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2014년 10월 실시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이후, 스마트폰을 구입 할 때 단말기 출고가와 공시지원금이 얼마인지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이용자 입장에서는 편리해진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단말기의 출고가는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제조사가 정하지만, 공시지원금은 제조사와 이통사가 같이 부담합니다.

하지만 현재 단통법 안에서는 제조사와 이통사가 공시지원금에 대해 각각 얼마를 분담하는 지는 전혀 알수 없습니다. 제조사와 이통사 각자 얼마를 부담하는지 분리해 공개하자는 것이 분리공시제입니다. 단통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난 현재, 이통사와 삼성전자가 분리공시제에 대해 현재 서로 반대의 의견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분리공시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이통사는 부정적인 상황입니다. 재밌는 점은 단통법 시행 전에는 분리공시제에 대해 삼성전자는 반대, 이통사는 찬성의 입장이었습니다. 즉, 양 측이 서로 엇갈리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분리공시제, 초기 삼성전자의 반대로 '반쪽 짜리 단통법'

분리공시제의 경우 당시 단통법이 논의될 때 같이 추진됐습니다.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결국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제조사의 대표격인 삼성전자가 나서서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삼성전자의 반대 논리는 영업비밀이었습니다. 이때도 삼성전자의 힘은 대단했고, 공시지원금에 대한 분담 비중 또한 삼성전자가 주도했습니다. 당시 이통사는 삼성전자에 비해 ‘을’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이통사는 분리공시제를 찬성했습니다. 결국 분리공시제는 시행되지 못했고, 단통법은 반쪽짜리 법으로 2014년 10월부터 시작됐습니다.

분리공시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작년 이효성 방통위원장이 새로 취임하면서부터입니다. 방통위가 분리공시제를 추진하는 이유는 스마트폰의 출고가가 점점 비싸지는 현 상황에서, 분리공시제를 통해 제조사의 지원금을 공개하고 이를 통해 스마트폰의 출고가 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효성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분리공시제를 추진하겠다고 작년부터 밝혀왔기 때문에 올해 상반기내에는 분리공시제가 도입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국회 과방위 법안소위가 정치적인 이유로 한동안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분리공시제 뿐 만 아니라 방송법, 유료방송 합산규제 등이 그동안 국회에서 모두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만약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됐다고 하더라도 분리공시제 추진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이 갤럭시S9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분리공시제 재추진에 삼성전자 긍정 시그널...이유는?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분리공시제를 다시 추진한다고 했을 때 모두들 찬성한다고 했지만, 과방위 내부에서도 이를 반대하는 위원들이 있다”며 “의견이 명확히 갈리기 때문에 추진이 쉽지 않다. 분리공시제 도입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기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처음에 분리공시제에 대해 반대를 했던 삼성전자는, 작년 초 부터 정부에게 긍정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며 “이통사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분리공시제가 시행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가 분리공시제를 처음에 반대했던 이유는 바로 글로벌 제조회사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가 부담하는 지원금이 국내에서 공시될 경우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이통사들은 이를 근거로 지원금 등을 더 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삼성전자가 지원금을 몇십만원 공시할 경우 차라리 그만큼 출고가를 내리라는 사회적인 압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는 분리공시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약 100만원짜리 스마트폰이 있고, 지원금이 20만원인데 삼성전자와 이통사가 10만원씩 부담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분리공시제가 시행되면 삼성전자는 10만원을 다 지원하지 않고 5000원 등 소량의 금액만 지원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앞서 설명한 이유로 영업비밀이 공개되서는 안되고, 출고가 인하에 대한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왜 이런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예전에 분리공시제를 반대했을까요? 그때보다 현재 삼성전자의 힘이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원금을 5000원만 공시할 경우 예전에는 여론의 눈치를 봐야 했지만, 삼성전자는 현재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입니다. 국내 시장의 경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 삼성전자를 견제할 만한 제조업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현재의 경우 이용자들이 지원금 대신 선택약정할인을 대부분 선택하기 때문에 지원금에 대한 주목도가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통사는 최근 분리공시제를 왜 반대하는 것일까요? 이통사 관계자는 “우리가 분리공시제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리공시제를 시행하면 삼성전자는 5000원 등 소량의 금액만 지원할 것이고, 아낀 금액을 전부 판매장려금(리베이트)로 돌릴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의 자금이 리베이트로 쓰인다면 이동통신시장이 더 혼탁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분리공시제에) 신중히 접근하자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삼성전자는 이통사향 약정형 스마트폰과 가격이 같은 자급제폰을 출시하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국내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크게 상승한 것과 전혀 무관하지 않습니다. 힘이 더 세지자 분리공시제를 찬성하고 자급제폰을 출시하는 삼성전자와 이와 반대로 입장을 내는 이통사. 이동통신시장 양 주체가 계속 엇박자를 낸다는 것이 흥미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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