롯데와 본격적으로 손을 잡았다. 성선청과라는 상호명으로 롯데슈퍼에 과일을 납품하는 수수료매장(매장 매출액의 일부를 규정된 비율에 따라 수수료로 지급하는 계약형태)을 운영했다. 판매금액의 15%를 롯데가 취하는 조건에서였다. 그리고 성선청과의 대표자는 아는 동생인 송준기로 했다. 당시 내게 신원상의 문제가 있어 지인의 명의를 빌렸다. 비록 불법이었지만, 롯데도 거래 당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정균씨 ⓒ신민경 기자
롯데슈퍼의 갑질을 주장하고 있는 김정균씨 ⓒ신민경 기자

Q. 상호 거래하는 동안 납품 갑질이 심했나.

A. 서울 내 롯데슈퍼 다수지점에 과일 등을 납품하며 수익을 꾀했지만, 꾸준히 적자였다. 오히려 담당자는 흑자 전환을 약속하며 늘 달콤한 소리만 했다. 당시 나는 적자만 개선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했던 터라 사탕발림에 쉽게 넘어갔다. 사측이 매출이 낮은 특정 매장에 입점을 요구하면, 지시대로 들어갔다. 하지만 납품 갑질은 도를 넘어섰다. 롯데슈퍼는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금액을 납품가와 무관하게 현저히 낮게 책정했다. 자사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우리의 희생을 강제한 것이다. 그리고 해당 판매가격의 85%만 우리에게 지급했다. 하지만 유통구조 상 내가 운영하는 성선청과는 롯데슈퍼의 구매력에 의존하는 납품업체일 뿐이다.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가격을 아주 낮춰 납품했다.

Q. 납품가의 일방적 절하와 특정 매장 입점 강요 등의 갑질이 얼마 동안 지속됐나.

A. 6년간 시달렸다. 그래서 지난 2013년에는 롯데슈퍼의 갑질에 못이겨 매장 정리를 결심했다. 그런데 매장을 정리하던 중 롯데의 사익 편취 흔적을 발견했다. 바이어에게 매장을 정리하니 총 판매금액에서 롯데 측이 가져가는 수수료를 뺀 값과, 내가 받은 금액이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바이어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롯데 측의 높은 수수료 편취 사실을 언질해 줬다. 그제서야 롯데슈퍼가 그동안 15%가 아닌 25%의 수수료분을 가져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롯데가 행한 갖은 갑질행위들 가운데 나를 가장 화나게 한 일은 이러한 '수수료 눈속임'이었다. 

Q. 말인 즉슨 애초에 계약한 수수료율을 위반하고 기업이 임의대로 사익을 편취했다는 것 아닌가.
 
A. 그렇다. 그러면서 롯데슈퍼는 우리 매장에 일언반구도 없었다. 당시는 롯데의 불공정한 거래 태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매장을 정리하던 차였다. 하지만 수수료율까지 대놓고 속여 갑질을 당당하게 행사하는 대기업에게 벌을 받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문제점을 인지한 직후 롯데윤리위원회에 연락해 부당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롯데윤리위원회 측은 오히려 추후 내게 방문해 "새로운 업체를 설립해 롯데슈퍼와 다시 정상적인 거래를 하게 해줄테니, 수수료 편취 사실을 무마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다시 보성청과를 세운 것이다. 설마 대기업이 또 한 번 거짓말을 할까 싶었다. 물론 우려도 됐지만 결국 담당자의 말에 따라 다시 납품키로 했다.

Q. 다시 시작한 매장도 수수료형태의 매장이었나?

A. 두 번째 거래는 수수료매장형태가 아니었다. 롯데슈퍼가 정한 단가에 과일을 납품해 대금을 받는 식이었다. 명의도 내 이름 앞으로 했다.

Q. 거래 재개 후 갑질은 개선됐는지.

A. 전혀. 기대와 달리 갑질은 여전했다. 단가 후려치기를 일삼고 매장직원들의 회식 비용까지 요구하더라. 매장에서 발주한 물품을 본사 측에서 막은 흔적을 발견키도 했다. 그때부터 롯데라는 갑질 대기업에는 면벌부를 쥐어주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지난 2015년에, 일전에 문제 삼았던 수수료 과다 책정 건을 다시 언급하며 공정원와 법원 등에 신고키로 결심했다.

Q. 롯데 측은 또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는지.

A. 똑같았다. 오는 사람만 바뀌었다. 이번에는 당시 신선식품 부문장이었던 전유석 상무가 날 찾아왔더라. 그는 사측에서 잘못한 게 있으면 시정토록 노력하겠다며 수수료 편취 사건을 들춰내지 말라고 부탁했다. 이후엔 지난 2013년 4월부터 약 3개월간 부당편취한 사실을 인정하겠다며 2100만원의 합의금을 제안했다. 끝까지 무례했다. 사과 대신 부당편취액 1600만원과 이자 500만원이란 엉터리 위로금을 내밀었다.

지난 2001년까지 유도선수로 활동했던 김씨는 롯데와의 계약 이후 병원을 드나드는 일이 많아졌다. 총 16번의 수술을 했고 최근엔 지난해 8월 목부위 수술을 치렀다. ⓒ신민경 기자
지난 2001년까지 유도선수로 활동했던 김씨는 롯데와의 계약 이후 병원을 드나드는 일이 많아졌다. 총 16번의 수술을 했고 최근엔 지난해 8월 목부위 수술을 치렀다. ⓒ신민경 기자

Q. 합의금을 제안한 것은 롯데슈퍼 측이 먼저 자사의 부당한 갑질 행태를 인정한다는 것인가. 

A. 분명히 부당하게 이익을 편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합의금을 제안할 당시 합의서를 가져와 도장을 찍으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사측이 제시한 합의금은 실제 손실액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기에 상무를 돌려 보냈다. 그리고 사측에서는 사익편취 기간이 6년의 거래기간 가운데 단 3개월이라고 명시했지만, 장담컨대 그 이상이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롯데는 3개월만 부당편취할 기업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롯데슈퍼 측에서 전산 관련 기록을 확인해주지 않아 정확한 피해액 통계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Q. 그래서 공정위와 법원에 손을 내밀기로 결심한 것인가.

A. 전유석 상무에게 정신적, 금전적 피해액을 제대로 보상해달라 요구했지만 거부 당했다. 그래서 억울함을 풀고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 공정거래조정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때 롯데의 무서운 얼굴을 봤다. 롯데슈퍼가 분쟁조정원에 '수수료 25%'가 명시된 허위 계약서를 제출한 것이다. 

Q. 애초에 수수료율 15%로 계약했다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25%가 적힌 계약서를 증거로 내놓을 수 있는가.

A. 그러니까 허위 계약서인 것이다. 롯데 측이 제시한 계약서에는 간인이나 계인, 자필서명 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롯데측 명판도 안 찍혀있다. 그리고 사업자번호도 다르게 적혀 있다. 본래 내가 운영하던 성선청과의 사업자번호는 107-91-01481이다. 그런데 롯데 측이 증거로 낸 2009년도 계약서에 적힌 내 사업자번호는 107-81-36642다. 107뒤의 숫자는 내가 아닌 롯데슈퍼의 사업자번호다. 명판으로 찍어내는 것인데 사업자번호가 상이하게 다뤄질 수가 있냐. 고의로 위조했다는 증거다.

Q. 공정원(공정위 산하)과 법원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A. 김유진 공정위 조사관은 "롯데에서 수수료 25%가 명시된 계약서를 보냈다. 만약 롯데에게 항의를 하려면 이 계약서가 위조됐다는 것을 증명하라"며 오히려 내게 입증책임을 돌렸다. 또 형사소송에 있어서는 경찰서에서 본 건을 불기소 처분해 검찰에 송치했다. 진세언 동부지검 검사는 "사업자번호가 다르다고 해서 계약서가 위조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전에 여러 차례 내게 찾아와서 식사를 대접하며 합의를 요구하던 롯데슈퍼가 위조계약서를 내놓으며 돌변한 것이다. 

Q. 그런데 결국 지난 2017년 1월에 롯데슈퍼측과 합의를 했다. 왜 했나.

A. 잦은 수술로 인해 병원비가 부족할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래서 억울함 해소보다도 돈이 먼저였다. 그래서 1월에 롯데 측 직원이 제안한 합의금 8000만원에 도장을 찍어버렸다. 그리고 합의서에도 도장을 찍었다. 합의서엔 '이번 합의금을 통해 김정균은 모든 민·형사상 소송을 취하하고 행정당국에 제기한 신고도 모두 철회한다'고 적혀 있었다. 또 '롯데그룹 하도급업체 피해자모임에서 탈퇴해야 한다'거나 '합의 후엔 추후 어떠한 방식으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제3자에게 합의 내용을 발설해선 안 된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대기업의 무서운 이면에 직면한 듯 했다. 하지만 당시 공정위와 법원 등이 내 편이 아니라고 느꼈기에 포기하는 마음으로 도장을 찍었다.

Q. 합의를 봤음에도 지속적으로 피해사실을 알리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A. 첫째, 거대 유통공룡 롯데가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막고 싶어서다. 높은 수수료 책정과 롯데 측의 악행을 꼭 세상에 알리고 싶다. 둘째, 합의금 재협의를 원해서다. 말도 안 되는 금액에 합의를 종용한 롯데슈퍼가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정신적·금전적 피해를 정직하게 추산해 보상해 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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